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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Catkr Jul 03. 2015

필름 쓰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

조용한 바의 조명이 필름에서 은은히 처리되었다

"그거 필름이야?"


친구 사진을 한 장 찍어줬더니, 친구가 LCD를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내 카메라엔 LCD가 없었다. 필름 카메라였기 때문이었다. LCD를 보지 못한 그는 좀 불안해했다. 사진을 나중에 준다고 말해줘도 얼굴의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LCD는 LCD만의 특유한 색감으로 날 종종 속이기도 하지만, 사진이 원하는 대로 잘 나왔는지 점검하기에 너무나도 유용하다. 사진을 빨리 확인하지 못 해 불안한 건 왜 일까? 디지털 카메라 때문에 생긴 조급증일까? 친구의 불안한 마음은 그럼 어떻게 달래 줘야 할까? 왜 그런 불편함 속에서도 누구는 필름을 쓸까?



핸드폰 카메라가 대세가 되면서 디지털 카메라 폭풍도 이제 한풀 지났다. 그 폭풍의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이 깨닫게 된 게 하나 있긴 하다. 중요한 건 사진을 찍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담아 낼 것인지 답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비록 그런 깨달음 아래 먹는 사진이 대세로 등극했지만, 그런 자각 하나 만큼은 참 바람직한 일이라고 본다. 적어도 이젠 사람들이 사진  기술뿐만 아니라 내용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증거이니 말이다. 

종이에 사진이 바로 뜨는 폴라로이드야 말로 가장 아날로그적 매력을 풍기는 매체이다. 그런 매력에 쉽게 행복해지기도 한다.

핸드폰 카메라의 수준이 어느 정도 올라왔을 무렵, 한 번은 김중만 사진작가가 핸드폰 카메라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었다. 촬영 대상이 이효리씨라 적어도 모델 때문에 사진이 볼만했던 것이 사실이었지만 분명 도구는 정말 도구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떠오르게 했다.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고 나서는 핸드폰 사진의 질이 더욱 좋아졌고, 휴대성 때문에 이제는 웬만한 카메라보다 낫다는 말도 듣는 핸드폰까지 있다. 


하지만 여전히 카메라를 선택하는 일은 유의미하다. 도구는 여전히 영향을 미친다. 많은 이들은 카메라 혹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매개체가 가진 독특한 감성에 아직 영향을 받는다. 필름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왠지 모르게 필름으로 찍어야 할 것 같은 것들이 있다.


흑백필름으로 바와 친구의 분위기를 담을 수 있었다. 흑백의 부드러움은 역시 다르다.

필름은 우리가 보는 현실을 기억 속으로 밀어 넣어버리는 일에 적격인 매체다. 실제의 색과 선예도는 고급형 디지털 카메라가 더 잘 표현한다고 해도 거짓말이 아닌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필름이 주는 부드러운 계조와 색이 표현하는 공간감과 입체감은 여전히 디지털 카메라와 포토샵으로 따라하기 쉽지 않다. 디지털 사진은 현실을 닮지만 필름 사진은 기억을 닮는다. 


필름이 예전과 다르게 꽤 비싼 건 단점이기도 하지만 사실 어떤 면에선 장점이기도 하다. 마치 오래전 영화와 사진이 등장할 때 이전 시대의 회화가 유일성의 아우라를 갖고 있었던 것처럼, 지금의 디지털 시대에는 필름은 모종의 유일성을 갖고 있다. 현상 및 인화 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대개 필름 사진은 몇 장 안 찍는 경향이 있지만, 그런 이유로 사진 촬영 시에 더 신중히 생각하게 된다. 촬영 매수도 적고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찍었기에 촬영된 대부분의 사진을  기억할 수 있다. 그런 희소성은 필름이 가진 우수한 기억의 표현성과 맞물리면서 시너지를 일으킨다. 기록의 양이 중요한 사람들에겐 다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필름은 아마추어 사진 촬영의 목적 중 하나인 개인적 기록을 만족시키기에 디지털보다는 더 나쁜 매체가 아니다. 

홍제에서 찍었던 사진. 적절히 과장되는 이 계조가 여전히 내가 필름을 쓰는 이유다.

또 다른 이유 중에 하나는 필름으로 사진 스타일을 바꾸기 매우 쉽다는 점이다. 사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디지털 사진에서는 포토샵을 어떤 방식으로 하든 개인의 취향 때문에 결국 비슷한 톤으로 사진이 마무리되는 일이 많지만, 필름의 경우 아무리 아마추어라도 다른 필름을 쓰는 일만으로도 사진의 느낌이 크게 달라진다. CCD를 통째로 바꾸는 일은 매우 어렵지만, 만원 정도 되는 가격에 CCD를 골라 쓸 수 있다면 어떨까? 그런 것이 필름이다.


어떤 사람들은 유지비가 비싸다는 걸 필름의 단점으로 지적하지만 디지털 카메라의 감가 상각도 꽤 무시 못할 비용이다. 전문적으로 사진을 할 것이 아니라면 풀 CCD 크기의 디지털 카메라를 사서 1년 동안 손해 보는 감가상각의 비용은 그 기간에 필름으로 찍는 (물론 같은 매수가 아니더라도) 비용에 비해 크게 낮은 것이 아니다. 1년에 30 롤  정도 찍으면 필름에 따라 현상과 스캔에 약 30만원에서 60만원 정도 비용이 드는데, 이 이상 찍는 게 은근 어려운 일이다.

후지 필름의 벨비아는 진한 발색이 특징이다. 이 필름을 사면 간단하게 청초한 분위기를 낼 수 있다.

분명 필름은 비싸고 사용하기 귀찮다. 그래서 필름을 쓰라고 하는 말이 아마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내 말이 궤변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취미 생활로 사진을 오래 하고 싶다면, 개인적 기억을 기록하는 사진에 집중하고 싶다면 난 정말 필름을 추천한다. 궤변을 하더라도 행복한 궤변주의자가 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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