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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Catkr Jul 06. 2015

코닥 필름의 부음에 부쳐

코닥(Kodak)이 죽었다. 좀 심한 말일 수도 있지만, 코닥 필름은 2013년 여름을 기점으로 사라졌다. 2012년  파산 신고를 하고 회생처리를 한다고 할 때 이미 시한부 환자임을 알았지만, 그래도 완전히 사업에서 손을 뗄 거라고는 생각하진 못 했다. 이미 단계적으로 필름군들을 단종해가고 있었음에도 내가 너무 순진하게 생각한 것일까? 그 전에는 코다크롬이 먼저 사라졌고, 바로 전엔 코닥 슬라이드를 단종시켰다. 그리고 나선 코닥의 사진과 관련된 모든 사업군이 종말을 맞았다. 코닥은 앞으로 사진 관련 사업은 손 끊고 인쇄업 쪽으로만 손을 댄다고 한다. 


코닥 필름을 놓아보내기엔 코닥만이 보여줄 수 있는게 너무 많았다


처음에는 농담 삼아 “코닥이 죽었슴다” 같은 말로 글을 쓰려고 했다. 이미 수많은 경영 사례집에서 이카루스 패러독스로 알려져버린 코닥의 케이스를  읽어보면 코닥이 비웃음을 당할 만도 하다. 디지털 카메라를 제일 처음 개발해놓고는 무시하다가 디지털 카메라 대중화 앞에서 고작 10년을 버틴 셈이다.


코닥 슬라이드만이 가진 색 재현 방식이 있는데, 그게 참 미묘한 거라서 말하기가 어렵다

코닥의 퇴장은 청천벽력 같은 뉴스였지만, 우리는 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이제 솔직히 필름을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중고 카메라 시장에서 이미 그런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동호회에 올라오는 매물도 확 줄었고, 과거 중고시장에서 날라다니던 카메라들의 가격도 눈에 띄게 하락했다. 로모는 스마트폰과 필름사진 형태로 바꿔주는 어플들의 조합으로 대체됐다. 사람들은 꼭 필름 수동카메라를 써야지 사진을 제대로 배울 수 있다는 게 아니라는 사실 역시 깨달았고, 필름값은 적은 수요 때문인지 오지게 올랐었다. 코닥 슬라이드의 단종 전에는 한 롤에 만원에 가까운 코닥 35mm 필름들도 꽤 많았다. 현상까지 하면 거의 교통비를 포함해 한롤 현상에 15,000원은 깨지는 셈이었다.  

코닥 슬라이드 중에 몇몇 종은 색온도에 고풍스럽게 반응했고, 만족스러운 장면을 자주 뿜어주었다

모든 정황이 코닥의 죽음을 예언하고 있었음에도 그걸 곧이 받아들이지 못 했던 건, 그래도 “코닥”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하는 철없는 마음 때문이었다. 폴라로이드가 쓰러지고, 아그파가 넘어가고, 코니카가 흡수 당할 때 그래도 코닥은 1등 기업이니까 좀 버티다 쓰러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코닥은 겨우 10년을 버틸 수 있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데, 코닥의 한 세대는 3년인가?


나이가 들며 조금 경제력이 생겨서 그런지 난 코닥 필름을 마구 사줄 의향이 있었다. 한 롤의 필름을 사고 그 필름을 다 쓴 후 현상하는 데까지 15,000원이 들지만 나 혼자 카메라로 “나만의 영화”를 본다고 간주하면 그다지 아까운 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15,000원이 조금 비싸기에 억지 같은 주장이긴 하지만, 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아이맥스 영화라고 쳐주자! 아니면 혼자 영화를 보고 밥을 먹었다거나, 애인의 영화 비용까지 내줬다고 해줘도 좋다.


코닥과 노을은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궁합이었다.

그런 억지 같은 생각으로 나 스스로를 설득했던 배경엔 코닥 필름이 완벽히 대체될 수 없다는 사실이 다른 어떠한 이유들보다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누구는 후지 필름을 쓰면 된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코닥 슬라이드의 그 따뜻하면서도 차분한 발색을 후지 필름이 대체 해줄 수 없다고 믿어왔다. 그건 개인취향에 따른 것이겠지만, 뭔가 일본의 가극을 보는 듯한 후지 필름의 발색은 내 취향이 분명 아니었다. 나는 코닥의 따스함이 좋았고, 그 따스함은 아그파의 붉음과 후지의 초록이 분명 대체해 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유통기한 문제로 살짝 맛이간 코닥 슬라이드였는데, 여전히 그 따뜻한 풍이 남아있었다

무엇보다 아쉬운 건 코닥 슬라이드의 그 놀라운 색조를 디지털 카메라가 재현하지 못 한다는 점이었다. 오래 지켜 본 결과, 디지털이 네가티브 필름은 많이 따라할 수 있어도 슬라이드의 미묘한 색온도 변화 감지와 그에 상응하는 오묘한 빛깔내기는 여전히 따라하지 못 했다. 코닥 슬라이드의 힘은 이른바 “마법의 시간” (해지기 1시간 전부터 1시간 후)에서 대체 불가능함을 내신 입증해댔다. 


그래서 잔뜩 코닥 필름을 사버렸다. 그리고 인터넷을 뒤져 보관법을 알아보니 냉동고에 넣으면 그나마 좀 오래 버틴다고들 했다. 엄마는 왜 이렇게 필름을 많이 사서 냉동실을 가득 채우냐고 묻긴 하지만, 특별한 말이 없었어도 습기가 안 들어가게 꽉 포장해서 냉동실에 넣어 주신 걸 보면, 내 목소리에 코닥 필름이 정말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녹아 들어가 있었나 보다. 

2012년 중반 충무로에선 이미 코닥 슬라이드가 거의 동이났다

언제까지 나를 포함한 필름쟁이들이 남은 코닥 필름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당장 현상 약품이 계속 나올지도 걱정이다. 후지 필름의 현상 프로세스와 호환이 되긴 하지만 후지도 계속 필름을 단종시켜가고 있어서 안심할 수가 없다. 누군가는 10년 전에 냉동시킨 필름을 꺼내서 잘 썼다고 하는데, 정말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 땐 사람들이 코닥 필름을 쓰는 날 어떻게 바라볼까?


사진 찍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선 카메라가 뭡니까 하고 물어보는 사람들 중에 많은 이들은 내 손안에 잡힌 필름 카메라를 신기하게 여긴다.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내가 코닥 필름이 카메라 안에 들어있다고 말하면, 그 말을 듣고 놀랄 사람이 있을까? 아마 우리 세대와 이전 세대라면 코닥 쓰는가보다 하겠지만, 우리 다음의 세대는 코닥이 뭐냐고 물을 것이다. 코닥필름은 사라지기엔 너무 유명했고, 다음 세대가 알기 전에 너무 빨리 사라진 브랜드가 되었다.

그냥 “코닥 필름은 좋은 필름이었습니다” 라고 말하기엔 코닥은 너무 대단했다. 


그게 너무 아쉬운거다. 



PS: 모든 사진은 코닥 E100VS 로 촬영되었습니다.

미래의 세대들은 코닥이란 단어를 언제 또 쓸까? 코닥 필름의 황혼은 생각보다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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