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노을포럼
동해 천곡의 '고불개', 큰 바닷가!
동해의 역사적, 지리적 흔적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고대의 기록들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전해지며, 그 속에서 우리 삶의 뿌리와 문화적 유산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탐구의 일환으로 진행된 동해문화원 소속 동해역사문화연구회 9월 노을포럼은, 우리가 익히 알던 공간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귀중한 시간을 제공했다.
이번 포럼의 두 가지 주요 주제 중 첫 번째는, 동해 무릉계의 용추 입구에 새겨진 암각서 ‘별유천지’의 글쓴이가 누구인가에 대한 검토였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여러 인물들이 이 글씨를 쓴 저자로 지목되었다. 김효원, 이정수, 이최중 등이 대표적으로 논의되어 왔지만, 명확한 증거는 부족했다. 강동수 전문위원 분석에 따르면, 김효원은 암각서를 새겼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의 고향이 광릉이 아니라는 점과 조선 시대 부친상을 당한 시기의 정황을 고려할 때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정수 역시 삼척을 떠난 이후의 동선과 관련된 기록이 그가 저자가 아니라고 시사한다.
강위원은 이최중이 이 글을 썼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가 광릉 출신이라는 점과 1758년 음력 3월 무렵 부모의 병환으로 인해 휴가를 얻어 삼척으로 돌아와 용추 폭포를 찾았을 수 있다는 점에서 추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역시 명확한 증거를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암각서 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유효하다.
결국, 우리가 지금까지 '별유천지' 저자로 알고 있는 인물들 외에도 용추 폭포를 다녀간 여러 시인 중 한 사람이 그 글을 남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궁 속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더 많은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다.
두 번째 주제는 동해시 천곡동 해안가에 위치한 ‘고불개’라는 지명의 유래였다. ‘고불개’라는 이름은 처음 들으면 그 자체로 신비롭고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지리적 특성을 반영한 매우 단순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강위원에 따르면, ‘고불개’는 ‘큰 모래 해안가’ 또는 ‘큰 바닷가’를 의미하며, 여기서 ‘큰’이라는 표현은 당대 사람들이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상대적인 개념일 수 있다. 즉, 고불개라는 이름은 그 자체가 특별한 상징이나 역사를 내포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곳의 지형적 특징을 묘사한 것일 뿐이다.
이러한 연구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이름과 장소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자체로 소박하고 실용적인 의미만을 담고 있기도 하다. ‘고불개’의 유래처럼, 일상 속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공간들이 사실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지리적, 문화적 특징들을 담고 있으며, 이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새롭게 조명될 수 있는 가치가 있다.
결국, 우리는 이러한 연구를 통해 과거의 사실을 밝히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얻는다. 역사 속 지명 기원을 연구하며, 우리는 그 땅을 밟았던 사람들의 시선을 되새기고, 그들이 바라보았던 세상을 재구성해볼 수 있다. '고불개'라는 지명의 소박한 기원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과거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며, 우리로 하여금 역사와 지리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이해하게 한다.
이처럼 이름 속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그 공간의 역사와 문화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고, 과정에서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하는 의미들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동해의 작은 해변, 고불개는 그저 커다란 바닷가일 뿐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그 어떤 대서사보다도 깊고 큰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