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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연섭 Apr 03. 2023

묵호 ‘노가리 시장’ 이야기!

8. 브런치스토리와 떠나는 동쪽여행

강원도 동해 묵호에 가면 지게 하나로 먹고살 수 있다던 시절이 있었다. 유창하게 말하면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기항지“로 불리던 곳이다. 그 묵호 중앙시장 뒤편 안 골목은 전국 유일의 ‘노가리 시장’이 있었고 밤 낮 전국에서 몰려온 노가리 도매 장사 꾼들로 넘쳤다.

노가리 시장이 보이는  발한 삼거리, 사진_ 동해문화원 DB

묵호에 살려고 온 사람들은 어느 해, 어느 철에 왔느냐에 따라 첫 이미지가 달랐다. 오징어가 길거리에 발로 차일 정도로 많이 난다는 소문을 듣고 왔는데, 정작 눈에 보이고 냄새나는 건 노가리뿐일 때가 많았다.


충남 부여에서 농사짓다 4남매를 데리고 묵호로 온 장용남(85세, 동호동 거주) 씨도 오징어 대신 노가리만 실컷 구경했다며 그 시절을 기억한다.

"짓던 농사 추수를 끝내고 초겨울, 묵호로 와 짐 푼 곳이 등대 건너편 도째비골 이랬어요. 거기에 빈집이 마침 하나 있었거든요. 말이 집이지 그냥 집 흉내만 냈으니 찬바람이 방 안으로 막 들어왔어요. 벽은 이다 판자때기를 대충 붙였고, 지붕은  여러군데 찢어져 있었어요. 다행히 이웃이 좋았어요. 곧 망상으로 가 지계로 몇 행보해 지붕을 잇고, 이다를 더 주워와 구멍을 막았지요. 그때는 내 집만 그 모양인 게 아니라 다 그랬지요. 오죽하면 동네 이름이 제비집 이 또 생겼다 해 또 제비골이라 불렀겠어요? 집은 다행히 남향이라 볕이 잘 들어 큰 추위는 없었어요. 그런데 집 뒤로 온통 공동묘지였고, 사람 하나만 다닐 만큼 좁은 길이 구절양장처럼 이어졌지요. 가끔 군용 트럭만 험악한 산길을 오가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어요. 집 정리가 끝나자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내 지계에 맞는 수쿠리'를 장만하는 일이었지요. 지게는 부여에서 농사 지을 때 쓰던 지게를 가지고 왔지요. 당시 내 고향까지 뭔 소문이 났냐 하면 ‘강원도 묵호 가면 지게 하나로 먹고살 수 있다.’라 했어요. 처음엔 옆집 김 씨가 말하는 ‘바수쿠리’가 먼 말인지 몰랐는데, 바(줄)하고 소쿠리를 합친 말이었지요. 바수쿠리 밑에 양철 쪼가리를 대고 양끝에 구멍을 냈어요. 그렇게 해야 옷이 젖지 않고 물이 빠진다고 김 씨가 그랬어요. 처음엔 뭔 소린 줄 모르고 시키는 대로 하고 부두로 따라갔어요. 나는 오징어가 지천으로 있는 줄 알았는데, 그건 하나도 안 보이고 노가리만 부두에 잔뜩 있었어요. 지독한 비린내가 찬바람을 타고 코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재채기를 수 십 번 했지요."
묵호 중앙시장 뒷골목, 사진_ 동해문화원 DB

그렇게 시작한 지게질이었다. 당시 리어카는 시내 음식점이나 신작로 가까이 있는 젓갈공장이나 건조가공공장으로만 다녔다. 덕장이 있는 논골이나 산짓골에는 전부 지계로만 운반했다. 부두에는 늘 지게꾼들이 줄을 쭉 서 차례를 기다렸다. 선임들은 덕장 주인 얼굴만 보아도 어디로 가는 줄 알지만 신참들은 바수쿠리에 싣고도 어디로 갈지 몰라 한참 두리 번거러야 했다. 물건 주인도 자기 짐이 도대체 어느 지게에 실려 있는지 몰라 서로 찾느라 진땀을 뺐다. 이래저래 신참들은 죽을 맛이었다.

"장 씨는 농사일에 이골이 나서 지게질 하나만큼은 자신 있어요. 노가리를 바수쿠리에 가득 담고 작대기에 힘주며 소리 내며 일어났어요. 그런데 물이 철철 흐르는 생물이라, 일어서는 순간 짐이 한쪽으로 쏠리니 비틀거릴 수밖에 없었지요. 겨우 자리 잡고 앞장선 김 씨를 놓칠세라 부지 런히 따라갔지요. 갈수록 바수쿠리 양가로 물이 뚝뚝 떨어지니, 짐은 조 금씩 가벼워지는 것 같았지만, 덕장가는 길은 끝이 없었지요. 그렇게 지게질을 시작했는데, 차츰 요령이 생겼어요. 등대 덕장에서 내려갈때 빈 걸로 내려가지 않고, 곤지나 아가미, 창란이나 명란을 발한동에 있는 식품공장까지 지고 갔지요. 그건 값이 비싸고 먼 거리기 때문에 소규모 덕장도 하나 둘 없어졌다. “
옛 노가리 시장, 주차장과 공연장 작업 장면. 사진_동해문화원DB

아직 남아있는 덕장은 빨랫줄이 되거나, 새치 나 양미리 몇 두름이 널릴 뿐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노가리 시장'도 이렇게 사라졌다. 노가리 냄새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던 가게와 골목은 주차장과 공연장이 되고, 중앙시장의 새 이름인 독도 가는 바다 길목‘동쪽바다 중앙시장’으로 거듭나 야시장과 논골담길 등과 연계한 프로그램으로 옛 명성을 다시 찾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최근은 중앙시장의 자랑인 장 칼국수를 테마로 축제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문헌, 이야기가 있는 묵호, 동해문화원 8년의 기록, 글 홍구보, 기획 조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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