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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연섭 Mar 31. 2023

육지가 바다가 된, 동해 송정해수욕장!

5. 브런치스토리와 떠나는 동쪽여행

‘바다가 육지라면’ 보다 ‘육지가 바다라면’이 어울리던 송정, 동해항 건설로 실제 육지가 바다 된 최고 명사십리 백사장(1. 삼척, 2. 북평, 3. 송정) 해수욕장 추억여행을 떠나요.

지금의 강원도 동해 송정은 과거 육지가 바다 된, 멋진 명사십리 송정해수욕장이 있었다. 당시 1965년 이전은 삼척해수욕장으로 영동남부에서는 첫 해수욕장이었고 1965년 삼척 후진해수욕장이 들어서면서 1965년부터는 북평해수욕장으로 불리다가 그 후 송정해수욕장으로 부르고 있다. 당시 1960년대 사진을 보면 명사십리 해변과 갯목을 잇는 해수욕장은 바닷물과 강물이 합수하는 현장으로 거의 환상적인 해변을 자랑했다. 1960년 중반 해변 길목은 '마이마이숙소'와 '바다상점'등이 인기였다. ‘바다상점’을 직접 운영했던 집 둘째 아들 홍협(남. 62. 동해학기록센터) 연구원은 회상한다.

1965년 북평해수욕장 우편엽서, 사진_동해학기록센터 DB
당시 송정해수욕장 바다상점에서는 최초 판매를 시작한 OB맥주 호프와 삼호 소주가 불티나게 팔리던 시절, OB맥주의 임원 상무가 서울로 관계자를 직접 초청해 식사대접 할 정도로 호프(HOF)는 우리의 호프(HOPE_희망)였다.
"당시 해변 '바다상점'에서는 삼호 소주가, 맥주는 OB백주에서 생산한 호프가 최초로 공급되면서 인기가 대단했다. 오죽했으면 서울 본사에서 불러 상무가 직접 나와 식사를 대접한 일화도 있다. 그리고 송정에서 찍은 옛 사진을 보면 미남, 미녀 가 많은데 이유가 있다. 그만큼 송정해수욕장은 명사십리를 자랑하며 백사장 뒷길은 활주로의 비행장이 있었고 해변은 '세기 탁구장'과 '오락실', 뒤쪽은 서비스 좋고 깨끗한 ‘부산여관’, ’ 영주상회‘등이 있으며 서비스가 좋기로 소문난 해변이어서 서울에서 그만큼 공기 좋은 송정해변으로 많이 찾아왔기 때문에 사진 기록의 주인공들은 세련되고 미인이 많았다. “

또 하나 해수욕장의 재미있는 이야기는 송정초등학교 60년 사에서 발견된 송정 그림지도 중에서 영주상회 부근 솔밭을 가로질러 두 길에 있는 남자 길, 여자길이다. 송정 출신으로 과거 언더그라운드 음악다방 DJ출신인 이순희(여. 61)씨는 기억한다.

송정초등학교 60년사 송정 그림지도, 사진_동해학기록센터
“남자길, 여자길 뒤쪽으로 나오면 뼈다구 호텔이라고 짓다 만 뼈다구만 남아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의 흉물의 건물이 있었다. 이곳은 당시 청소년들의 연애장소로 우범지역이었다. 그리고 길 좌 우로는 송정의 자랑인 솔밭이 무성했다. 당시 마을 이웃에게 듣기로는 이 일명 뼈다구 호텔과 솔숲에서 연해하던 청춘들이 잘 나가다 싸우는 날이면 각자 헤어져서 걸어가던 길로 좌측은 남자길, 우측은 여자길이라고 했다. “
바다상점 초기 연구원 홍협씨 가족, 사진_동해학기록센터

해수욕장은 긴 활주로를 나는 비행장이 있었다. 홍경표(남. 85) 전 동해문화원장은 “공직 시절 이곳에서 비행기를 이용해 청와대 업무 보고를 다녔다. “라고 했다. 강원도 영동남부 최초 해수욕장으로 명성을 떨치던 송정해수욕장이 동해항이 들어서던 1976년 4월 2일, 해수욕장을 막아 육지를 만들고 해변이 영원히 바다가 되는 아쉬운 현장에서 마지막잔치를 벌이며 육지가 바다가 되는 현장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육지가 바다라면?
육지가 영원히 바다가 되는 모습을 아쉬하는 마지막 잔치, 1976.4.2, 사진_동해학기록센터

특히 송정해수욕장은 바닷물과 민물이 합수하는 갯목에서 해수욕 최고의 맛을 본다. 바다에서 종일 해수욕을 하고 해가 질 즈음 갯목으로 이동 민물에 온몸을 씻으니 별도의 샤워장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인기였다. 이 아름다운 해수욕장이 1979년 동해항이 들어서면서 사라진 송정해수욕장은 동해항과 배후단지에 들면서 근대산업을 이끈 관문이자 환동해권 물류교역의 중심으로 강원도 물동량의 55%를 취급하며 강원도 유일의 국가관리 무역항이 된다. 그러나 도민이 수십 년간 염원했던 북방물류전진기지조차 동해항 중심에서 경북 포항 영일항으로 지정되면서 특정지역 여론에 떠밀려 국가의 중요한 정책이 정치적 도구로 변질되지 않나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송정의 아름다운 해변을 가져간 동해시민의 경우 훗날 당시 세운 원대한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반토막 항구로 남아있는 실정에 개탄할 일이었다.


동해항 3단계 확장으로 시설기능 편제가 새롭게 이뤄지길를 기대하고 있으며 육지를 바다로 내어준 송정주민들은 개항 40년간 분진, 고움, 진동으로 송정 주변의 환경피해 해소를 위해 제4차 전국항만기본계획에 기존 동해항의 기능을 재배치해 동해항 3단계의 벌크화물 전용과 이를 위해 3단계 부두의 벌크 화물을 취급하는 민자 부두의 국비부두 추진과 송정동 인근의 기존 서부두와 북부 두는 분진피해가 없는 친환경적인 잡화 및 컨테이너 부두로 지정 고시돼야 할 것이라고 한 목소리다.


이때 솔밭으로 유명한 송정의 솔밭 옆 중앙침례교회, 벽돌공장 옆에 살았다는 이순희(여, 61)씨는 당시를 한 번 더 맑은 필름처럼 선명하게 기억한다.

"당시 송정은 앞섬이라는 유명한 작은 섬이 있었다. 그 앞섬은 골뱅이가 엄청 많아 방학만 되면 골뱅이 주으러 많이 다녔다. 그리고 지나가는 솔밭은  일제 강점기 일본 사람들이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매단 목걸이 모양은 섬찟한 노끈들이 매달려 있을 정도로 살발한 시기도 있었다. 또한 유명한 짓다 만 흉물의 호텔, 일명 ‘뼈다구 호텔’(지금의 송정 좌측 주택가 추정)이 당시 거지들과 청소년들 연애장소 드나드는 우범지역으로 일반인들은 얼씬도 못했다. 또 유명한 영주상회는 쌀집이면서 잡화도 판매한 인기 상회로 부모님이 머리가 좋아 자식도 서울대로 진학할 만큼 지금까지도 소식이 전해온다 "

이렇듯 송정은 지형도 학이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자세인 '학비형국'의 지형과 ‘송정팔경‘이 말하듯 글을 쓰고 그리는 역사 인물이 많이 탄생한 영동남부권 문화의 중심지이다. 송정에서 3대 이어오고 있는 노포 막걸리 송정막걸리를 테마로 2019년부터 송정막걸리축제를 개최하고, 마을 송정시장 상가는 젊은 청년작가들이 마을에 문화를 입히기 위해 입주한 지 4년쯤 된다. 이들은 각종 공모사업을 통해 주민공동체와 활발한 문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도시재생 사업 추진을 위한 준비도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송정의 새로운 도전이 송정의 밝은 미래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북평해수욕장 당시 출렁다리, 사진_동해문화원, 동해학기록센터
북평해수욕장 전경, 사진_동해문화원, 동해학기록센터
참고문헌_이야기가 있는 송정, (동해문화원 8년의 기록, 글 홍구보, 기획 조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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