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맨발 걷기
자연, 최초의 공공예술
맨발 걷기 356일, 추암을 걸었다. 유난히 선명한 금빛 해변 촛대바위 언덕 방향으로 걷다 처음 보는 강아지 얼굴과 마주쳤다. 강아지는 얼굴이 선명했다.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 바라본 결과 강아지 얼굴은 솟아 오른 바위의 일부였다. 깜짝 놀란 나는 휴대폰으로 촬영했다. 결과 조금 전 마주친 얼굴보다 더 선명한 강아지 얼굴이었다. 최근 공공예술론을 공부하고 기호학을 공부하면서 바다나 계곡 등에서 마주치는 바위나 나무 등 자연의 현상들을 주목하는 습관이 생겼다.
최초의 공공예술은 무엇일까? 거대하게 솟아오른 조각 작품, 대규모 설치 미술, 혹은 모두가 모여 감상하는 공동체적 퍼포먼스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답은 우리 발아래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았음에도 이미 존재했던, 자연이 빚어낸 조형물. 이는 수천 년 동안 우리의 곁에서 예술로 존재해 왔다. 맨발 걷기를 하던 추암 해변에서 발견한 '강아지 얼굴 바위'는 자연이 스스로 창조한 예술임을 증명한다. 인간의 손길 없이도 존재하는 자연물의 형상은 본능적으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감상의 여운을 남긴다.
추암 해변에 우뚝 서 있는 강아지 얼굴 바위는 풍화된 암석이 아니다. 그것은 파도와 바람, 그리고 시간의 축적이 빚어낸 예술 작품이다. 바위를 바라볼 때 우리는 강아지의 형상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 이는 자연물에 불과하지만, 인간의 눈과 마음에 예술로 자리 잡는다. 이 같은 발견은 예술이 꼭 사람의 창작물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자연은 오래전부터 예술의 창조자였으며, 그 작품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또 다른 사례는 몇 년 전 평창에서 수집된 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범순 작가가 2022년 싱가포르 비엔날레에 전시한 돌이다. 작품의 모습을 더 자세하게 보여주기 위해 돌 표면을 촬영하면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진 속에서 수십 개의 얼굴 문양이 드러났다. 이후 '존재생명서판'이란 책으로 공개되고 화제가 된 사례다. 이것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자연이 가진 조형적 가능성을 인간의 시각으로 발견한 결과다. 자연의 미세한 표면조차 인간에게 상상력과 감상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자연은 예술의 원천이자 주체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양진호 인문학연구소 소장은 2024년 광주비엔날레 방문을 준비하는 대학원생 대상 특강에서 “최고의 미디어, 최고의 디자인, 최초의 예술은 모두 대자연에 있다.”라고 했다. 이 어록은 자연이 가진 창조적 힘을 명료하게 요약한다. 현대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자연이 제공하는 조형적 아름다움과 상징성은 결코 재현할 수 없다. 자연은 스스로 최고의 미디어로서, 다양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해 왔다. 강아지 바위와 평창 돌의 사례는 자연이 인간에게 말을 거는 예술적 매체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자연의 조형적 디자인 또한 완벽에 가까운 균형을 이룬다. 바람과 물의 흐름, 시간이 새긴 선과 형상들은 어떤 인간의 디자인도 흉내 낼 수 없는 완전함을 담고 있다. 자연의 이 모든 요소는 예술과 디자인이 가진 본질적 아름다움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공공예술의 본질과 자연의 메시지
공공예술은 누구나 접근 가능하고, 모두가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예술을 의미한다. 자연은 이런 공공성을 수천 년 전부터 내포하고 있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과 교감하며, 그 안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는다. 추암의 강아지 얼굴 바위는 특별한 입장료나 해설이 필요 없는 공공미술관의 대표작이고, 평창 돌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전시품이다. 자연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나는 여기에 있다. 나를 보고, 느끼고, 해석하라.” 자연의 이러한 본질은 우리가 공공예술을 정의하고 이해하는 방식을 새롭게 변화시킨다. 자연은 이미 존재하는 공공예술이며, 인간은 그 아름다움을 관찰하고 해석하며 새로운 예술적 가치를 발견할 뿐이다.
결국, 자연은 인간의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원천일 뿐 아니라, 스스로 예술이다. 추암 해변의 강아지 얼굴 바위와 평창의 돌은 자연이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예술적 주체로 기능해 왔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자연에서 예술을 발견하며,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보존할 의무를 가진다.
“최초의 공공예술은 자연이다.” 이 진리는 예술의 기원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넘어,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고 느끼며 해석해야 하는지를 일깨운다. 자연은 우리 곁에서 말없이 예술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연과 함께 새로운 공공예술의 지평을 열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