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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Catkr Mar 06. 2016

사진적 매너리즘

왜 사진을 찍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

시간이 많이 흘렀다. DSLR 의 판매 실적은 카메라의 크기와 무게 때문인지 미러리스 카메라에 밀리기 시작했고, 아닌 밤에 홍두깨라고 필름의 최강자 코닥이 파산했다. 그 와중에 싸이월드는 서서히 몰락했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그 빈자리를 꿰차갔다. 세상이 이렇게 변해가지만 의외로 변하지 않는 것들도 많다. DSLR을 사던 미러리스를 사던 얼마 안가 대다수의 카메라들은 장롱으로 들어간다. 코닥은 파산했지만 미국 법인만 파산했기에 생산에 차질이 가지 않아, 여전히 우리는 코닥 필름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에서도 싸이월드에서 사람들이 그랬듯이 사진을 통한 자랑질은 여전하다. 

<사진 : 코닥이 정말 완전히 망하면 당분간은 이런 놀라운 발색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

삶을 조금 더 오래 살아보며 이런 변화와 불변의 현상들을 지켜보면 오히려 난리통인 세상에 대해서 차분하게 접근하거나 아예 그 난리들을 심리적으로 차단할만한 기제 같은 것이 생긴다. 밖의 동향이 무엇이 되든 남은 것은 기억이었고, 기억이라는 것은 굉장히 주관적이며, 기억에 대한 선호 역시 주관적이라서 결국 남는 것은 자신이 만들고 자신이 포함된 기억임을 자각하곤 한다. 아무리 사진을 못 찍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찍어둔 사진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진 : 하루 종일 비맞으며 사진 찍는다고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남는 건 사진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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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으로는 해마다 생기는 기억의 양이 줄어든다는 걸 깨닫곤 한다. 그게 1년 단위로 보면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최소한 고교 졸업 이후, 인상 깊을만한 경험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덜 발생한다. 많은 이유 중에 하나는 분명 그만큼 세상에 익숙해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20살 때는 명동과 대학로, 강남 같은 곳들이 생경했고, 그땐 지금보다 더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골목 구석구석이 눈에 들어왔었다. 비단 꼭 그런 도심지뿐만 아니라 유명한 여행지들도 마찬가지였다. 취미 사진가들에게 유명했던 이화동 같은 오래된 동네나 선유도 같은 강변과, 하늘공원과 같은 공원은 너무 많이 봐서 이제 그 곳의 사진만 봐도 정확히 어디일지 예상이 된다. 


<사진 : 한강에 가서 보이는 풍경은 왠만해서는 새롭지가 않다. 요즘은 오히려 한강이 없는 한강 사진을 찍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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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매너리즘은 아무래도 사진이 장소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장소가 특별하고 영감을 줄 수 있어야지 셔터 버튼을 누르는 아마추어 사진가라면 그럴 수밖에 없다. 굳이 밖이 아니라 실내가 되어도 마찬가지다. 카페들을 전전하며 커피와 친구 사진만을 남기는 것이 과연 당신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바였을까. 


<사진 : 그 나마 사람들은 카페에서 얼굴을 보여주는 데 인색하지 않다.>


*

가끔은 그런 쳇바퀴를 빠져나가기 위해 일탈과 같은 여행을 꿈꾼다. 예전처럼 구미를 당겨줄 새로운 장소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에 열심히 조사를 해서 여행지를 선정하곤 한다. 세월이 좋아져서 장소 이름으로 검색하면 여행기와 사진이 수두룩하게 쏟아지는 시대라 여행지가 볼만한지 판단하기는 쉽지만, 거꾸로 그런 깐깐함 때문에 여행에서 완전히 만족하는 것도 어렵다. 해외여행도 마찬가지다. 현장에서의 감동은 잠시고 어느 새 엽서 사진으로 가득 차 버린 사진첩을 보니 만족스럽지가 않긴 매한가지다.


<사진 : 도쿄에 갔을 때 일본사람과 대화가 안 되자 결국 풍경사진만이 남게 되었다>


*

만족할만한 기억과 사진을 만드는 게 그리 어려운가. 기계적으로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분명 좋은 사진을 얻는 일은 확률적인 과정이다. 어느 정도 비율로 자신이 만족할만한 사진이 나오기에 분명 노력을 하면(즉, 시행 횟수를 늘리면) 절대적인 좋은 사진과 기억거리 수는 늘어나기 마련이다. 물론 그런 가정은 굉장히 이상적이다. 현실에서는 귀찮음과 시간의 제약, 사진 생활을 같이할 파트너 찾기란 난제가 기다린다. 


<사진 : 스냅만으로 만족스런 사진 생활을 하는게 참 어렵다. 우리의 욕심이 과한 건가?>


*

너무 불평을 늘어놨는지도 모르겠다. 귀차니즘만큼이나 무서운 게 매너리즘인가 보다. 지나고 보면 다 좋게 기억되기 때문에 혹시 내가 과거를 너무 미화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대개 나쁜 기억의 사진은 없기 때문에 (주: 때론 예전 애인의 사진마저 나쁜 기억으로 남지 않는다.) 옛 사진을 보면 오늘날에 대한 불평이 더 심할지도 모른다. 


<사진 : 드라마틱한 빛, 드라마틱한 상황, 그 모든 것을 만들어주는 드라마틱한 삶을 원한다면>


*

이 매너리즘을 타개하는 궁극적인 변화는 장소에 의존하지 않은 사진의 창출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피사체의 특성을 벗어나 능동적인 사진 촬영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종종한다. 분명 이 점이 진지한 아마추어의 가장 곤란한 특성이다. 저널리즘 사진가의 방법론을 완전히 따르기엔 그리 자신의 작업이 대단한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사진을 찍는 것도 이상하다. 물론 장소 의존적인 촬영이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좋은 장소에 의존하기보다는 만족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태도와 생각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감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진 : 어느 시점 이후론 막연히 보이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을 찍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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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런 접근은 처음엔 굉장히 어색한 결과를 낳는다. 대개의 '기획'사진들은 어색하기 마련이다. 거꾸로 기획이 과도하면 꾸며낸 사진이라는 모종의 이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결과론적으로 의미가 잘 전달되면 괜찮겠지만, 역시 대다수는 실패한다. 


기술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매너리즘에 대한 도전이 굉장히 힘든 건 사실이다. 나 역시 이 흐름에서 빠져나왔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그나마 개인적이지만 기억의 기록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뿌듯하다. 아직, 최소한 나를 위한, 정답이 있는지도 모르겠으나, 하나 확실한 건 가만히 있어서 되는 건 없는 듯 싶다. 

그저 욕심이 많았던 진지한 취미 사진가가 되지 않는 길이란.


이 문제로 여전히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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