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카메라의 기능 중엔 꼭 흑백 사진 모드가 포함되어있다. 사실 그냥 컬러 사진을 흑백으로 바꿔주는 것에 불과하다. 왜 실제에 가까운 컬러사진을 버려두고 흑백 사진이라는 기능이 필요할까? 그리고 왜 작가들은 흑백 사진을 찍어왔던 것일까? 그리고 사진 좀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흑백 사진을 꼭 하라고 추천하는 것일까?
내가 처음 사진을 시작했을 때에도 ‘흑백 사진’하면 그냥 바로 ‘간지’의 대명사였다. 별로 잘 찍지 못 한 사진을 일단 흑백으로 변환한 후 포토샵에서 만지다 보면 원본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고, 이전엔 없었던 '느낌적 느낌'이 생기는 듯 싶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진짜 흑백 필름으로 찍은 사진이 갖는 그 아우라가 없었다. 아무리 원본보다 낫더라도 흑백 변환 사진은 졸작에서 대작으로 변모하진 않았고, 단지 흑백이 사진의 추레함만을 감췄을 뿐이었다.
그런 허울뿐인 내 흑백 사진을 보며 난 당시에 이런 의문들을 갖고 있었다.
1. 왜 흑백사진을 하는 걸까?
2. 흑백사진은 귀찮고 돈이 많이 들지 않을까?
3. 흑백사진은 어떻게 하면 잘 찍을 수 있을까?
사진이라는 것이 처음 발명될 때만 해도 흑백사진 밖에 없었기 때문에 100년 전 사람들이 왜 흑백사진을 했는지 궁금하진 않지만, 컬러필름이 나오고도 왜 흑백 사진을 하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갈만하다. 뭐랄까 TV에 엑소가 나오는 시대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클래식 악기를 연주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클래식 음악이 뒤쳐진 음악이 아니고 단지 다른 음악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만큼 근대 이전 시대의 음악이 대중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 일도 없다. 흑백 사진이 그런 것 아닐까 싶다. 이미 기능적인 면만 봐서는 분명 특수한 분야에서만 쓰였어야 할 미디어다.
세상이 많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는 사진의 핵심은 바로 빛이다. 흑백은 색을 제거하고 순수하게 빛만을 보여준다. 빛에는 밝고 어두운 정도로 표현되지만 사진 상에서는 그 패턴이 만드는 톤이 드러난다. 윤이 나게 빛날 수도 있고 혹은 텁텁하게 보일 수도 있다. 밝고 어두운 정도의 차이가 크면 강한 대비를 낼 수 있다. 여기에 색이 개입하기 시작하면 복잡해진다. 색간의 조화와 채도 등 따져야 할 차원의 몇 개나 더 늘어난다. 컬러 사진에 비하면 분명 흑백사진은 촬영자가 제어해야 할 빛의 요소가 훨씬 적다. 그래서 능력만 된다면 사진가는 순수한 빛의 성질이 잘 나타나는 사진을 의도할 수 있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개념을 꺼내지 않아도 일반인이 흑백사진을 떠올릴 때 연상되는 개념은 아무래도 빛보단 '과거의 기록'이라는 흑백사진의 이미지이다. 그런 원리로 흑백으로 이뤄진 영화나 드라마 속 장면은 보통 과거의 장면을 기억하는 데 쓰이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흑백 필름을 과거에 많이 썼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탈색되고 변조되는 이미지는 현실감을 관찰자로부터 분리하는 가장 손쉬운 길이기도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진을 갓 시작한 사람들은 흑백 사진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쏟는 경우가 많다. 뭔가 다른 나만의 생각과 이미지를 투영하는데 흑백사진은 꽤 좋은 도구이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언어를 할 줄 안다고 모든 의견에 공감이 가는 것은 아닌 것처럼, 흑백이라는 좋은 표현 방법을 쓴다고 해서 항상 그것이 멋진 사진이 되는 건 아니다. 나에겐 흑백사진이 컬러사진보다 어려웠는데, 그래서 그런지 흑백사진을 위한 별도의 재능이라는 게 있다고 믿는다. 흑백으로 감동이 오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면 본인의 흑백 사진이 그저 어쭙잖게 좀 그럴 싸한 느낌만을 흉내 낸다는 게 너무나 자명해 보일 수 있다. 옷이 심플하면 몸매가 더 드러나듯 사진의 진짜 매력이 더 드러나기 때문이랄까?
이 시대에서의 흑백사진 표현의 문제는 좀 더 색다르다. 인화물로서의 흑백 필름 사진과 디지털 카메라에서 필터링된 흑백 사진간의 질적 차이가 컬러사진의 대비보다 훨씬 심하다는 점이다. 인화물로서의 흑백사진은 아날로그의 완전체이다. 게다가 스캔본도 아닌 실제의 프린트는 아날로그적인 향수가 풀풀 풍긴다. 반면에 디지털에서의 흑백사진은 아무리 좋은 앱이 많이 나왔더라도 아날로그판에 비하면 여전히 실망스럽다. 포토샵에서 이것저것 손을 더 대서 보정을 하면 뭔가 프린트판과 좀 비슷해지긴 하지만 여전히 아날로그 흑백 사진과 거리가 있다.
정말 흑백 사진을 위해서라면 그냥 흑백 필름을 쓰면 되지 않나? 하지만 사람들은 흑백 필름을 사용하고 인화를 하는 것이 최선일 수는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전통적인 흑백 작업을 여전히 두려워한다. 흑백 작업에 대한 편견 중 하나는 흑백 작업이 상당히 전문가만의 일이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야만 일정 수준에 이를 수 있게 한다는 생각이다. 필름 가격이 오르긴 했지만 흑백 필름은 현상을 포함해도 여전히 만원 이하이긴 하지만 현상과 인화 작업이 고되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본인의 화장실을 개조할 수 있더라도 인화에는 분명 암실이 필요하며, 한 롤(36장)의 프린트를 다 한다면 하루를 다 보내야 한다.
그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미뤄두고 다시 우리가 가장 궁금해하는 핵심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어떻게 하면 그런 ‘간지’가 잘 나게 흑백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색을 배제하기 때문에 촬영 때부터 흑백이 될 이미지에 대해 상상을 미리 해봐야 한다. 단순히 ‘나중에 안 되면 흑백으로 바꿔야지’라는 생각으로 흑백을 시도하면 그 ‘어쭙잖은 간지 흑백 사진’의 경계를 뛰어 넘을 수 없다. 모든 색이 사라짐으로써 사진 속의 세계는 더 단순해지고 간단해지므로 빛의 조절과 패턴 그리고 톤에 집중하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두 번째로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모두 간단한 작업으로 좋은 흑백 톤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포토샵의 ColorMix와 Curve, Level 더 나아가서는 Lab color 및 부분 Tone 조정에 대한 많은 이해와 연습이 필요하다. 같은 방식으로 사진을 수정하더라도 사진톤이 달라지기 때문에 예민한 감각 역시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좋은 흑백 사진을 위해 반드시 이해해야 할 점은 그 고유의 ‘흑백다운 정서’다. 촬영하는 순간, 색이 사라지고 시간의 죽음에서 탄생하는 흑백의 정갈함과 차분함을 담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백 년이 넘는 사진의 역사에서 많은 거장들이 계속 고민하며 싸워왔던 질문였으며, 우리가 흔히 하는 흑백 변환 사진이 그럴싸하지 않은 가장 중요한 이유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