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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Catkr Dec 01. 2015

그리고 인류는 야간 사진을 정복했다

오래전에 사진을 시작할 때의 이야기다. 꼬맹이였던 나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필름 카메라를 아버지한테 선물 받고 어떻게 그 카메라를 쓸 수 있는 지  교육받았다.  그때 아버지가 하나 강조한 게 있었는데 밤에는 사진을 찍지 말라는 것이었다. 필름 시대에는 야간 사진 촬영에 큰 제약이 많았다. 일반적으로 슈퍼마켓에서 구하던 필름은 기껏 ISO  100이나 ISO 200의 저가 필름 위주였는데 낮에는 괜찮던 이 필름들이 밤만 되면 거친 노이즈를 뱉어댔다. 게다가 설령 플래시가 있더라도 초점 같은 건 잘 안 맞기 일  수였고, 조잡한 플래시는 말 그대로 조잡한 사진을 만들어냈다. 게다가 일반인에겐 컬러 필터까지 쓰며 색온도를  조절할만한 깜냥 따윈 없었다. 사진술이 말 그대로 기술로서 입지를 갖고 있던 시절이었다.


<사진 : 야간의 빛은 다채롭다. 하지만 감도가 높은 필름은 채도가 떨어지는 특징이 있어서 딜레마에 빠진다>

인류는 진화했다.  디지털카메라를 만들었다. 초창기  디지털카메라의 장점은 분명 현상이 필요 없고 결과물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었겠지만, 의외로 감도가 자유롭게 조절된다는 건 큰 메리트였다. 그러나 2000년대 초기  디지털카메라의 야간 사진은 여전히 심한 노이즈를 갖고 있었고, 저감도로 사진을 찍자니 손떨림 때문에 제약이 많았다. 물론 더 좋은 카메라, 더 비싼 카메라들은 노이즈가 만족할 수준으로 적었지만 일반인이 노릴만한 가격대에 있진 않았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장롱은 고맙게도 그 문제의 가장 정석적인 해결책인 삼각대를 언제나 환영하고 잘 보관해줬다.


<사진 : 삼각대가 없다면 반드시 낮은 조리개 값만이 답이 된다. 과감한 전방 아웃포커스도 시도해볼만하다>


그리고 인류는 야간 사진을 정복했다. CCD와 이미지 프로세서가 좋아져서 노이즈 따위는 우걱우걱 갈아버렸고, 캐논 IS 렌즈에나 들어있던 손떨림 방지 기능은 일반 휴대용 디카까지 보급됐다. 플래시 없이도 눈으로 볼 수 있을만한 빛들은 명료하게 카메라에 잡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낮은 신호까지 잡아내는 슈퍼 CCD의 소식이 종종 신문을 통해 들려온다. 파리의 밤을 고요히 찍어대던 사진가 브라사이가 오늘날 같은 세상에 태어났다면 과연 어땠을까.


<사진 : 브라사이(Brasai)의 사진, 그의 파리 야경 사진은 특히 더 유명하다>


물론 아직 남은 과제가 있긴 하다. 가장 불편한 사실은 대다수 야간에 만나는 빛들이 텅스텐등이 방출하는 오렌지색 빛이라는 점이다. 화이트 밸런스를 맞추더라도 어딘가 이상하게 보이는 색상들이 사진을 어색하게 만들고, 그대로 태양광에 기준하여 찍으면 어느새 우리의 친구들은 365일 태양빛만 쐬었을 미국 원주민처럼 변해있다. 또 여전히 빛이 부족한 환경은 존재한다. 고전적인 해결방법은 물론 삼각대인데, 혹시 주변에 거추장스러운 삼각대를 자주 들고 다닐 만큼 체력이 좋고 인내심이 좋은 사람이 있다면 인격, 신체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므로 친해지자. 삼각대가 없을 땐 자세와 호흡이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는데, 속설에 존재하는 담배와 수전증 간의 상관관계는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그 속설이 의학적으로 입증된 것처럼 퍼져있지만, 담배를 피우면서도 흔들리지 않게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을 많이 본 지라 경험적으로 극복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들기도 한다. 


<사진 : 어두운 곳의 촬영 원칙은 때때로 실내에서도 적용된다. 실내에서는 근거리가 많아 빠른 대응이 가장 큰 난점이다>


호흡은 참 신기하게도 군대에서 말하는 사격법과 거의 유사하다. 요점은 ‘숨을 내쉰 상태에서 마치 누르지 않은 것처럼 셔터 버튼을  누르는 것인데 문제는 그런 생각을 인지하고 긴장하면서 사진을 찍으면 더 흔들린다는 점이다. 오히려 정말 중요한 점은 마음을 편히 놓는 것이다. 


<사진 : 많은 야간 사진은 결국 실루엣 처리밖에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답이 그리 나쁘지만도 않다>*


인류는 왜 그렇게도 야간 사진을 정복했어야 했을까? 개인적으로 나는 여전히 필름을 고집하고 있어서 이전 세대들이 겪고 있는 야간 사진의 어려움을 그대로 겪고 있다. 말이 야간 사진이지 색상이 좋은 ISO 100 필름을 쓰면 일몰 후 30분부터 촬영이 어렵다. 긍정적으로 보면 이러한 어려움은 야간 사진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게 하는 한 동기로서 작용하기도 한다. 찍고 싶은 장면이 있어도 못 찍기에 그 절절함이 마음에 와 닿기 때문이다.


<사진 : 골든아워라고 알려진 일몰 후의 시간엔 옅은 하늘의 빛을 볼 수 있다.>


취향에 따라 갈릴 수 있는 문제기도 하지만 야간의 빛은 굉장히 드라마틱하다. 당신이 잔뜩 어시스턴트를 데리고 다니며 자연광을 조절하는 능력과 재력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야간의 인공조명처럼 다양한 환경을 주는 상황도 드물다.  디지털카메라 사용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결과물이 색 대비, 명도 대비가 만족스럽지 않아 밍밍해 보이는 데, 야간 사진이야 말로 극한의 대비를 보여주는 굉장히 좋은 사례다.

<사진 : 디지털과 달리 필름 야간 사진은 오히려 대비가 너무 심한게 문제다>


직접적인 사유가 되지 않지만 실은 야간 사진의 주요 촬영 시간이 정말 ‘야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도 크게 야간 사진 수요 증대에 기여했다. 몇몇 특수한 시간들을 제외하면 사람들은 실내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에, 잠재되어있던 실내사진의 촬영 수요는 크게 들었다. 게다가 SNS와 카페 문화의 확장으로 실내에서 허세를 부릴만한 대상이 늘어난 것도 큰 이유이다. 솔직히 말해보자. 당신이 가진 사진 중에 카페에서 사진 찍은 사진이 최소 10% 는 되지 않는가? 

<사진 : 카페사진이 늘어는 건 나쁜 현상은 아니다만, 왠지 모르게 게을러졌다는 자책감도 든다.>


도시에 관심이 많다면 한국만큼 야간 사진을 찍지 좋은 나라도 없다고 난 믿는다. 첫째로 우리만큼 늦게까지 안 자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없으며, 우리만큼  밤늦게 돌아다녀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나라 역시 드물다. 한편으로는 한국만큼 야간 사진의 분위기가 떨어지는 곳도 드문데, 너무 난잡한 간판과 여기저기 주차되어있는 차들이 분명 프레이밍을 하는 데 큰 방해요소임일 부정할 수가 없다.


<사진 : 한국의 밤은 분명 아릅답다. 사람이 있어서 더욱 아름답다>


배경이 어떠하든 현대의 인류는 기술적으로 야간 사진을 일단 정복하긴 했다. 이제 당신에게 카메라는 주어져있고, 나가서 사진을 찍기만 하면 된다. 어려울 것 같다고? 셔터를 누르는 건 60년 전 흑백 필름만 있을 때도 어려웠으며 디카가 없던 90년대에도 어려웠고 앞으로도 어렵겠지만 그 어떤 세대도 지금처럼 야간 사진을 찍기 좋은 환경을 맞이하지 못 했다. 기쁨에 겨워 뛰어나가지 못 할 망정 게으름을 피우는 당신, 그 고마움을 알고 카메라에게 황송하게 말해보라. 그 옛날 누구처럼 “아 아름다운  밤이에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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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진은 코닥 E100VS 필름으로 촬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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