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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연섭 Aug 20. 2024

해변 맨발 걷기, 덕이 되는 중독

86. 맨발 걷기

동해의 한섬해변, 이른 아침의 공기는 시원하고 상쾌하다. 바다의 잔잔한 파도 소리가 귓가를 스치며, 나의 발아래로 부드러운 모래가 느껴진다. 맨발로 추암, 망상, 한섬 해변 등을 걷기 시작한 지 벌써 278일이 지났다. 이 시간들은 나에게 일상 이상의 의미가 되고 있다. 해변의 맨발 걷기는 습관을 넘어,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되어버렸다.


지난 13년 동안 신발을 신고 걷는 것도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해변 맨발 걷기를 시작하면서, 필자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다. 처음엔 발에 닿는 차가운 모래와 돌멩이들이 익숙하지 않아 조심스럽게 걸었지만, 이제는 그 모든 감각이 내 몸과 마음을 깨우는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발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모래의 촉감,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잔잔한 물결, 때로는 강추위 속에서도 오히려 생명력을 느끼게 만드는 한겨울의 바람까지도 말이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단지 육체적인 건강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에너지도 충전할 수 있었다. 술 평론가 허시명 씨가 그의 책 '주당천리'에서 “술이 떡이 되게 마시지 말고 덕이 되게 마셔라”라고 말한 것처럼, 해변에서의 맨발 걷기도 나에게 덕이 되는 중독이 되었다. 우리는 종종 무언가에 중독되기 쉽지만, 중독이 반드시 해로운 것일 필요는 없다. 해변에서 맨발로 걷는 중독은 내게 평온함을 주고, 매일의 시작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매일 아침, 해변을 맨발로 걷는 순간은 나만의 성스러운 시간이다. 도시의 복잡함에서 벗어나 자연과 하나가 되는 이 짧은 순간은 나에게 깊은 휴식과 명상을 전해준다. 바닷바람이 내 얼굴을 스치며, 나는 자연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비로소 하루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20일 아침, 한섬해변

맨발로 해변을 걷는 일은 내 삶의 새로운 의식이 되었다. 그것은 운동이나 취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내가 매일 아침을 어떻게 맞이하는지에 대한 선언이자, 자연과 연결된 나만의 특별한 방식이다. 그래서 나는 덕이 되는 중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해변에서의 맨발 걷기를 이어나갈 것이다.


이 세상에 많은 중독이 있지만, 해변에서의 맨발 걷기처럼 덕이 되는 중독은 흔치 않다.매일 이 작은 의식이 나에게 주는 행복과 평화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이다.

한섬 여명
한섬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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