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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연섭 Oct 09. 2024

소설가 홍구보, 동해 송정 10가지 추억

133. 동쪽여행

학이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모습의 ‘학비형국’ 지형, 서울빵집, 송정막걸리, 송자대전 간소기록을 작성한 유림 홍재모, 무릉유고 최윤상을 서예가 만재 홍락섭을 비롯한 역사인물 등으로 유명한 동해 송정마을은 세월의 깊이와 함께 더욱 풍부해진 문화적, 역사적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이 마을의 골목마다,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소나무 사이사이에는 수많은 추억과 인물, 그리고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 동해서 태어나 성장하고 지금까지 이곳 동해 남쪽에 살고 있는 소설가 홍구보는 이 지역에서 자신의 삶을 통해 얻은 10가지 추억을 들어봤다. 그 추억들은 송정이라는 한 마을의 정체성과 역사, 그리고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삶을 담고 있다.

송정해수욕장(1979년 동해항 개항 이전), 사진_ 동해문화원DB

1. 실직의 들판

송정의 들판은 철기시대부터 집단 거주지가 형성된 유서 깊은 장소다. 움집, 빗살무늬토기, 구리창, 지석묘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고, 송정 지형은 학이 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하는 모습, ’ 학비형국(鶴飛形局)’이라 불리며 하늘이 내린 천혜의 땅으로 불렸다. 바다와 들판, 전천이 어우러진 그곳은 풍요와 자연의 조화를 보여준다.


2. 소나무와 정자의 마을

송정은 소나무가 무성한 고장이다. 이곳의 호수들, 화랑호와 구호는 오래전부터 마을 주민들의 삶에 스며들어 있다. 그 호수를 둘러싼 여러 정자들, 영호정, 애연정, 범사정 등은 오랜 세월 동안 선비들과 주민들의 사색과 휴식의 장소로 자리 잡았다. 소나무와 정자들은 마을의 시간 속에서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3. 선비의 마을

송정은 학문과 서예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소남 이희수가 송정에 머물며 동국진체의 필맥을 전수했고, 그의 제자들이 학문과 예술을 이어받아 발전시켰다. 송정은 학문적 열망이 가득한 선비들의 마을로, 마지막 남은 유학자인 송호 홍종범 같은 인물들의 학문적 전통이 지금도 그 자취를 남기고 있다.


4. 송정의 장사와 체육인

송정의 주민들은 선후배 간의 규율을 중시하며 의리로 뭉쳐 있었다. 백사장에서 공차기를 즐기며 체력을 단련했고, 송정의 체육인들은 역도, 레슬링, 권투, 태권도 등 다양한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동승체육관은 1958년 아시아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박동철 선수를 배출하며 이 마을의 체육 정신을 빛냈다.


5. 전국 제일의 해수욕장

송정 해수욕장은 넓은 백사장과 소나무 숲, 얕은 수심으로 유명했다. 다이빙대와 출렁다리는 이 해수욕장의 명물이었다. 특히 여름철이 되면 북평역에서 해수욕장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명동골목과 민박집, 원두막에서의 추억이 그려졌다.


6. 염전과 후리

송정의 염전과 후리(그물을 쳐 물고기를 잡는 방식)는 지역 경제의 중요한 축이었다. 후리꾼들이 넓은 백사장에서 빠르게 모여들어 멸치, 방어, 상어까지 잡았던 기억은 이 마을 사람들의 생업과 자연의 조화 속에서 펼쳐진 풍경이었다.


7. 북평역과 북삼화학, 그리고 비행장

북평역은 묵호-도계를 연결하며 이 지역의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였다. 북삼화학은 전국의 일류 기술자들이 모여든 곳으로 송정의 경제적 기반을 다졌고, 비행장은 삼척과 연결되어 탄광과 무역, 관광을 활성화시켰다.

송정비행장(1968), 사진_ 동해문화원DB

8. 선진농업의 중심, 재진농장

송정에서는 선진농업 선구자인 장재진이 우장춘의 제자로서 60년대에 4-H 교육장을 설립하며 복합 영농을 실현했다. 최초로 비닐하우스를 도입하고 경운기를 사용하며 송정의 농업 혁신을 이끌었다.

재진농장 영농교육, 사진_ 동해문화원DB

9. 동해항의 명암

동해항은 1975년 송정의 앞들에서 준설 공사가 시작되며 마을 주민들의 이주가 이어졌다. 해수욕장이 사라지고 공해 문제가 발생했지만, 동해항은 북한과의 무역, 금강산 관광 등을 통해 국제항으로 발돋움했다.


10. 송정의 골목길

송정의 골목길은 바닷가와 역, 해수욕장을 연결하는 통로였다. 담벼락을 따라 걸으며 골목마다 느껴지는 옛 추억은 마치 한 편의 오래된 영화처럼, 이 마을의 생동감과 정취를 여전히 담고 있었다.


이처럼 송정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사람과 자연, 역사와 문화가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낸 살아있는 이야기의 공간이다. 송정막걸리처럼 이 마을의 기억도 세월의 깊이와 함께 더욱 깊고 진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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