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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Catkr Aug 04. 2015

사진과 슬럼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다른 사람들도 다 겪는다는 슬럼프를 겪었다. 아니 사실 겪고 있다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하다. 내가 숱하게 비판해왔던 장롱카메라 소유자, 주말사진가, 이발소사진가에 나도 한층 가까워져 가는 걸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찍는 사진마다 족족 만족스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찍고 싶은 마음마저 사그라져 갔다. 나중에는 이 현상을 슬럼프라고 불러야 하는지 그냥 사진에 관심이 없는 상태라고 불러야 하는 지 헛갈릴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사진을 꾸준히 하는 데에는 의외로 장난기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Feb. 2009, T700, Oslo

잘 찍힐 때는 셔터만 눌러도 한 장 한 장 기억에 남을 만한 사진들로 변모하곤 했다. 한 롤의 필름을 쓰면 36장 중에서 적어도 20장은 100점 만점에 70점은 넘었다고 생각했었다. 슬럼프인 지금에 생각해보면 무슨 낙이 있다고 그렇게 밖을 쏘다녔을까 싶을 정도로 알아서 그리고 부지런하게 움직여댔다. 커뮤니티 활동도 열심히 했는데, 글은 쓰지 않더라도 항상 부단히 타인의 사진들을 지켜보고 그 사진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날씨에 까탈스러워지는 것도 슬럼프를 부른다. 이상적인 날씨는 일년 중 수일에 불과하다. Sep. 2005, E100VS, Seoul

지금은 어떤가. 나는 이제 그냥 보통 사람인가 보다. 가끔 나가는 나들이에 한 장 찍으면 호사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 밖을 나서는 일은 거의 없고, 남의 사진을 보면서 왈가왈부하는 수준도 되지 못 한다.  하나둘씩 기억나는 사진가들의 이름은 뇌리에서 지워져 가고, 주위에서도 눈치를 챘는지 더 이상 카메라 살 때 뭐 사야 하냐고 물어보지도 않는다. 그저 일기용 사진 수요로 몇 장씩 남겨두는 게 위안이다. 


촬영에 적합한 최적한 빛을 하루 중 몇 시간동안 밖에 볼 수 없다는 사실은 해가 될 수도 있다. '아마 늦을꺼야' 하는 생각 속에 결국 집에 박히곤 한다.

총체적으로 문제가 있다. 공부를 잘 못 할뿐더러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과외학생을 만난 기분이다. 어디서부터 나 스스로에게 설명해줘야 할까.  조금만 더 숨겨진 심리를 캐보자. 사진을 잘 하고 싶은 마음은 확실한가? 정말 그렇게 잘하고 싶은가? 얼마나 잘하고 싶은가? 재볼 수는 없지만 스스로의 만족이라는 것은 어느 수준에 있는가? 혹시 그냥 손쉽게 좋은 사진을 얻으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인간관계가 좋으면 사진이 쉽지 않을까 가끔 망상에 빠지곤 한다. 빈곤한 사진 소재 속에서 인간이 우주라고 하는 이유를 가끔 깨닫곤 한다. May 2005, E100VS, Busan

답을 다 하기 전에 핑계부터 떠오른다. 바쁜 학교 생활, 치열한 취업 과정, 언제나 우선순위인 사회 생활 같은 핑계들은 너무나도 100점 만점의 모범 핑계 답안이다. 아마 애인과 우선순위 문제로 다투듯 일이 중요한지 사진이 중요한지 장난스레 따져보면 분명 사진이 최우선은 아니었을 테다. 그 언제 사진 찍기 위해 여유로웠는가?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사진에 대한 사랑이 식었다고 인정해야만 한다. 슬럼프로 부르지 말고.

사진 창작의 의욕이 없을 땐 여행이 가장 좋은 해답 중 하나다. 돈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만나지만. Mar. 2007, E100VS, Jeju

가장 위험한 것은 아마도 방법의 문제가 아닌 목적의 문제다. 고만고만한 자기고백적 사진에 근본적인 목적이 뭐냐고 질문하기 시작하면 할 말이 점점 준다. 그게 뭐 대단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간 얼핏설핏 있었던 모종의 자신감이 증발하고, 그나마 있었던 목적 의식 마저 흐린다. ‘그래 그냥 난 사진 기술을 배우고 싶어’라고 쉽게 뻔뻔해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라이팅을 쓰면서 상업사진을 하는 것도 아니라서 그마저도 좋은 답이 되지 않았을 테다. 


그래서 사진으로 뭘 보여주고 싶은건지 고민한다. 예뻐서 찍는 것이라고 상투적으로 대답하기엔 문제는 생각 이상으로 복잡하다. May 2005, E100VS, Seoul

돌이켜 보면 이전에도 활발히 사진을 찍던 시기가 있었고 애정이 식든 슬럼프든 어떻게 부르던 간에 사진이 잘 안 찍히던 시기가 있었다. 항상 불타오르는 정열의 사진가가 되기엔 그 불굴의 이념도  없을뿐더러 현실적이지도 않다. 그렇게 침체됐을 때마다 나는 새로운 카메라를 사곤 했다. 아예 대전환을 한다고 포맷을 바꾸거나 필름으로 전향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불어넣어진 새로운 활력을 연료로 몇 개월 혹은 몇 년간 열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파노라마 카메라와 필름은 내 사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매 장면이 마치 영화를 찍는 착각을 불어 일으켰다. Nov. 2005, E100VS, Sindoori

공부에도 환경이 중요하듯, 주위 환경도 중요하다. 디자이너들이 애플을 선호하는 이유는 단지 맥이 빨라서만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보자. 무턱대고 어린아이처럼 홍대의 뒷골목을 전전해보면서 허세인지 새로운 감인지 알 수 없더라도 그 알싸한 기분에 감싸여 보는 것도 좋다. 사진은 취미이다 보니 많은 부분은 기분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도 카페 사진 찍으면서 커피 마시고 허세 부릴 줄 안다만. Mar. 2007, E100VS, Seoul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 전시회에 가거나 사진집을 보는 것도 괜찮지만, 매일 할 수 있는 목적이 확실한 눈요기 활동이 사실 더 좋을 수도 있다.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무뎌진 감각과 열정을 끌어올리는 데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요즘은 tumblr.com 라던지 ffffound.com처럼 해외 전문 사진/그래픽 수집 사이트도 발달되어 있어서 잘 정제된 양질의 사진을 보는 일도 쉬워졌다. 상업용 사진이 아닌 한 그것을 그냥 모방해봐도 좋다. 어차피 모방한다고 똑같이 되지도 않는다. 게다가 알 수 없는 싸구려 풍의 아우라가 섞이더라도 노력을 넣었다는 나름의 핑계에 스스로 독창적이고 진취적이라고 심취하기도 한다(?). 그런 자신감이 필요하다. 그 조금은 올라온 자신감에 해보고 싶은 일도 생기고 머리 속에 몇 가닥 아이디어가 샘솟기도 한다. 


찍고 싶은 것의 간단한 스케치를 해보는 것도 좋다. 주도적이고 창의적인 활동이 기분을 전환시키는 열쇠다

아마추어로서 슬럼프란 말도 우습다만, 나 역시 이 슬럼프를 극복해가면서 새로운 도약을 고민해보고 있다. 예전에도 그랬듯 슬럼프 이후에는 또 다른 황금기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언제든지 찾아올 슬럼프,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황금기도 언젠가 돌아온다고 믿어보는 건 어떨까. 물론 아무런 계기 없이 황금기가 돌아오진 않을 것이다. 


여러분의 황금기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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