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적 조미료가 바꾸는 아마추어 사진계
폴라로이드 필름이 단종될 때만 해도 나는 폴라로이드급의 놀라운 아날로그 색조가 내 생애에 다른 방법으로 재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폴라로이드가 그리워 폴라로이드 필름을 다른 방식으로 제작한 “임파서블 프로젝트”가 시작될 정도였으니, 폴라로이드 단종의 충격은 나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엄청났던 것이다. 분명 포토샵에서 하나하나 폴라로이드 풍으로 사진의 색조를 바꾸는 것은 기술적으로 너무 복잡했고 (주: 적어도 초보자에게는 그렇다), 사진 동호인에게도 굉장히 귀찮은 일이었다. 게다가 기민한 시각적 감각과 집중력이 없다면 포토샵으로 폴라로이드 스타일의 색변조를 사진마다 가하고 동일한 톤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폴라로이드 단종 몇 년 후 폴라로이드 같은 정방형에 놀라운 아날로그풍 사진들이 인터넷에 봇물을 치기 시작했다. 사진을 오래한 사람이라면 좋지 않은 선예도와 인위적으로 들어간 것이 확실해 보이는 틸팅 효과 때문에 직감적으로 그 아날로그 모방형 사진들이 스마트폰의 어떤 앱을 거쳐 나온 것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 법했다. 하지만 확실히 “인스타그램”을 위시로 새로운 차원의 “뽀샵” 시대를 열고 있는 다양한 앱은 건조하고 추레해 보이는 핸드폰 카메라 사진에 마치 영혼을 부여한 것 같았다. 설령 그 영혼이 약간 저렴해 보이고 클리셰 덩어리라고 해도 말이다.
분명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의 결과물을 좋아하고 있고, 페이스북이 제시한 인스타그램 인수금액은 부정할 수 없는 그 근거였다. 틸팅 기능과 터널링 효과는 그렇다 치더라도, 색을 바꿔주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용자들은 자신의 사진을 “그럴싸한 느낌”을 가진 것처럼 확연히 바꿀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 적응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인스타그램을 쓰지 않은 사진이 낯설 정도로 인스타그램의 중독성은 꽤나 강하다. 그리곤 마치 짙은 화장을 매일 하는 사람이 본 얼굴을 보여주기 꺼려하는 것처럼, 아무 덧댐이 없는 사진을 보여주는 일이 조금씩 드물어졌다.
신기한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다. 과도한 포토샵은 인정할 수 없다는 사진적 교조주의자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던 10년 전만 해도 웹에서는 “포토샵 떡칠”에 대한 토론이 종종 열리곤 했다. 사실 필름 사진 역시 완벽한 원본이라는 것이 없고, 심지어 우리 안구 안의 시신경도 있는 그대로 빛을 전달해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순수한 색이라는 것은 없다. 그러한 사실과는 별개로, 원판이 진리라는 알 수 없는 믿음을 가진 자들에 의해 취미사진계는 때때로 작지만 의미 없는 홍역을 겪은 게 그리 멀지 않은 과거다. 하지만 요즘 인스타그램 사진쯤은 우리의 인식 속에서 그리 눈에 거슬리는 사진이 아니다.
물론 주류 취미사진인들의 사진 세계는 조금 다를 수도 있다. 한국에서 단일 갤러리로는 이용자가 아마 제일 많을 것 같은 네이버 갤러리라든지, 외국의 Flickr, Photo.net 만 봐도 인스타그램형 사진보다는 절도가 있는 고전적 사진들이 강세이긴 하다. Tumblr 나 Deviantart 라면 조금 더 빈티지한 느낌을 살리고 있긴 하지만, 알 수 없는 마이너한 뭔가의 종합판이란 느낌이 강하게 나며, 동호인들의 선봉장에 서있는 갤러리들도 아니다. (주: 차라리 인스타그램의 Explore 메뉴를 써서 새 사진을 보는 게 나으면 낫지 모자라지는 않다.)
한때 컬트한 맛을 뽐내던 로모와 홀가 사용자들은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사용자들의 아저씨 사진계로의 유쾌한 반란을 기대했지만 요즘은 그 이용자들을 찾아보는 게 예전만큼 쉽지가 않다. 사실 로모나 홀가나 기대한 것만큼 사진을 잘 뽑아주진 못 했고, 가끔 터져주는 이 카메라들의 잠재력에 의존하기란 너무나 불확실함으로 가득한 모험이었다. 또 사용하는 필름이 이 카메라 결과물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대단히 특이한 결과물이 나오는 일은 꽤 드물었다. 그 때도 토이카메라 돌풍이 그저 한번 지나갈 유행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막상 그 이용자들이 사라지니 아쉽긴 하다.
분명 아저씨들이 점령한 사진의 “중간대륙”, 주류 취미사진인들의 사진풍은 아직 굳건하긴 하지만, 변화는 일어났고 더 확대되고 있다. 페이스북에 인스타그램 사진들이 모습을 비추는 일이 흔해졌고, 일반인에겐 오히려 정형적인 주류 취미사진인들의 사진보다 인스타그램의 결과물이 더 친숙하다. 일반 카메라에 비해 부족했던 스마트폰 카메라의 사진 품질에 대한 불만이 이런 사진앱 붐을 일으켰는 지도 모르겠지만, 아날로그보다 더 아날로그한 인스타그램의 등장과 그 사진 품질은 나에게도 충격이었다. (주: 물론 인스타그램의 결과물은 실제 필름 촬영물과는 좀 다르다)
그렇다고 인스타그램이 최고의 멋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엄밀하게는 인스타그램의 사진들도 레트로한 느낌에 의존한 채 클리셰로 가득 찬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하지만 별 것 아닌 상황을 특별한 무엇인가로 보이도록 하는 인스타그램의 힘 때문인지, 인스타그램을 이용한 사람들의 사진은 새로 나온 TV모델 속 샘플이미지 같은 강렬한 사진을 추종하기 보다는 오브젝트의 모양과 느낌에 더 충실했다. 무엇보다 디지털 사진의 부상 이후 이만한 집단 레트로 추종자 세력을 이전에 본 적이 없다. 사실 아주 오래전엔 사진 자체가 그냥 인스타그램 사진스러웠기 때문에 이런 집단이 있을 리 만무하긴 하다.
그래서 나는 인스타그램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안티포토샵 교조주의자들이 사라진 이때, 도구에 제약받지 않고, 드라마틱한 상황의 달력사진보다 조금 어눌하더라도 다채로움이 묻어나는 사진으로 대중들을 유도한다면 그만큼 혁신적인 사진적 혁명이 어디 있을까? 주어진 빛이 완벽하지 않고 선예도가 떨어지더라도, 아마추어들이 대담하게 오브젝트에 집중하게 도와주는 것이 있다면 그만큼 놀라운 도구가 어디 있을까?
물론 아저씨들의 취미사진계 지배는 계속될 것이다. 돈에는 장사가 없고, 좋은 장비로 찍은 사진 자랑은 서기 30세기 쯤에도 만고로부터 이어져온 전통 쯤으로 여겨질 것이다.
난 다만 인스타그램이 조금이라도 방향을 틀어줘서 그 아저씨들이 조금만 더 내가 원하는 쪽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싶다.
하긴 그 뿐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큰 일이긴 하다.
PS) 모든 사진은 iphone4s로 촬영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