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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연섭 Oct 13. 2024

맨발러의 눈, ‘멸치 사투’ 이야기

108. 맨발 걷기

추암해변, 멸치 고향으로!

이른 아침, 나는 맨발 걷기 동해클럽 회원 번개로 추암해변을 맨발로 걸었다. 바다의 차가운 공기와 부드러운 모래가 발바닥을 감싸며 자연 속에 나를 완전히 맡기게 했다.맨발 걷기는 걷는 자체가 묵직한 명상처럼 느껴지는 시간이다. 바람 부는 소리, 파도 부서지는 소리, 그리고 나의 호흡.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지며 해변은 깊은 평온의 공간이 된다.

밀려온 멸치, 사진_ 조연섭

점깐! 멸치다. 살았다. 걸음을 멈추게 만든 것은 내 발끝에 작은 생명이 굴러들어 왔기 때문이었다. 바람에 떠밀려 온 것이었을까, 아니면 파도에 휩쓸렸던 것일까. 한 마리의 멸치가 모래 위에 누워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고작 손가락만한 생명이었지만, 그것은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자기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육지로 밀려와, 이제는 모래 위에서 온몸을 비틀며 바다로 돌아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나는 그 작은 몸부림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멸치를 손에 집어 들었다. 이 작은 생명이 느끼는 절박함을 생각하니,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손바닥 위에서 미세하게 떨리는 멸치의 몸은 생존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그 멸치를 바다로 돌려보냈다.


파도에 닿자마자 멸치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바다를 향해 사라졌다. 모래 위에서 필사적인 몸부림은 그저 하나의 해프닝에 불과했던 것처럼, 바닷물에 닿은 순간, 그 작은 생명은 힘차게 물속으로 돌아갔다. 멸치의 모습은 마치 내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듯했다. 생명은 때로 자신이 놓인 환경 속에서 스스로 의지와는 관계없이 위기를 맞이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은 다시 그 생명을 품어가며, 다시금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가게 만든다.


이 짧은 상황은 나에게 삶과 자연의 흐름에 대한 깊은 의미를 던져주었다. 우리는 종종 예상치 못한 사건이나 환경에 의해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는 순간을 맞이한다. 때로는 그 순간이 절망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자연은 언제나 그 본래의 흐름을 되찾아 나가는 힘을 가지고 있다. 마치 멸치가 바다로 돌아가듯, 우리 또한 다시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힘을 발견하게 된다.


동해 추암해변의 아침 풍경 속에서 마주한 이 작은 생명의 이야기는, 인간의 삶에도 적용될 수 있는 하나의 은유였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의 바람에 휘말리곤 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우리는 생명의 본질적인 회복력, 그리고 자연이 가진 포용력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작은 멸치 한 마리의 생명은 그렇게 나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남기며, 멀리 바다로 사라져 갔다.


이제 나는 다시 발을 내딛는다. 맨발로 걸어가는 이 해변 위에서, 나는 자연과 더불어 나 자신도 다시금 회복되어감을 느낀다. 파도는 계속해 밀려오고, 나는 그 흐름 속에 잠시 스쳐 지나간다. 멸치가 그랬듯이, 나도 나만의 바다로 헤엄쳐 나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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