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_기록일지_ 눈물의 묵호항, 이향심 구술 편
구술자_ 이향심
1959년 명주군 묵호읍에서 태어나서부터 고등학교 시절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묵호에서 사셨다. 묵호에서 다도구 전문점 ‘호다’에서 다도 수업을 하고, 관광객과 현지인들에게 차를 마시면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운영 중이다. 아버지가 엿공장을 운영하실 당시 배달 업무를 볼 사람이 없어서 명주군 최초로 여성 운전면허를 취득하셨다. 분청사기의 매력에 빠져 도자공예를 배우셨으며 결혼 후 수공예전문점, 아동복전문점, 꽃집을 운영하였고, 취미로 민화 그리기, 서예, 수영, 어싱을 하고 있다. 차명상지도사, 대한민국 최고급 다례사, 플로리스트 1급, 실천예절 지도사 자격증이 있으며, 묵호시장의 먹거리들이 다양하게 생겨서 예전처럼 묵호가 활성화가 되었으면 하셨다.
묵호의 도자기, 다도구 전문점 호다!
1959년 명주군 묵호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묵호에서 다도구 전문점 호다를 운영하시며 묵호의 발전과 호황기의 부활을 염원하고 있다. 구술자는 묵호초등학교, 묵호중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를 따라 양양으로 갔다가 양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아버지를 따라 묵호로 오게 된다. 아버지는 1.4 후퇴 때 이북에서 남한으로 오게 되었는데 6.25 전쟁 후 휴전선이 생겨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묵호에 정착하셨다. 아버지는 요리에 대한 일가견이 풍부하셨고 요리를 참 잘하셨다.
구술자의 집은 묵호에서 제과업을 운영하다 대형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생기면서, 엿공장으로 전향해 운영하게 된다. 엿공장을 운영할 당시 인근의 탄광에서 근무하시던 광부들도 엿을 많이 사러 왔으며 조청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엿공장에서 재직하시던 분 중에 묵호극장에서 간판을 그려주시던 분이 계셔서 무료로 영화도 보러 자주 가셨다고 한다. 엿공장이 잘 되어, 배달을 해야 하는데 언니는 결혼했고 동생은 너무 어려서 구술자가 명주군 최초의 여성 운전면허를 취득하게 된다. 운전면허 취득 후 그 당시 어린 여성 운전자를 보면 아무 이유 없이 경찰들이 불러 세웠다고 하며 여러 가지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한다.
테니스를 배우러 갔다가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으며 종교는 가톨릭을 가지게 되었으며 지금은 잠시 쉬고 있는 중이다. 수공예를 시작으로 모다 아동복전문점을 운영하였고 ‘플라데코 꽃집’을 창업하게 되었다. ‘플라데코 꽃집’은 잘 되었으며 영정 장식을 하게 되고 관공서에 납품하면서 더 번창했다. 구술자는 분청사기의 매력에 빠져 도자기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꽃집을 운영하다 어려움에 직면해 고향인 묵호에 작게나마 기여하고자, 직접 만든 도자기와 다도구들을 판매하는 다도구 전문점 ‘호다’를 창업하게 된다.
‘호다’의 ‘호’는 묵호처럼 검은 호수라는 뜻이었지만, 구술자 사주에 물이 많아서 작명가에게 찾아가 항아리 ‘호’로 바꿔 ‘항아리에서 잘 익은 차’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구술자는 ‘호다’ 를 운영하며 다도 수업을 하고 있는데 처음에 산만하던 아이들도 얌전해지고 공손해지는 과정이 눈에 보인다고 한다. 취미로 서예와 수영, 민화 그리기를 하고 있으며 망상해변에서 맨발 걷기인 ‘어싱’을 하고 계신 데, 활성화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예전의 묵호가 성황이었던 이유는 고기가 많이 나기 때문인데 지금은 고기도 많이 잡히지 않아 쇠퇴기를 맞고 있는데, 묵호의 번성기 시절을 그리워하시며 현재를 살아가는 세대들에게 묵호에 독특한 문화가 만들어지고 활성화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기록가_ 허지원
고향은 대구이며 3년 전 결혼 후 동해시에 정착하여 건강이 좋지 않아 전업주부로 가정 살림에 충실했다. 그러던 중 2번에 걸친 자연 유산으로 우울증에 걸려서 집순이 생활을 했다. 우울증 탈피의 수단으로 취미로 블로그를 하다, 2022년 4월 네이버 여행 인플루언서로 선정이 되어 ‘@미소 가득 지원’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발한 SNS 활동을 하고 있다. 이방인이라 동해시와 묵호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번에 기록가로 활동하면서 향토 토박이 구술자님들에게 과거의 묵호의 모습과 현재 묵호의 모습을 상세히 들으며 지역에 대해 더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기록가로 활동하며 현재는 자연임신 3개월 안정기를 지나 태교로 구술 이야기를 듣고 있다.
구술 소감
친한 언니에게 처음 동해문화원에서 생활사 기록가를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생활사 기록가와 구술이란 단어가 익숙하지 않아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 일인지 잘 몰랐다. 강원도 동해시에서 서울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으로 교육을 다니며, 구술사와 생활사 기록가가 하는 일에 대한 교육을 받고, 어느 책에서도 얻지 못하는 삶의 지식과 지혜, 그 지역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며 생업을 이어오신 토박이분들에게 전해 듣는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이란 걸 알게 되자 수박 겉핥기식으로 하면 안 되겠구나! 한 사람의 인생과 그 지역의 역사를 기록하는 막중한 임무를 지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생활을 많이 하지 않아서 처음 기획서를 작성하는 일부터 막막했다.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에서 교육받고, 아우름 비즈에서 피드백이나 조언도 구하며 기획서도 난생처음 작성해 봤다. 카메라보다 핸드폰에 익숙한 디지털 세대라 카메라 앞에서 디지털로 구술 촬영을 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구술자님과 긴장도 풀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촬영하다 보니 카메라 촬영에 점점 익숙해져 갔다. 촬영이 끝나도 할 일은 많다. 기억이 소실되기 전에 면담일지부터 작성해야 하고 녹취록 작성, 상세목록 등 19가지 서식을 작성해야 하느라 밤을 꼬박 새운 날도 부지기수였다.
완벽한 서류작성은 하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검수본을 보면 부족한 점이 많이 보여서 허탈하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할 묵호의 역사와 더불어 인생을 다 바쳐서 생업을 이어오신 구술자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생활사 기록가로 참여하게 돼서 뿌듯한 마음이 든다.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렵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디지털 생활사 기록가와 구술자님들을 응원한다. 앞으로 목표는 동해문화원에서 강의를 하셨던 김태수 박사님이나 이승철 박사님처럼 한 지역에 한 달 살기를 하며 지역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누구도 기록하지 않지만, 책에서도 찾을 수 없고 인터넷에서도 검색할 수 없는 그 지역의 고유한 향토문화와 역사를 기록하며 자료를 남기는 책을 한 권 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