대한민국 석탄산업과 성장한 묵호!

Q44. 기획자가 답하다. 묵호 논골담길

by 조연섭
석탄산업과 성장한 묵호!

구술자 고 최진환 선생은 강원도 동해 태생으로 1940년대 후반에 대학을 진학했다. 당시 시대적인 상황으로 어지간한 가문 아니면 지방에서 인 서울 하기는 쉽지 않다. 서울로 유학, 건국대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동해 북부지역에 중학교가 없어 묵호중학교 설립 발기인으로 참여해 설립 후 교사로 근무한 경력도 있다. 지역학 연구자 최 선생은 어릴 때부터 묵호를 검은 항구로 불렀다고 한다. 묵호는 청어를 싣고 원산 가는 배 연락선의 기항지로 도계 탄광이 생기고 축강이 들어서고 석탄 수송이 시작되면서 묵호는 성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무연탄 최대 수출항이던 다시 묵호항과 묵호의 발전은 탄광산업, 즉 석탄산업 활성화의 결과라고 최진환 선생은 강조한다.


일제강점기에 도계지역에서 생산한 석탄은 절반 이상이 일본으로 반출되어 발전용탄으로 공급되었다. 도계-묵호 간 부설된 전용 산업철도를 통해 묵호로 출하한 뒤, 묵호항에 선박을 이용하는 것이다. 해방 이후에는 도계탄이 이 노선을 따라 서울과 부산 등 전국으로 수송되었다. 대한석탄공사는 석탄수송을 위한 선박까지 갖추고 해상 수송에 나섰다.


일제강점기에 도계지역에서 생산한 석탄은 절반 이상이 일본으로 반출되어 발전용탄으로 공급되었다. 도계-묵호 간 부설된 전용 산업철도를 통해 묵호로 출하한 뒤, 묵호항에 선박을 이용하는 것이다. 해방 이후에는 도계탄이 이 노선을 따라 서울과 부산 등 전국으로 수송되었다.


영암선 (영주~철암)이 개통되면서는 해상 수송이 줄어들고 도계에서 부산까지 철도수송 물량이 늘어났다. 도계에서 부산까지의 육상 수송 거리는 389.5km이고 해상 수송 거리는 268.8km이다. 하지만 해상 수송 시는 도계에서 묵호까지 철도수송을 하여 묵호항에서 부산으로 수송하기 때문에 추가 운임이 부가된다. 1975년 기준으로 도계역에서 부산까지의 육상수송비는 해상 수송비 2,463.92원에 비해 967.92원 저렴했다.


철도수송이 불가능한 동해안과 남해안 연안과 제주도 등지에 대한 석탄 공급은 묵호항에서 해상으로 이루어졌다. 대한 석탄공사는 대한해운 공사와 수송계약을 체결하여 부산, 마산, 군산, 인천, 제주로 석탄을 공급했다. 하지만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수송량이 늘어나서 대한 해운 공사 보유 선박만으로 부족하자 도계광업소는 석탄수송을 위한 선박 구입에 나선다. 1953년 9월에 도계호로 명명된 1943년에 건조된 선박(선박 제원 : G/T 1,897.89, 길이 76.20m, 폭 12.90m, D/W 2,600)을 구입한다. 이 배는 대한석탄공사가 미국에 66만 달러를 주고 세 척의 선박을 구입하면서 1척을 도계호로 명명한 것이다. 도계호는 도계탄 수송에 나서면서 국내에서만 운항하다가 영암선 개통으로 육상수송이 늘자, 한일수교가 이뤄진 1960년대에는 일본까지 항해에 나선다.


도계탄은 생산량의 증가와 민영 탄광의 가격 덤핑으로 판매난을 겪으면서 선박을 이용하여 연안 도시에 대한 해상 수송을 계속한다. 연안 도시는 수송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민영 탄광이 공급을 기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박으로 수송하면 한꺼번에 많은 석탄을 수송하는 장점은 있지만, 선적과 하역에 따른 조작비 등 많은 비용이 발생하는 단점을 갖고 있어 탄광 경영난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묵호항에서 선적하여 해상 수송로를 통해 부산과 인천으로 공급하면서 수송비용이 1956년에는 톤당 3,618 환이 소요(톤당 법정가격 5100 환)돼 극심한 경영의 어려움을 겪는다.


비록 해상 수송이 도계광업소의 경영에는 막대한 부담을 안겨주었지만 도계호는 1972년 8월 매각되기까지 20년간 도계탄을 나르면서 석탄 공급 지역의 확대와 수급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도계호는 1972년 매각되었어도 석탄공사에서는 다른 선박을 계속 유지시키다 1996년 선박 매각으로 해상 공급이 중단되면서 석공 묵호 사무소는 도계광업소로 편입된다. 고 최진환 선생의 생생한 인터뷰 영상을 아래 인터뷰 보기로 직접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최대 무연탄 수출항, 묵호항!
무연탄 하차 장면, 사진_ 동해문화원

인터뷰 보기 https://youtu.be/xUyDvXOaEJc


영상인터뷰 캡쳐 화면

구술자_ (최진환: 건국대학교 졸업|지역학연구자|2018년 95세,별세)

마무리 1분 인터뷰_대한민국 최대 석탄, 시멘트 공급항으로 성장한 묵호항!

Q. 조연섭_ 브런치 작가: 연구원님 동해 묵호와 묵호항이 석탄산업으로 성장했다고 하는데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세요?

A. 홍 협_동해학기록센터 연구원: 네 맞습니다. 묵호항은 대한민국 최대 무연탄 수출항이었습니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본의 군국주의에 맞서 미국은 일본에 대해 경제 제재를 가합니다. 다급해진 일본은 한반도에서의 남쪽인 삼척지역의 석탄과 철광석의 생산을 추진하면서 반출항으로 묵호항을 지정 전략물자의 수송을 위해 삼척철도와 항만을 개발합니다. 수탈을 위한 묵호항의 아픈 역사는 6.25 당시 UN군의 흥남 철수 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죠. 60년대 묵호항은 본격적인 무연탄의 출하로 대한민국 대부분 국민들은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1968년 준공한 쌍용시멘트 동해공장에서의 시멘트 출하는 국가 건설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합니다. 전국 최대의 석탄과 시멘트 공급항으로서의 오징어를 대표하는 수산업의 전성기와 함께 강원도 최고의 상업지로 묵호는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니는 황금기가 시작됩니다.

현재 묵호항 모습, 사진_동해시
Q. 양하영_가수
묵호이야기를 생생한 목소리로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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