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맨발 걷기
길고 낮은 소리, 파도의 지혜!
여명이 밝아오는 동해 추암, 나는 오늘도 맨발로 고요한 백사장을 걷는다. 이곳에서 맨발 걷기 324일째,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매일같이 나를 깨우는 자연과 마주하고 있다. 바닷바람이 부드럽게 옷깃을 스칠 때, 발끝에 닿는 백사장은 마치 파도가 그려낸 한 폭의 수채화 같다. 파도가 일으킨 물결이 사라지며 빚어낸 모래의 결은 마치 세상사 흐름을 담아낸 듯, 흠 없는 고요와 평온을 전해준다.
오늘따라 파도가 유독 가까이 다가온다. 저 멀리서 힘을 모아 밀려와서는 백사장 위에서 부드럽게 흩어지며 '길고 낮은 소리'를 남긴다. 그리고 다시 멀어지며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한다.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부드럽게 변하는 파도의 모습 속에서 나는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리더십을 배운다.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매 순간 자신을 조정하며 변화에 맞서고, 마침내 다시 일어선다.
리더십은 대단한 힘이나 고집이 아니라, 때로는 '겸손과 부드러움'으로도 발휘될 수 있다는 사실을 파도는 알려준다. 상황에 따라 자신을 낮추고, 때로는 높이는 태도. 부서지더라도 다시 밀려오는 끈기와 인내, 그것이 바로 파도의 지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떤 상황에서는 부드럽게 타협하며 상대를 이해하고, 또 어떤 상황에서는 단단한 믿음으로 자신을 지켜야 할 때가 있다. 이런 파도의 모습 속에서 나는 삶의 다양한 국면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리고 진정한 리더십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해변에서 만난 공무원 맨발러 모씨는 ‘파도 역시 에너지다. 이 에너지를 만나는 순간이 자연의 완성이다. 자연에너지를 만나는 이 시간은 우리에게 선택된 축복이다. ’라며 하하하... 큰 웃음을 짓는다. 갑자기 앞에서 마주 오는 맨발러에게 있는 힘 다해 외친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추암의 백사장을 걸으며, 나는 나 자신을 새롭게 다듬는다. 맨발로 느끼는 바닷물의 포근함과 촉촉함, 그리고 그 위를 스치는 파도의 에너지는 나에게 자연의 경이를 넘어 삶의 본질을 일깨운다. 자연의 변화 앞에 있는 나, 그리고 그 변화에 맞서 끊임없이 변신하는 파도처럼 나도 나의 방식으로 삶의 길을 걸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여명 속에 부서지는 파도와 나의 맨발 사이에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교감이 흐른다. 날마다 변화하는 백사장, 그 위를 흐르는 파도의 리더십은 나에게 삶의 지혜를 속삭인다. 그 순간순간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루고, 또 앞으로의 나를 이끌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