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기획자가 답하다. 논골담길
참고_이 글은 한국문화원연합회가 공모사업으로 25년 이상 추진한 어르신문화프로그램을 마감하면서 그간 추진해 온 프로그램 중에서 지금까지 활성화되고 있는 대표적인 프로그램 사례를 모아 준비하는 <2024년 어르신문화프로그램 백서> 제작 원고로 제출된 필자의 논골담길 이야기 요약본이다.
논골담길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는 동해 <묵호> 등대마을을 중심으로 조성됐다. 동해문화원•동해시•문화체육관광부•한국문화원연합회•참여작가와 주민공동체가 완성한 마을재생 사례다. 강원특별자치도 동해 묵호항과 인접해 있는 묵호진동에 위치한 자연 부락이다. 1937년(지정항 고시 조선총독부 문서 2022년 공개) 묵호항이 개항되고 1963년 6월 8일 캄캄한 바다의 불빛을 밝히는 묵호등대가 세워졌다. 논골담길이 있는 묵호는 1960년 70년대는 풍어로 오징어 명태가 넘치고 호황 시절을 보냈다. 그랬던 묵호가 1980년 4월 1일 동해시가 탄생되면서 도시 공동화•어획량 감소로 지역 경기는 점점 침체하기 시작했다. 마을주민들은 좋았던 시절 묵호를 뒤로하고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다. 한때 인구 6만에 가깝고 한 마을에 단관극장이 4개(묵호, 문화, 보영, 동호극장)나 있을 정도로 번화가였던 마을이 지금은 인구 3,193명(2024년 현재)에 불과하다.
동해문화원은 묵호 등대마을 중심의 논골의 골목길 이야기와 생활문화를 전승하기 위해 한국문화원연합회와 문화체육관광부 지원 ‘어르신문화프로그램’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2010년부터 계속 사업으로 추진했다. 논골담길은 벽화마을이 아니다. 마을 생활문화와 이야기를 발굴해 이야기를 표현하는 도구가 벽화가 됐다. 해를 거듭할수록 벽화가 늘어가자 여행자들을 통해 벽화마을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 마을은 약 6개월 정도의 주민 대상 스토리텔링을 통해 이야기를 발굴하고 진행했다. 벽화 외에도 텃밭 재생 30여 곳을 약 2년간 추진했다. 바람의 언덕 경우는 별도 예산을 확보해 바람개비 프로젝트도 진행한 바 있다. 이 결과로 2016년 5월 13일 전국 문화원장 청와대 초청간담회에서 어촌 자원 활용 창조경제 우수 사례발표도 있었다. 이 외에도 유네스코 문화유산센터 무형유산포럼, 한국여성수련원, 마을 만들기 전국네트워크, 강원연구원과 나주문화원 등 문화원, 박물관 등 지속적인 사례발표와 매년 문화원 가족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묵호 논골담길은 4개 골목으로 구성됐다. 논골 1길과 논골 2길, 논골 3길과 등대 너머에 등대오름길이 있다. 최초 2010년 마을의 시작은 논골 3길에서 소박하게 진행됐다. 요즘 방문은 대부분 묵호항 수변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논골 1길에서 시작한다. 논골 1길에서 바람의 언덕 전망대를 지나 논골 2길, 논골 3길을 걷고 나면 끝자락에 묵호등대가 나오고 등대오름길로 향한다. 막상 걷다 보면 마음을 당기는 그림을 향해 발이 먼저 가서 어느새 코스는 별 의미가 없어진다. 논골 1길 가는 길에 바닥 벽화와 감성 벤치도 눈길을 끈다. 개인적으로 기획자 입장에서 가장 매력적인 길을 꼽으라면 원형이 일부 훼손된 아쉬움도 있지만 논골 원형이 남아있는 논골 3길의 좁은 골목과 2길 묵호 극장 및 모두의 거리와 1길이다. 낮은 슬레이트 지붕이 위태롭게 이어지는 언덕과 하늘을 가로지르는 전선 자락이 어지럽지만, 세월의 더께가 앉은 벽화 그림은 가던 걸음을 멈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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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선의 기쁨과 고단함을 막걸리 한 잔에 풀고 있는 어부의 술상, 생선 좌판에서 싱싱한 문어를 손질하는 아낙네, 지게를 내려놓고 잠시 쉬는 어르신의 모습 등 담벼락 한 칸에 그려진 그림만으로 마을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성큼 다가온다. 골목의 벽화는 햇볕과 바람에 아련하게 바래가지만, 애잔한 감성은 여운이 오래 남는다. 논골담길이 감성 관광지와 주목을 받게 되자 중국, 일본, 동남아를 비롯한 국내․외 관광객들이 급증하여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후 동해시가 참여 도심 관광 활성화 사업 추진과 최근 스카이밸리와 해랑 전망대 개장과 함께 동해시 북부권 대표적인 관광지로 성장하고 있는 곳이다. 논골담길 시작은 '묵호의 생활문화와 마을 이야기 전승'이다. 필자는 케이블 TV를 준비하던 방송사 재직시절, 뉴스 취재차 묵호를 여러 차례 방문했다. 자연스럽게 마을 사람을 만나게 됐고 묵호의 삶과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 추억 소환은 오늘날 사랑받는 논골담길의 시작이 됐다.
논골담길이 있는 묵호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기항지>로 불리던 곳이다. 당시 묵호는 길의 강아지도 만 원권 지폐를 물고 다닐 정도로 오징어, 명태잡이로 호황을 누렸으나, 어업량 감소로 쇠퇴한 묵호는 현재 논골담길 중심으로 감성 관광지로 새로운 도약을 하고 있는 마을이다. 묵호는 1976년 10월 28일부터 30일 사이에 대화퇴어장에 큰 풍랑이 일어나 묵호항에서 출항한 오징어잡이 어선들이 전부 침몰했고 선원 4백여 명이 사망한 사건, 영동 남부권 신사들의 사랑방 나포리 다방,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 만복이, 극장, 과부촌, 등대 이야기 등 묵호는 짠한 기억이 넘치는 마을이었다.
복제할 수 없는 묵호에서만 보고 듣는 삶과 이야기를 기록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고민하던 시기, 이웃 주민들의 거듭된 묵호 이야기와 공모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맞이했다. 묵호이야기를 전승하기 위한 논골담길 시작은 이렇게 소박했다. 이때부터 이야기와 담이 있는 마을이라고 ‘묵호등대 담화 마을, 논골담길’로 부르기 시작했다. 유행을 따르던 타 프로그램과 차이점은 첫째_철저한 주민 대상 구술로 마을의 이야기와 젊은 작가 생각을 담고자 화려한 그림과 글을 지양하고 마을의 삶을 표현했다는 점이다. 둘째_묵호 고유의 색을 발견했고, 그 속에 묵호의 삶과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셋째_ 이야기와 벽화 원형을 바탕으로 다양하게 성장하는 작가의 상상력을 활용한 성장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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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 들면 만복이 시리즈다. 만복이가 현직 기자인 임봄 문학평론가 반려견 아롱이와 논골담길에서 만나 사랑하다 2세인 동녘이 가 탄생했다. 이듬해 논골 2길 만복이 옆에 벽화로 그려지고 과정 이야기는 해설사 해설로 논골에서 성장하게 되는 형태다. 고요하던 마을에 인파가 몰리면 소음으로 민원이 발생하게 마련이다. 논골담길은 청소년 어시스트, 가족봉사단 등 몇 가지 사전 선행 프로그램 운영으로 다른 지역 사례에 비해 민원을 줄일 수 있었다. 마을주민 스스로 마을을 알리고 해설하는 스토리텔러 양성으로 매년 20명 이상의 어르신 일자리를 만들고 소통했다. 청소년 대상 어시스트 동아리를 만들고 조를 편성해 주말마다 집집이 방문해 청소, 이야기, 안마, 장 봐드리기 등 지속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소통한 결과 주민들은 마을이 왜 변해야 하는지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이후 오히려 현장 작가들에게 커피와 음료를 제공하는 등 사업에 동참하며 각종 민원을 줄여 나갔다.
벽화는 3~4년이 지나면 보수작업을 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당시는 매년 성장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낡은 벽화와 이야기는 새 이야기 발굴과 이미지로 장소를 보수하고 작업결과는 스토리텔러 교육을 거쳐 관광객 해설을 돕게 했다. 논골담길 관광객이 증가하고 시설이 늘자 시설관리와 운영은 동해시에서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다. 동해문화원은 원더할머니 합창단, 등대 음악회 등 문화콘텐츠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논골담길은 묵호 사람들의 고단하고 질긴 삶의 흔적을 기록하고 이미지로 표현한 나지막한 어촌 골목길 재생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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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별 이야기 발굴과 기획은 당시 현장을 총괄하던 작가 유현우 씨가 담당했다. 유 작가는 젊은 생각과 감성 넘치는 소소한 아이디어로 감동을 주는 마스코트와 상징 인물들을 꾸준히 탄생시켜 왔다. 벽화마을보다 생활문화와 마을이야기를 발굴하기 위해 시작된 곳이 논골담길이다. 이야기 표현의 도구가 벽화가 되면서 여행자들이 벽화마을로 부른 곳이다. 논골의 경우 아직도 좁은 골목길의 원형이 일부 남아있다. 묵호에 와야만 보고 들을 수 있는 기록과 장소성 때문에 여행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논골담길은 묵호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이야기와 벽화로 조성된 지붕 없는 자연갤러리이다. 근사한 조명은 뜨거운 태양 볕과 촛대 가로등이 대신하였고, 큐레이터의 작품설명은 한없이 부딪히는 파도와 바람의 소리가 설명하고 있다. 이 길은 어느 길로 올라가도 묵호 등대에 닿는다. 거미줄처럼 얽힌 마을 길을 빠짐없이 둘러보고 해설사의 해설을 들어야 묵호등대마을 논골담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림 하나하나에 마을주민의 삶과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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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호등대마을의 벽화 가운데 유난히 눈에 띄는 오징어와 명태, 장화는 마을 사람들에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언덕의 가장 높은 곳에는 오징어와 명태를 말리는 덕장이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묵호항으로 들어온 오징어와 명태를 바지게나 빨간 고무대야에 담아 덕장으로 날랐다. 골목은 <바지게>와 <고무대야>에서 흐른 물로 늘 질퍽질퍽해 장화를 신지 않고는 다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라는 도시의 언어가 유행할 정도여서 장화 캐릭터도 마을 곳곳에 설치미술로 등장하기도 했다.
논골은 과거 텃밭이 많았다. 지금도 잡초가 무성한 곳도 있지만, 고추와 가지, 호박 등 묵호등대마을의 소박한 삶을 키우는 텃밭도 제법 보인다. 동해문화원은 ‘텃밭 재생 프로젝트’도 선정되어 4년 연속 진행했다. 주제는 에코, 힐링, 여행, 유산 등이며 채소와 꽃 재배를 할 수 있는 다양한 예술 텃밭으로 토양을 확장한 기억도 있다. 자연 그대로의 생활문화를 품고 있는 이야기와 벽화 작품들은 초라하지 않은 논골담길 갤러리에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매년 하나씩의 지붕 없는 갤러리를 새롭게 준비하는 논골담길, 때론 미로처럼 얽힌 골목에서 길을 헤매더라도, 가파른 담길을 오를 때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더라도 논골담길은 성장하고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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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길 은 좁은 길을 따라 가파른 언덕과 이어진 마을이다. 마치 바위틈에 붙은 따개비처럼 빈틈없이 집들이 마주하고 있다. 묵호가 얼마나 억척스러운 세월을 보냈는지 알 수 있다. 쉼이 없고 밤새 집어등을 켜야만 했던, 늦은 저녁에도 덕장의 불빛들이 밤하늘의 달빛, 별빛보다도 환했던 그 시절 모습이다. 묵호와 논골은 쉼이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작금의 묵호는 쉼이 있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논골담길을 찾는 순례자들은 스스로 삶의 휴식처를 찾아 떠나오고 논골의 가파른 길에 오르길 자청하고 있다.
할머니가 된 묵호의 어머니들은 길목 벤치나 경로당을 의지한 채 논골담길을 지키고 있다. 묵호는 이제 쉴 틈 없이, 밤낮 구분 없이 그렇게 달려온 세월이 지나가고 억척스러운 삶 모습을 내려놓고 쉬어가는,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곳으로 변하고 있다. 화려한 구경거리는 아니지만, 오랜 세월이 빚어낸 삶과 추억의 기억들이 묵호를 떠올리는 장소다. 옆에 누군가 슬쩍 다가와 앉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곳, 나의 무게를 덮어주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묵호 논골담길 중심에서 밤하늘의 내린 별빛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언젠가 이곳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시간 밤새 수다를 떨고 싶다. 그곳이 묵호 논골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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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골담길은 이미 13년 전에 마을 재생을 시도한 사례로 당시 문화원 환경에서는 공모사업이 아니었다면 상상하기 힘든 사업이다. 밖으로 나가 현장에서 수백 명의 주민공동체와 같이 호흡하면서 만들어낸 쉽지 않은 성과다. 고단했던 묵호 사람들의 삶을 공공미술과 이야기로 새롭게 소환하고 희망을 볼 수 있었던 시간이다. 논골담길이 묵호의 로컬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한 하나의 과제는 복제할 수 없는 논골담길 콘텐츠 원형 복원이며, 최대성과는 묵호 사람들과 긴 세월 호흡으로 일궈낸 문화공동체다.
논골담길은 박사논문 발표, 청와대 사례발표, 언론, 방송의 보도, 한국관광공사, 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성장해 왔다. 이후 문화원 인력으로 규모의 한계에 봉착할 시기 동해시의 관심과 집중 투자로 논골단길은 제2의 도약과 함께 감성관광지로 정착하게 됐다. 지금은 연간 6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이 찾는 지역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됐다. 이로 인해 지역 도시재생과 어촌 활력 증진사업 등 프로그램 진행 자문이 이어질 정도로 문화원의 위상은 지역 마을 재생의 중심에 있다.
어르신 문화정책의 방향은 그들이 원하고 만나고 싶은 세상을 만나게 하는 정책과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정책을 수립하는 단계부터 어르신이 참여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가장 잘할 수 있는 생활 중심의 정책, 어르신이 주인 되는 어르신의 담론을 담아내야 한다. 풍성한 어르신 문화정책 방향 수립을 위한 사전 준비 프로그램을 제안한다면 어르신들의 생각으로 미래 어르신을 세계를 완성하는 어르신, 기획자, 관계자가 참여하는 <어르신 해커톤 대회> 개최 등을 추천해 본다.
해커톤’은 ‘해커’와 ‘마라톤’의 합성어로 한정된 기간 내에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 참여자가 팀을 구성해 에너지정보 플랫폼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에너지 절약·효율화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한 대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