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맨발 걷기
추암의 여명, 시(詩) 같은 아침
동해가 유난히 아름다운 아침, 추암은 동해의 맑고 푸른 바다를 닮고 품은 작은 기적 같은 공간이다. 오늘도 맨발로 그 추암의 여명 길을 걸었다. 맨발 걷기 358일 차, 찬 공기가 볼을 스친다. 새벽 5도의 기온은 온몸을 가만히 감싸며 깨어남을 알렸다. 차디찬 모래를 지나 내 발은 포근하고 따뜻한 온도로 밀려오는 파도에게 문안인사를 올린다. 모래와 파도가 온몸으로 전해오는 감각은 마치 자연과 나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듯한 순간이었다.
여명은 붉은빛이었다. 그저 붉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하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수평선 위로 점점 짙어지는 붉은빛은 그림 같았고, 동시에 이야기 같았다. 하늘의 캔버스에 펼쳐진 붉은 아치가 파도를 타고 바다로 흘러내리는 순간, 나는 그곳이 한 폭의 동화 속 장면임을 깨달았다. 그 빛은 환상적이었다. 말 그대로 현실과 비현실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풍경이었다.
춥다고 생각해서일까? 오늘 함께 걷는 맨발러는 두 분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들의 밝은 웃음은 조용히 바람 속에 흩어졌다. 유난히 고요한 아침이다. 아침의 고요함과 이 환상적인 풍경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던 듯하다. 우리는 무언의 합의를 한 듯, 말없이 한 발 한 발 앞으로 걸었다. 맨발로 느끼는 땅의 차가움과 동시에 묘한 따뜻함이 발끝에서 시작되어 온몸으로 번졌다. 마치 대지가 우리를 품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추암의 촛대바위는 붉은 여명을 그대로 머금고 있었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바람과 파도가 만들어낸 이 자연의 조형물은, 이곳의 시간마저 잠시 멈춘 듯했다. 그곳에 서 있는 순간, 나는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그러나 동시에 얼마나 경이로운 존재인지 새삼 느꼈다. 대지는 우리를 채우고, 우리는 대지를 통해 살아간다. 그 연결의 끈은 맨발을 통해서 더욱 강렬히 다가왔다.
걷는 동안 나의 생각은 묘하게 투명해졌다.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 맨발로 걷는 이유, 그리고 자연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이유가 하나씩 내 안에서 자리 잡았다. 모든 걱정과 잡념은 여명과 함께 녹아내렸다. 차가운 아침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 때마다, 나는 더 맑아지고 더 가벼워졌다.
추암의 여명을 경험하며 느낀 오늘의 아침은, 혼자 보기 아까운 추암 여명은 분명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 풍경을 글로 모두 전달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붉은 하늘, 푸른 바다, 차가운 모래,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맨발의 감각은 단어로 완전히 담아내기에 너무나도 풍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쓰기로 했다. 이 경이로움을 혼자만 간직하기에는 너무 큰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추암의 붉은 여명은 시였다. 읽을 수 없는, 그러나 느낄 수 있는 시. 걷는 모든 순간이 그 시의 한 줄이었고, 발끝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은 그 시의 운율이었다. 나에게 추암의 여명은 삶과 자연, 그리고 나 자신을 잇는 끈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나는 추암에서 대지와 내가 하나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 아침을 함께 걸었던 맨발러들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한 번쯤, 자연 앞에 맨발로 서 보라고. 그 순간, 당신은 당신 자신을 다시 만날 것이다. 그리고 그 만남은 여명처럼 찬란하고 따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