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32. 기획자가 답하다. 묵호 논골담길
묵호의 좁은 골목길이 여행자와 마주하니 ‘논골담길‘이 미소 짓는다! ‘묵호와 묵호항 배경 문학작품과 작가의 문학세계’를 브런치로 정리합니다.
묵호와 동해
동해시 지역문학은 묵호항을 소재로 작품들이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다. 그 이유는 ‘동해(東海)’라는 상징적인 명칭을 달고 탄생한 동해시가 지리적으로 바다와 인접하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는 지역문학을 말하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바가 바로 지역문학이 구체적인 것을 그 출발점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를 중심에 둔 ‘해양문학’은 인간의 삶이 주요 모티프이다. 뿐만 아니라 ‘바다’는 가치 있는 체험에 의해 재해석되고 재창조되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것은 원초적인 생명력 죽음 충동과 맞물려 있는 시공간임을 표현하는 것이고, 비동일성의 구조 속에서 동일성을 꿈꾸는 모순된 주체를 문학으로 형상화하는 과정 속에서 해양의 의미는 더욱 부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동해에 삶의 뿌리를 내린 문인들은 바다가 그들의 삶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언어를 표상화하고 있다.
지역문학은 창작 주체뿐만 아니라 갈래 체계도 일반문학 작품과 다르다. 일반문학 작품은 작품 자체의 내적 질서에 따라 구분하지만 지역문학 작품은 창작 주체와 언어매체 및 그 제재에 따라 세분화되는데 이것이 일반문학과 다른 지역문학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지역성을 담보하는 문학적 내적 기제가 바다를 주제로 한 표현방식, 그리고 의미와 관련성 차원에서 지역문학의 내용 층위를 이룬다. 해양문학의 내용에 따라 지역의 고유한 향토색, 지역적 서정, 지역적 삶의 내면적 승화 등이 이와 관련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동해 지역문인들의 주 발표 지는 개인 창작집, 그리고 동해지역을 대표하는 문예지인 '동해문학'과 '동해여성문학'이다. 뿐만 아니라 '동안'도 동해․삼척지역에 뿌리를 둔 회원들 주축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여기에 발표한 작품들 속에 나타나는 ‘바다’는 지역성이 창작의 근간을 이루는데, 이것은 해당 문인들이 이 지역에서 현재 삶을 살고 있거나 과거에 살았다는 근거에서 비롯된다. 이처럼 실존적으로 형식의 층위를 이룬 것은 지역문학을 규정하는 조건이 된다.
그러므로 지역문학에서 ‘묵호항’과 그 주변에 존재하는 장소로서, 사회적․시대적 변화에 따라 ‘역사적 공간으로서의 묵호항’를 노래한 작품을 살펴보려고 한다. “지역문학은 지역의 진실과 역사를 자기화시켜 이해하면서 작품으로 형상화한 결과이며, 문학 담당층이 갖는 개별성과 문학이 구현하는 보편성을 다 같이 표출하는 구체적인 장”이기 때문이다. 또한, 묵호항과 관련하여 지역민들의 삶과 직결되면서 어부들의 개인적인 삶의 질곡이 토로되는 ‘실존적 공간으로서의 묵호’를 검토하는 작업을 하겠다. 예컨대 항구, 동해, 대양 등 직접적인 것과, 또는 바다를 떠나서는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배, 어부, 파도, 수평선, 생선 등이 논의의 대상이다. 한편 바다와 관련되어 자연 ‧ 인조물의 명칭을 제목으로 한 작품으로서 ‘묵호항’이라는 공간과 맞닿아 나타나는 ‘서사적 공간으로서의 묵호등대와 논골담길’을 논의의 대상으로 주목한다. 공간은 대상으로서 주어지는 장소에 비해, 시점에 따라 상대적인 양상을 띠는가 하면 기획을 통해 다각의 양상이 빚어지는 구성체이기도 하다.
지역문학장에 나타나는 ‘묵호항’을 지역적 정서의 특수성 위에서 논의함으로써 이 지역의 정체성이 문학작품 속에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를 밝힐 것이다. 지역문학이란 그 지역의 삶의 모습, 그 지역 사람들이 살아왔던 역사와 그 속에 숨 쉬고 있는 정신을 바탕에 깔고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지역문학 텍스트의 고유한 가치를 발견해 가는 노력은 문학장 내부는 물론 한국사회를 발전시키는 견인차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더불어 이 연구는 ‘묵호항’을 중심으로 창작한 지역문인들의 작품이 지역성을 자각하고 지역의 삶에 관심을 환기시키는 문학으로 자리매김하는 단초가 되리라 본다.
역사적 공간으로서의 ‘묵호항’
동해 지역문학장의 작품 속에서는 발표자들이 동해시에 연고를 둔 문인들이다 보니 지역의 장소 또는 공간의 명칭이 자연스럽게 녹아져 있다. 한국문학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장소 또는 공간은 지역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데, 이는 지역문학이 “그 지역을 섬기는 이, 그 지역에 깊은 친밀 ‧ 경험과 장소 사랑을 실천한 이들이 엮어내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동해 지역문인들의 작품에서는 바다와 관련된 장소와 공간이 북부권에 편중되어 나타난다. 이는 북부권인 묵호가 동해시에서 바다와 인접지역으로 역사적․사회적 사상(事象)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장소와 공간은 정감 어린 기록의 저장고이며 현재에 영감을 준다. 문학과 같이 주체-객체의 관계에 의해서 성립된 이런 경우엔, 그 본질과 핵심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고찰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문학이 시대와 사회와 개인의 특수한 사정에 따라 어떻게 사회적 삶을 반영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먼저 ‘묵호’와 ‘묵호항’을 표제로 사용한 작품을 제시한다.
화려했던 묵호가 처자식까지 다 떠나버린 쓸쓸한 노인네 같은 모습으로 변하기 시 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의 ‘동해시’ 탄생이 전주곡이고, ‘동해항’ 개항, 석탄합리화사업과 동해안의 어황부진이 주요 이유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묵호는 돈 벌고 떠나면 그만이다.’라는 토박이 정신의 결여 때문이다. 깍지로 돈을 끌 듯이 큰돈을 번 사람들은 묵호에 재투자는커녕 자식들을 서울로 유학을 보내고, 정작 본인도 미련 없이 묵호를 떠나버렸다. 묵호는 그렇게 잠시 머물다 떠날 만큼 정이 없는 도시는 아니었음에도 시류에 밝은 사람들은 미련 없이 떠나버렸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동해시’라는 생소한 이름에 친화하면서 묵호를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다.
…(중략)…
1963년 봄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10살 때였다. 묵호역에 내려 처음 본 거리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복작거렸고, 오징어를 가득 실은 리어카가 혼잡한 차도로 줄지어 지나가고, …(중략)… 무얼 파는지 모를 상점들이 양 길에 끝없이 이어지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검은 먼지가 길에서 풀썩 솟고, 하늘도 연탄가루가 까맣게 날려 태양마저 검붉게 보였다.
- 홍구보, 「묵호 이야기」 부분
커다란 눈을 꿈벅이며
영국까지 갔다 온
파도는
벌써 신이 나 있었다.
일만 톤 무게를 들어 올리고
조심조심 항구로 들어와
부둣가에서
다리를 쉬면
트럭이 자꾸 짐을 받는다.
…(중략)…
시커먼 석탄이 흩날리는 저탄장엔
삽을 든
수염 텁수룩한 아저씨
어둠 내리는 하늘을 쳐다보다
두고 온 꼬마를 생각하고
- 박종해, 「묵호 항구」 부분
위에 인용한 작품들에서는 ‘묵호항’이 영동남부 지역의 명실상부한 무역항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한때묵호항은 묵호역을 통해 수산물을 여러 지역에까지 실어 옮겼고, 태백과 삼척 등지에서 산출된 무연탄을 수송하는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1980년대 석탄합리화 정책에 따라 줄줄이 폐광으로 이어졌고, 어족자원마저 고갈되자 경제공동화는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묵호항과 묵호역에서 수송되던 물동량은 줄어들고 말았다. 묵호지역이 호황을 누렸을 땐 묵호항은 사람들로 붐볐고, 삶의 애증마저 극명하게 드러났던 공간이었다. 이에 홍구보는 수필 「묵호이야기」에서 ‘묵호항’이 묵호지역의 번영과 쇠퇴의 역사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화자는 “연탄가루가 까맣게” 날리던 묵호지역을 회상하면서, “그 화려했던 묵호가 처자식까지 다 떠나버린 쓸쓸한 노인네 같은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 일갈한다. 여기에는 “석탄합리화사업과 동해안의 어황부진”이 주요 원인 중의 하나임을 토로하면서 “대다수 사람들은 ‘동해시’라는 생소한 이름에 친화하면서 묵호를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다.”라고 강조한다. 이처럼 지역민들은 ‘묵호항’의 번영과 쇠퇴의 역사를 함께하면서 바다에 순응하는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종해의 동시 「묵호 항구」에서는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묵호지역의 삶을 원체험으로 노래한다. 외적으로 보이는 바다에는 “일만 톤 무게를 들어” 올릴 정도로 거대한 무역선이 들락거리고, 묵호항 부둣가에는 트럭이 분주하게 오가는 모습이다. 한편 석탄가루 흩날리는 묵호항 저탄장에서 밤늦도록 일하던 인부가 삽을 든 채 “어둠 내리는 하늘을” 쳐다보며 집에 있는 어린 자녀를 떠올리는 부분에서는, 지역민들의 삶이 그리 녹록하지 않고 피폐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내비친다. 이러한 양상은 심상대의 소설 「묵호를 아는가」에서도 드러난다. 화자는 묵호를 “파르스름한 바다. 그 바다가 있는 곳. 묵호. 그렇다. 묵호는 술과 바람의 도시다.”라고 단언한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서둘러 몸을 적시고,…(중략)… 부두의 저탄장에서 날아오르는 탄 분처럼 휘날려, 어떤 이는 바다로, 어떤 이는 울렁울렁하고 니글니글한 지구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멀리 무덤 속으로 떠나갔다.”라고 토로한다. 이처럼 “저탄장에서” “탄 분”이 날리는 ‘묵호항’은 지역문인들의 작품 속에서 소재가 된 장소로서 역사적 맥락으로 의미화되고 있다. 특히 해양의 공간을 넘어 무연탄 수송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던 ‘묵호항’을 묵호지역까지 구체적으로 확장하여 형상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지역문학 속에서는 산업화사회가 되면서 무연탄을 수송하는 무역항으로 팽창했던 ‘묵호항’이 역사 속에 묻히고, 다시 어항으로만 존재했던 시절로 되돌아갔음을 자각하고 있다. 산업구조의 변모로 인하여 생계마저 위협을 느끼게 된 지역민들은 묵호를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음을 김용묵의 시 「저녁 바다가 있는 풍경」에서도 읽어낼 수 있다. 이는 “날이 밝으면 말라붙은 눈물 한 방울/ 허연 뼈마디의 소금으로 씹히고/ 이빨 빠진 모래톱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듬성듬성 이웃들은 짐을 꾸렸다”라고 노래한 부분이다. 또한, 최효열은 「내 친구는 뱃사람」에서 ‘어부’를 대물림하고 있는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시적 자아는 “눈곱도 채 떨어지지 않은 묵호항이 어수선해지고/ 오징어 먹물이 번진 그의 얼굴에 하루가 지면…(중략)…그 아버지의 바다를 대물림한/ 바다를 떠나 살 수 없는 친구”라고 어부의 힘든 삶을 고발하면서 묵호항을 지키려는 지역민들의 의지를 내비친다. ‘묵호항’은 객관 현실과 창작 주체인 지역문인들의 접촉이 이루어지는 장소로서 문학적 창조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처럼 ‘묵호항’을 구체적인 공간으로 이미지화한 작품들 속에서는 한때 호황을 누렸던 묵호항을 추억하면서, 산업화사회와 어족고갈로 이어진 지역민들의 가난을 역사적으로 의미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실존적 공간으로서의 ‘묵호’
지역문학장에서 ‘묵호항’의 역사가 ‘무연탄’과 관련된다면, 실존적 공간으로서의 묵호에서는 개인적 삶에 초점을 둔다. 바다는 개인적‧사회적 삶이 구체화되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지역문인들의 작품 속에서는 바닷가 사람들의 삶을 주체자 혹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서 구체화하고 있다. 대체로 바닷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주관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보이는 그대로의 현실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정직하게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는 묵호지역민들이 어족고갈로 그들의 고단한 노동에 비해 충분히 보상받지 못하는 바다를 원망하면서도 묵호지역을 벗어날 수 없음을 토로하는 양태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문인들은 작품 속에서 바닷가 사람들의 힘든 삶을 내비치면서도 가난한 군상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해 낸다. 이처럼 바다를 자신의 몸처럼 생각하는 묵호지역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는 작품을 아래에 제시한다.
뱃머리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너나없이 발걸음이 무겁다
소금물로 밥을 끓이고 소금이 반찬이겠지
뱃전을 잡고 용변을 보다가 놓치지는 않을는지
방파제에 부딪히는 파도야 보기는 좋다마는
바다 위의 나날은 사생을 넘나드는 전쟁인데
고기 따라다니다 어로경계선에선 제대로 멈추는지
고기가 없다고 빈속에 소주만 마시지는 않을는지
궁기 도는 가족 걱정일랑 붙잡아 매슈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소
술눈을 맞춰서라도 먹여 살릴 수 있소
새끼들과의 기다림은 언제나 푸르름이요
- 류재만, 「出漁期」 부분
오기찬 오징어 항변에
그래, 너로 인해 이 땟국물 절은 어판장에서
나의 하루 열리고 나의 하루 저무는구나
할복하는 아줌마 손목에
퍼렇게 힘줄 돋아나
시름 섞여 주절거려도
목청은 여전히 창창하다
- 이정숙, 「묵호 어판장에서」 부분
류재만의 시 「出漁期」에서는 거친 바다에서 살아가는 어부들의 삶을, 시적 화자의 육성을 통해 대변하고 있다. 시적 화자가 어부의 아내라고 추측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은 “사내를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라든가 “가족 걱정”, “새끼들과의 기다림”이라는 시어들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시는 “이야기체의 형식”으로, 바다로 떠나는 남편을 배웅한 아내가, 이후 선상에서 벌어질 어부들의 삶을 밀착하여 독백체로 호흡을 풀어내고 있다. “소금물”로 밥을 하고 소금 반찬으로 끼니를 때우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바다에서의 삶을 푸념 삼아 일상적인 걱정거리로 늘어놓는다. 그러나 시의 결미에서 “새끼들과의 기다림은 언제나 푸르름이요”라는 언술을 통해 묵호지역민들이 지향하는 희망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감정의 변화가 추상적이지 않다. 결코 감상의 나열로 풀어내지 않고, 거침없이 쏟아내는 목소리는 바다와 관련된 구체적인 시어들이다. 그것들은 시적 언어의 특징인 비유나 상징이 개입될 여지를 주지 않는다. 또한 감상적인 감정을 극복하고 삶의 모습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재현하면서 현실에 대한 이해와 현실 인식을 유도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고단한 어부 가족들의 육성이 전체적인 정조를 이루는 가운데, 이정숙은 시 「묵호 어판장에서」라는 작품을 통해 어판장에서 구체적으로 소통되는 “할복하는 아줌마”라는 언어를 재현하여 생생한 현실감을 살리고 있다. 화자는 바닷가에 사는 여인들이 어부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아 살아가면서도 생계를 위해 어판장에서 생선을 할복해야만 하는 현실을 토로하고 있다. 바닷가에서 사는 인과적 필연성을 들어, “나의 하루 열리고 나의 하루 저무는구나”라고 충족되지 않는 현실마저도 거부하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순응의 의미를 내포하면서 묵호지역민들이 바다를 등지고는 살아갈 수 없음을 담담한 어조로 토로한다. 이것은 묵호지역에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호객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창창”하다는 언술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외에도 지역문학장에서는 오징어로 흥청대던 묵호를 그리워하는 작품들이 다수로 나타난다. 전경애는 수필 「묵호항으로 떠내려간 고무신 배」에서 “오징어가 풍성했던 그해”는 “오징어가 공중에 매달린 곡예사처럼 펄럭펄럭 바람에 몸을 맡기며 한들한들 춤을 추곤 했다.”라고 추억한다. 권석순은 수필 「묵호항, 그곳에는」에서 “학교에서는 오징어 말리는 일손 도우라고 어번 기를 했다. ‘어번기’라는 말은 농촌에서 살다 온 나에겐 낯선 단어였”다고 고백한다. 이어서, “집어등으로 꽃띠 두른 수평선, 꽃밭 같았던 묵호항은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을지….” 하고 묵호지역이 오징어 풍어로 흥청대었던 때가 도래하기를 염원하는 자세를 취한다. 또한 김시래는 「해녀」에서 “격랑과 시련을 넘어/ 바닷속 으슥한 곳에/ 삶의 명줄을 찾고”라고 지역민들이 바다를 등지고는 살아갈 수 없음을 담담한 어조로 토로하고 있다. 이처럼 묵호지역민들은 앞날의 희망을 위해 절망을 삭히며, 바다를 고향과도 같이 따뜻하게 받아들이면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데, 이는 강세환의 시 「어부들을 위하여」에서도 엿볼 수 있다. “생선 비린내 나는 바닷가에서/…(중략)… 나는 가리라/ 나도 뱃놈이 되어 가리라”라고 어부를 얕잡아 부르는 ‘뱃놈’까지 지칭하며, 그들이 힘든 환경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결코 바다를 버릴 수 없음을 고백한다. 이렇게 지역문학장에서는 묵호지역민들의 고단한 육성을 달래기 위해 동참하는 자세로 체험의 주체가 되고자 한다.
서사적 공간으로서 묵호등대와 ‘논골담길’
지역문학장에서는 바다와 관련되어 자연‧인조물의 명칭이 제목으로 사용된 경우도 있다. 이들 또한 묵호항의 서사적 공간과 맞닿아 있는 「묵호등대」와 「논골담길」이다. ‘묵호등대’는 동해시 묵호진동 산중턱의 해발고도 67m에 위치한다. 특히 등대의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면 탁 트인 동해바다를 조망할 수 있어서 많은 관광객이 붐비는 공간이다. 아울러 묵호지역민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은 ‘논골담길’은 과거를 엿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동해바다가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묵호 등대마을에 새로운 벽화의 길로 재탄생된 논골담길은 한때 활기를 띠었던 묵호항을 배경으로 살아온 묵호지역민들의 삶이 곳곳에서 묻어나고 있다. 이처럼 바람을 등지고 묵호등대를 오르내리는 논골담길이 ‘묵호의 재발견’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듯 강원 동해안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다시 한번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에 ‘묵호등대’와 ‘논골담길’이 묵호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음을 지역문인들의 작품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나이 들면서 항구는 내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산기슭에 붙어사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출발하고 되돌아오는 항구는 방파제의 두 팔로 보호되어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따뜻한 공간이었다. 마치 어머니의 품과 같은 모습을 하면서. 등대는 어두운 밤길을 걸어 돌아오는 자식을 맞으려고 손전등을 켜고 종 종 마을 어귀를 살피던 부모의 모습과 같다.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산동네의 삶은 항구와 등대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비롯된다.…(중략)… 걸어가야만 만날 수 있었던 묵호등대는 승용차를 타고 가서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산동네는 등대가 구경거리가 되어 관광지로 변해갔다. 도로변에서 등대로 오르는 길은 세 군데가 남아 있다. 이른바 논골담길이다. 좁은 집들의 담과 벽에 그림을 그려 옛 정취를 자아내게 하여 벽화 마을로 불린다.
- 박종해, 「묵호등대」 부분
때때로 깊은 밤이면 갯바람이
어린아이처럼 잠에서 깨어 살그머니
논골담길을 따라 더듬거리며
…(중략)…
그것을 언덕 위에 세운 것은 이 가난한 마을이
그들의 안전을 등대가 내려다보며
지켜 주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다가 그것을 더 높이 세울 수 있다
- 권정수, 「그 작은 등대마을에 가면」 부분
박종해는 수필 「묵호등대」에서 ‘묵호항’을 따뜻한 “어머니의 품”으로, ‘묵호등대’를 어두운 밤에 집으로 돌아오는 자식을 안전하게 맞아들이는 부모의 “손전등”으로 비유했다. 그러므로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산동네의 삶은 항구와 등대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비롯된다.”라고 토로한다. 묵호등대의 프리즘렌즈 회전식 대형등명기는 2003년 10월에 설치하였는데, 42㎞에서도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불빛이 밝다. 그러다 보니 작품 속에서도 자식들의 먼 장래에까지 비추어 주는 ‘부모’에 비견되고 있다. 나아가 산동네는 묵호등대와 아울러 최근에 형성된 논골담길이 관광지로 변모해 가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논골담길은 “도로변에서 등대로 오르는 길이 세 군데”라고 언급하면서 “좁은 집들의 담과 벽에 그림을 그려 옛 정취를 자아내게 하여 벽화 마을로 불린다.”라고 덧붙였다.
이와 같이 묵호등대와 논골담길을 바라보는 지역문인들의 따스한 시선을 권정수 시 「그 작은 등대마을에 가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때때로 깊은 밤이면 갯바람이/ 어린아이처럼 잠에서 깨어 살그머니/ 논골담길을 따라 더듬거리”더라도 묵호등대는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보살펴 주는 양상이다. 어린아이뿐만이 아니다. “가난한 마을”의 안전까지 묵호등대는 지켜 준다. 나아가 묵호등대는 묵호지역민들의 희망이며 빛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사실 묵호등대는 ‘바닷길’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주 임무이다. 울릉도를 운항하는 국내선뿐만 아니라 고기잡이 어선들이 안전하게 묵호항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시적 화자는 “바다가 그것을 더 높이 세울 수 있다”라고, 묵호등대는 생명을 지키는 빛으로 톡톡히 그 역할을 하고 있음을 내비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묵호항과 등대는 심지향의 시 「묵호 논골담길에 가면」에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한다. 이러한 정황은 “하얗게 씻긴 등대가/ 호수처럼 잔잔한 묵호 바다와/ 눈 맞춤하는”이라고 표현한 부분에서 엿볼 수 있다. 그래서 “해풍”도 “엄마 손처럼” 부드러워서, “살갑게 머리를 쓰다듬는/ 바람의 언덕에서 시름을” 날릴 수 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골목마다 쏟아놓는 이야기에/ 아스라이 잃어버렸던/ 내 유년의 스위치가 반짝” 켜지듯이 논골담길이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공간임을 드러내기도 한다. 최효열은 시 「묵호등대에서」 “지워진 수평선으로/ 서둘러 길을 내는 등대의 눈빛이 맑다”라고, 또한 이애리는 시 「묵호항 선착장」에서 “방파제 끝자락에 서 있는 무인등대는 이름도 없이/ 등 떠밀기도 하면서” 산다고, 등대를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와 같이 ‘묵호등대’와 ‘논골담길’는 지역문인들의 따스한 시선과 맞닿아 서사적 공간으로서의 맥을 함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골목길 인문학, 묵호 논골담길
이상과 같이 동해시 지역문학장의 문학적 내적 기제가 ‘바다’로 나타나는 데 주목하였다. 이에 동해시에 연고를 둔 문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이 발표한 작품 중에서 ‘묵호항’과 그 주변 공간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지역성이 바로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도 연관성이 있다 보니, 해양문학의 무대는 바다를 끼고 형성된 묵호지역에 편중되어 나타났다. 지역성의 맥락이 의미화되는 장소에 주목해 보면 ‘묵호항’은 묵호지역의 역사성과 뗄 수 없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묵호항’과 관련된 명칭을 차용한 작품 속에서는 한때 성황을 이루었던 묵호지역이 쇠락의 길에 들어선 현실을 고발하는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1980년대 석탄합리화정책으로 경제공동화가 심화된 데에서 온 것이다.
이런 연유로 바닷가 사람들의 어려운 현실적 삶이 반영되었는데, 이는 바다가 지역민들의 삶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삶의 비극성은 어족고갈로 인하여 ‘묵호항’ 인근 지역민들의 피폐된 삶을 드러낸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현실 앞에서 온 힘을 다하여 버티어내는 지역민들의 삶의 의지가 지역문학장에서는 ‘묵호’라는 지명으로 드러내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묵호등대’와 ‘논골담길’은 묵호지역의 활력소가 되고 있음이 드러난다. 그러다 보니 지역문인들의 따스한 시선 속에서 ‘묵호등대’와 ‘논골담길’은 ‘묵호항’과 관련된 서사적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컨대 지역문학장에서 ‘묵호항’이 지역의 역사와 맥을 함께하고 있음을 드러낸 한편으로는, 지역민들의 삶의 터전인 ‘바다’가 어족고갈이라는 당면문제의 심각성을 낳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것은 오늘날 지역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지역문학에 관련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해야 할 필요성을 대변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가 지역성을 자각한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역의 삶에 관심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문학작품에 나타난 묵호항의 현주소’를 쓴 권석순 문학박사 인터뷰를
브런치로 정리합니다.
Q.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문학박사 권석순입니다. 강원대학교 출강과 문학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대외 활동으로는 동해문화원 이사를 거쳐 현재 부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해양문학이란?
바다를 중심으로 삶의 뿌리를 내리고, 바다가 삶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언어를 표상화한 작품을 말한다.
Q. 한국 해양문학의 시작과 작품?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해양국가이면서 한국 해양문학이 부족한 이유는 근대 이전까지의 인습이나 봉건적인 사고에 몰두한 나머지 급변하는 세계적인 흐름에 부응하지 못함으로써 해양에 대한 관 심과 인식의 결여로 본다. 해양에 대한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관찰한 바를 토대로 이루어지는 문학인 만큼 서양의 문학에서 나타나는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이 투영되는 근대성과 체험성이 반영된 작품은 흔치 않다. 세계적인 해양문학 중 소설은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와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스티븐슨의 '보물섬'등이다. 또한 한국 해양문학의 시작은 197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선작, 선장 시인 '김성식'의 청진항이다.
Q. 묵호의 문학활동과 대표적인 문학작품과 특징?
묵호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인간의 삶이 주요 모티프가 되는 작품을 계속 발표되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심상대, 「묵호를 아는가」가 묵호 지역 대표적인 작품이다. 소설가 심상대의 작품 세계는 드넓은 바다의 품에 안겨 고단한 삶을 위로받고 싶은 의지가 드러나며, 소외된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바다의 품에 안겨 때 묻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녹아져 있다.
Q. 마지막으로 작가의 꿈을 가지고 있는 지역분들에게 바람이라면?
A. 동해 해양문학에 대해 해양의 환경문제를 문학적 대상으로 삼는 작품들이 많이 생산되었으면 한다.
정리, 사진_ 조연섭, 임황락, 동해문화원
참고문헌
권석순,「문학작품에 나타난 ‘묵호항’의 현주소」 2쪽~12쪽
강원도민일보,「강원해양문 확 공감, 학술심포지엄」 44쪽, 45쪽, 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