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하기 전 준비해야할 것들
사진을 오래 하면 몇 가지 안목이 생긴다. 그중 재미있는 게 있다면 사진 속의 장면이 자연광의 주도로 빛이 나고 있는지 포토샵으로 끌어올린 허상인지 알아보는 능력이다. 포토샵이 악이고 무보정이 선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부드러운 계조를 우선으로 하는 사진을 하고 싶다면, 적어도 자연적인 색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싶다면, 포토샵의 힘을 빌리기 보단 가급적 좋은 자연광을 찾아내는 것이 우선이다.
포토샵을 아무리 잘 하더라도 포토샵 작업물은 특유의 탁한 느낌을 남긴다. 레이어 오버레이를 하든 HDR을 쓰든지 모든 포토샵 테크닉 결과물은 자연적인 상태로부터 멀어진 형태로 남는다. 아예 완전히 아방가르드한 느낌을 뽑아내는 팝아트 결과물을 보여주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다만, 대부분의 아마추어는 그런 현대적 사조보다는 근대사진 양식을 좋아하기에 이런 자연광의 질은 정말 중요하다.
(참고로 현대사진이 좋다면 빨리 커밍아웃하세요. 축하드립니다. 정말 소수만이 현대 사진에 재능을 보입니다!)
다시 논점으로 돌아와서 좋은 빛이 있는 사진이 무엇일지 생각해보자. 얼핏 설핏 기억나는 남들의 해외 여행 사진을 참고해보자. 왜 그렇게 하늘은 투명하고, 구름은 뭉실하며, 사진은 왜 화보 같은 걸까? 실제로 날씨에 따라서 사진의 빛은 아주 다르다. 아쉽게도 한국의, 특히 서울의 날씨는 그다지 좋지 않다. 특히 봄 동안에 안 좋은 편이다. 점점 심해지는 황사까지 하늘에 거친 양념을 치니 영 기분 낼만한 날이 없다.
쨍한 사진을 원한다면 좋은 날씨는 필수적이다. 문제는 언제 그런 날이 찾아올지 예상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점이다. 예보만 봐서는 '정말' 맑은 날인지 '대충' 맑은 날인지를 알 수가 없다. 대충 맑을 날의 해질녂을 보면 하늘을 캘리브레이션 해주고 싶을 정도다. 한편 '정말' 맑은 날에 사진을 찍으면 디지털 카메라가 오랜만에 제작사 제공 샘플 사진급 사진을 찍어준다.
그럼 어떻게 날씨를 확인해야 할까? 쉬운 이야기부터 해보자. 날씨가 어느 정도 좋은지를 판별하는 일은 너무나 손쉽다. 그저 하늘을 보면 되는 일이다. 보통은 자신의 머리 위 구름 상태를 보고 현재의 날씨를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사진에 나오는 하늘은 많은 경우 수평선 쪽의 영역이 포함된다. 아쉽게도 수평선 쪽의 하늘까지 깨끗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수평선에 이를 수록 오염물질이 쌓여서 하늘이 더 탁해 보인다. 날씨가 좋다고 사진을 급하게 찍으러 나가고 싶은 충동이 든다면 이 수평선 근처의 하늘을 꼭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도시에 살다 보니 건물에 하늘이 가려져 그런 지평선 근처를 보기가 쉽지 않다. 가급적 높은 건물이 있다면 그 곳에 올라 어느 방향이라도 좋으니 지평선 끝을 확인해보자.
비가 오는 것을 노리고 있다면 또 이야기는 달라진다. 몇 시간 뒤에 그 장소에 비가 오는지 예측하는 능력은 과거엔 과거엔 X-men급 초능력에 가까운 일이었으나, 요새는 기상청의 실시간 레이더만 봐도 비가 얼마나 또 어느 지역에 오는 지는 단기적으로 예상할 수 있다. 사실 지역별 예고를 이미 하고 있기 때문에 촬영 지역의 주소를 입력하면 상세한 일기 예보가 가능하지만, 그래도 못 미더울 사람들은 본인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는 것도 답이다. 핸드폰 앱이나 웹으로 기상청에 접속하면 레이더 영상을 살펴볼 수 있는데 시간대에 따른 구름의 궤적을 살펴보면 대개 서쪽에서 동쪽으로 구름이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레이더 영상에는 강수량도 표시되기 때문에 강수량 역시 예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인천에 비가 오고 서울에 비가 오고 있지 않다면, 구름의 속도 감안해서 언제부터 서울 지역에 비가 올지 예상할 수 있다.
날씨가 정해졌다면 장소를 정하자. 장소 선정은 여행 중에 특히 중요하다. 촬영지에 대한 개인의 선호를 떠나 촬영지 계획을 할 때 꼭 고려해야 할 사항은 몇 번을 언급해도 중요한 '빛'이다. 만일 해지는 한강을 보고 싶다면 다면 여의도는 좋은 선택이 아니다. 왜냐하면 한강의 흐름상 해가 지는 편이 여의도 안쪽이기 때문에 여의도에서는 강물 위의 일몰을 보기 어렵다. 같은 이유로 상암지구나 뚝섬지구에서 강 너머로 지는 일몰을 보기 좋다. 일반적인 촬영에서도 마찬가지다. 해가 지는 방향의 내리막은 그 빛이 골고루 내리막에 퍼져서 상당히 고풍스럽게 보인다. 반대로 해가 지는 방향의 오르막은 해가 오르막에 가려서 금방 지며, 그로 인해 하늘은 밝지만 땅은 매우 어둡고 그늘의 색온도 때문에 땅에 파란 빛이 도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동선 계획을 할 때 해질녁의 골든아워를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해보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
촬영 시간과 장소가 결정됐으면 준비물을 정해보자. 보통은 카메라용 가방에 카메라와 렌즈, 필름 혹은 메모리를 준비한다. 다들 알다시피 여유가 된다면 여분의 배터리를 준비하는 것도 좋다. 의외로 카메라가 버튼이 눌린 채로 노출계가 지속적으로 작동이 되어서 배터리가 다 나가는 경우가 꽤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삼각대를 꼭 준비하기도 하는데, 프로 사진가나 삼각대를 자랑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면 나중에는 보통 잘 들고 다니지 않는다. 카메라 구입 초기엔 삼각대가 마치 필수 아이템인 것 마냥 광고가 보이지만, 훗날에는 삼각대를 산 돈이 아깝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아직도 와 닿지 않는 삼각대 구매 예정에겐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어느 상황에서도 사진을 찍으려고 삼각대를 사는가, 아니면 어느 상황에서도 힘이 들려고 삼각대를 사는가?'
여기까지는 그래도 기본에 가깝다. 몇 가지 더 준비할 것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로, 먹을 것을 준비해보자. 등산도 아닌데 왜 먹을 것이 필요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중간중간 동물을 만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연히 만난 길거리 동물의 시선을 끄는데 먹을 것 만한 것이 없다. 대개 그들은 굶어있기 때문에 먹을 것을 들고 있는 우리에게 큰 관심을 보이고 좋은 사진기회를 만들어준다. 둘째로, 가능하다면 내가 피사체에게 기여할 수 있는 무언가를 준비해보자. 폴라로이드가 될 수도 있고, 간단한 그림이라도 좋다. 해외 여행일 경우 작은 악기도 좋은 선택이다. 초등학교 때 배우는 단소도 잘만 불면 해외여행쯤에서는 슈퍼스타의 아이템이다. 그마저도 안 되면 사진을 보내주자. 사진을 바로 핸드폰에 연결해서 보낼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많은 피촬영자는 자신이 찍힌 사진이 자신과는 무관하게 인터넷에 퍼진다는 사실을 불쾌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촬영자는 모종의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피사체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 작은 이익에 피사체의 위치나 자세 변경을 제안할 수도 있다. 대개 본인이 느끼는 최고의 사진적 순간은 이미 '지나친 순간'이 많기 때문에 막연히 그런 순간이 다시 오길 기다리기 보다는 피사체와 협의해 그러한 순간을 재연해보는 게 훨씬 본인에게도 좋은 방법이다. 다만 똑같이 재연하는 게 은근 어렵다.
이 외에도 사실 좋은 사진을 찍는 방법에 대해 전설처럼 내려오는 조언들이 상당히 많다. 이 글뿐만 아니라 수많은 전설 속 사진사들도 많은 지침을 남겼다. 인터넷에 많이 돌고 있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사들의 말부터 동호인들의 자잘한 코멘트까지 참고할만한 의견은 정말 많다. 왜 그들은 그런 의견을 남겨왔을까? 작은 준비의 차이가 좋은 사진을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뜻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