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사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들
올해로 사진이 내 취미가 된지 14년째다. 사람을 14년 정도 사귀었으면 결혼을 해도 모자람이 없을만한 시간이다. 휴대폰으로도 사진이 펑펑 나오는 시대라 취미 사진이라는 게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일 때도 있지만, 취미 사진인의 심사는 가끔 꼬여보일 때가 있다. 예술과 식상한 사진의 사이인 그 애매모호한 본인의 영역에서 진지한 취미사진가들은 때때로 외부의 반응에 예민하다. 사진인이 아닌 사람이 보기엔 굉장히 사소하지만, 진지한 취미사진인은 티를 내지 않지만 속 좁은 마음에 가슴 한 켠이 시릴 때가 있다. 14년 정도 꾸준히 사진 취미를 가져보니 내가 주위에서 봐온 진지한 취미사진가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들을 이렇게 용기 내어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사진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이런 말들을 조금 조심해보자.
사진인들은 겸손과 자만의 여부를 떠나 일반적으로 자기 사진을 굉장히 사랑한다. 그중 진지한 몇몇은 자기 사진의 세계가 나름 있다고 믿으며, 자신만의 노하우나 방법이 독창적이라고 믿는다. 그런 생각이 아주 틀린 것도 아주 맞는 것도 아니지만 이들에게 사진의 코멘트로 이런 말을 다루면 사진사들은 조금 소심해지곤 한다.
"사진이 멋있어요. 무슨 카메라를 쓰세요?"
의도는 단순할 수 있다. 지시적인 의미는 정말 단순하다. '카메라가 궁금하다' 그 이 상의 큰 의미는 없는 질문이다. 하지만 사진사는 이렇게 생각해버린다.
" 카메라가 좋아서 사진이 멋있네요. 무슨 카메라를 쓰세요?"
의외로 사진사는 이런 면에 소심하다. 카메라가 미치는 영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좋은 사진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정말 다양하다. 그간 계속 고민해본 내 소견은 이렇다.
- 여러 사람이 같은 카메라를 갖고 있어도 사진이 굉장히 많이 다를 수 있다. 다만 비슷한 실력의 아마추어 사진인은 비슷한 사진 취향을 가진 사람끼리 뭉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대부분 그들이 찍는 사진이 대동소이하다.
- 카메라를 보유하고 있는 기간이나 구력에 따라서도 달라지긴 한다.
- 신기하게도 미술을 전공하는 친구들이 사진의 기초가 없어도 다들 곧잘 인상적인 사진을 만들어 낸다.
사진사들은 촬영 장소를 곧잘 숨기곤 한다. 왜 숨길까? 공유하면 나쁜가? 공유한다고 장소가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이런 현상을 잘 설명하는 좋은 예가 하나 있다. 어린 시절 공부 잘 하는 친구들이 가끔 공부 비결을 안 가르쳐주는데,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간의 경험과 추측으로 아래와 같은 동기들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 장소를 가르쳐주지 않는 것은 신비주의 전략이다. 장소를 가르쳐주면 마치 드라마 속 드라마 세트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처럼 사진의 환상적인 느낌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 장소를 가르쳐주면 남들도 가서 촬영이 가능하고, 이 과정에서 자신이 보여준 광경이 굉장히 과장되었고 별 것 아닐 수 있음이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진 기술로 장소를 미화해도 본인이 과소평가되는 신기한 현상이다)
- 본인의 사진이 소재주의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재 자체가 사진의 거의 전부다.
- 본인이 열심히 검색해서 알아낸 장소를 그냥 주워먹는 게 아니꼬와서(?)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고 질문한 사람 면전에서 '나 몰라요' 라던지, '알아서 찾아보세요'라고 말할 수도 없는 법이다. 보통 사진인들이 순순히 답을 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자.
2번과 관련 있는 말이다. 실제로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그 장소를 멋있게 찍었다면 많은 경우 그 장소가 실제로 어느 수준에 이를 만큼 멋있기 때문이다. 인사동에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인사동이 아니었다면 인사동스러운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까? 재밌게도 그런 말을 들을 때 갑작스럽게 사진사의 마음은 좁아진다. 그 배경엔 이런 이유들이 있다.
- 마치 자신은 그저 셔터 누르는 손가락으로 취급받는 것이 불편했다.
- 나만의 것이라고 생각한 아우라가 단지 장소가 결정해준 요인이라고 생각하는 게 불편했다.
웹의 아마추어들이 주로 들락거리는 갤러리엔 추천 제도가 항상 있기 마련인데, 대개 그런 서비스의 첫 번째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은 선정의 기준은 사이트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회원들의 추천을 받아서 선정된 그날의 사진 같은 것들이다. 재밌는 건 때때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첫 페이지의 사진이 별로인데도 뽑힌 건 사실 추천을 해주는 친구가 많아서다."
자기의 사진이 일면에 오르지 않는다고 불평은 하지 않지만 이런 태연한 사람들도 가끔은 '왜 나는 추천수가 적어'하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곤 한다. 실제로 인터넷 갤러리를 돌아다녀보면 마치 봇처럼 남의 사진에 영혼 없는 코멘트를 하고 다니며 간접적으로 자신의 사진을 추천해달라는 사람들을 보곤 한다. 그래서 사실 어느 정도는 친구(?)가 많은 사람이 일면에 가는 확률이 높은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사실 정말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누가 일면에 가느냐가 아니다. 그것에 왜 부러워해야 하느냐 한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어느 권위 있는 매체에 선정된 사진이라도 정말 '최고'라는 평가를 받기에 부족한 것이 많다. 당장 공모전 수상 사진만 봐도 클리셰 덩어리가 가득하다. 근본적으로 예술에 '최고'라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상대적 우열에 대한 논의는 더더욱 복잡해진다. 사진은 기본적으로 남과 비교하기 위해서 찍는 게 아니다. 혹시 상업 사진을 한다면 '얼마나 많은 소비자가 관심 있게 사진을 보고, 사진이 어느 정도의 소비를 유발시키는가' 같은 궁극의 목적이 있겠지만, 그런 상황을 가지지 않은 99%의 아마추어에게 그런 경쟁은 큰 의미가 없다. '얼마나 많은 방문자/추천을 유발시키는가'가 중요한가? 우리는 바이럴 마케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 남는 사진을 찍어야 한다.
사진사가 소심해질 수 있는 몇 가지 경우들을 간단히 살펴봤다. 보통은 외부로부터의 자극이 자신의 고유 영역을 터치한다는 생각 때문에 일어나는 소심해지는 경우들이다. 조금 과장하여 묘사하긴 했지만, 실은 누구나 조금씩은 다 가져봤을 만한 소심함이다. 나도 위의 사례들처럼 소심해질 때가 없지 않다. 비비안 마이어 같은 은둔의 사진가가 아닌 이상, 아무리 사진이 개인적인 취미임에도 자연스레 누군가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나름의 만족을 얻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사진은 어느 정도는 사회적 취미이다.
타인의 말에 때로 상처받는 우리의 일상 모습처럼, 취미로서의 사진을 논하는 과정 속에 사진사는 상처를 받기도 한다. 실은 사진사가 소심해서 그럴 수도, 정말로 화자가 좋지 않은 의도로 말해서 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 명쾌한 답이나 행동강령(?)을 정하는 일은 더 이상한 일일 듯 싶다. 큰 논란을 일으킬만한 심각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 딱 명심해야 한다면, 때때로 진지한 취미사진가들이 민감하고 소심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다시 돌아가 생각해보자. 왜 사진을 찍고 있는지, 나는 왜 사진을 좋아하고 있는지 돌이켜보자.
인정받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LCD와 필름에 떠오르는 사진이 좋아서 였을까? 카메라를 살 때의 그 기분을 다시 생각해보자. 그 때 본인이 정말 좋아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모든 사진은 코닥 E100VS, TX-1으로 촬영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