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맨발 걷기
강풍과 큰비의 예고, 잠에서 깨고 잠시 망설였다. 맨발 걷기 303일차, 꾸준히 해 온 생활의 일부지만 오늘만큼은 그 결심은 잠시 흔들렸다. 하늘은 이미 먹구름으로 가득 차 있었고, 강풍주의보가 내려진 상황에서 비는 내리고. ‘이런 날은 쉬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무조건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울렸다. 결국 그 소리를 따라 무조건 한섬으로 향했다.
한섬해변 작은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차문이 거세게 밀려나갔다. 예상한 대로 바람은 강하게 불었고, 나는 준비해온 장교 우비를 꺼내 입었다. 언제나 활기차던 한섬 해변에는 평소의 맨발러들이 보이지 않았다. 평소 50여 명 가까이 모이던 자리였지만 오늘은 열정으로 무장한 소수의 10여 명만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강풍과 비라는 자연의 경고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묵묵히 바라보며, 한 발씩 해변으로 향했다.
바람은 파도를 백사장 끝까지 밀어내며 사나운 힘을 과시했다. 빗물은 우비를 뚫고 얼굴을 때렸고, 안경은 빗물로 범벅이 되어 시야를 가렸다. 결국 나는 안경을 벗어 손에 쥐고, 흐릿해진 풍경 속에서 그저 발바닥의 감각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네 번의 왕복. 발끝이 백사장을 스치는 그 느낌, 그리고 바람이 온몸을 휘감는 그 순간 속에서 나는 자연과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 문득 맨발 걷기 운동본부 박동창 회장의 말씀이 떠올랐다. "우리가 밥을 굶고 살 수 없듯이, 자연을 만나 에너지를 충전해줘야 한다." 이 말처럼, 우리는 자연에서 얻는 에너지 없이는 살 수 없다. 비록 오늘같이 악조건이 나를 둘러싸도, 자연이 주는 힘을 거부할 수 없는 이유였다. 비오고 바람이 불어도, 그 속에서도 자연은 나에게 쉼과 충전의 시간을 함께하고 있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작성하던 논문을 펼치고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며, 나는 오늘 걸었던 그 시간이 얼마나 값진지 새삼 깨달았다. 강풍과 빗속에서의 맨발 걷기는 나와 자연이 함께하는 의식 같은 것이었다. 비바람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연을 만난 그 순간, 나는 다시금 에너지를 충전했고, 그 에너지가 내 삶을 이어가게 할 힘이 될 것임을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