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느끼는 영어

by TCatkr
download.jpg Aug. 2006, E100VS, Praha

"그림 있다!"

유럽여행 중 어떤 하루였다. 일행 중 한 명이 메뉴판에 그림이 있다고 환호를 질렀다. 그때까진 잘 알지 못 했는데 그 환호를 들은 이후론 음식 사진이 있는 메뉴판이 제일 좋다는 걸 여실히 깨닫게 됐다. 많은 메뉴판은 필기체로 적혀있었고, 알파벳을 닮은 유럽의 글자들이지만 생각보다 필기체를 읽는 게 참 어려웠다.


한국에 막 돌아와 인천 공항에서 집으로 오는 리무진 버스를 타다 깜빡 잠이 들었다. 한 시간쯤 자고 일어나서 부시시하게 눈을 떴는데, 창 밖을 보니 복잡한 간판이 어지럽게 널려있던 한 지하철 역 근처였다. 순간 참 놀랍게도 그 눈앞 270도로 펼쳐지는 수많은 간판의 글자가 단 1-2초에 다 읽혔다. 하나씩 순차적으로 읽히던 외국어 간판과는 달리 마치 도장을 눈에 찍듯 한꺼번에 들어왔다. 이것이 모국어구나 싶었다.


data_v5_daytrip_eu093.jpg Aug. 2006, E100VS, Genova

"스위스의 북부, 독일어를 쓰는 지역에서 왔지요"

이탈리아의 한 부두에서 만난 노부부는 나에게 친절하게 본인들이 어디서 왔는지 설명해주셨다. 그런데 그 와중에 영어를 너무 잘 하신다는 걸 느꼈다. 너무 정확한 발음과 억양에 난 흠칫 놀랐다. 만약에 우리네 할머니들이 일어나 중국어를 유창하게 한다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기묘한가? 어쩌면 그것이 우리의 미래일지도 모르겠다.


download (1).jpg Aug. 2006, E100VS, Praha

나는 유럽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즐겨했다. 서로 실력만 된다면 유럽인이나 나나 서로 틀린 영어를 할 수 있다고 이미 묵시적으로 전제하고 대화를 해서 그런지 그 어느 대륙 사람들보다 더 깊은 대화가 가능했다. 반면 영국인이나 미국인과 대화를 할 때는 오히려 뭔가 틀리지 않아야 한다는 불안감이 들어서 그런지 대화 도중 긴장하는 때가 많고, 유럽인과 대화할 때의 그 편안함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가장 이상한 건 한국인과 영어 대화를 하는 것이다. 그것만큼 불안한 마음이 드는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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