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밤에 내가 머물던 Budapest의 Agi네 집에 Agi의 한 친구가 놀러왔다. 그를 접대하기 위해서 Agi가 이상한 고기를 냉장고에서 꺼냈는데, Agi의 친구가 알기로는 잡으면 안 되는 동물의 고기라고 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밀매되는 천연기념물의 고기인 셈이었다. 출출했던 우리 셋은 조리는 이미 되어있었지만 냉동된 고기를 해동도 하지 않은 채 손으로 조금씩 뜯어먹었다.
무슨 동물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양처럼 생긴 동물의 고기라는 말만 듣고 일단 시식을 하던 난 고기가 꽤나 느끼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곤 매운 것이 먹고 싶다고 Agi에게 토로했다. 사실 한국인치곤 매운 것 잘 못 먹는 나지만, Agi가 한국에 지낼 때 닭갈비를 먹고 눈에서 불을 뿜는 걸 본 나로선 헝가리 사람들은 매운 것을 잘 못 먹고, 헝가리의 매운 음식이라면 내가 쉽게 감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음식을 먹어보지 못 한 Agi의 친구는 한국의 매운 음식이 어떻게 맵냐고 물었고, 난 극악하게 매웠던 인도 카레와 비교하며 한국의 매운맛은 '예의 바르게 맵다'고 말해줬다. 하지만 그 친구는 헝가리에도 매운 음식이 많다고 했다. 그런 대화를 하던 도중 Agi가 어디선가 헝가리산 고추를 가져왔고, 한국인이라는 자부심 때문이었는지 난 그 고추를 한 움큼 깨물었다. 그도 헝가리인이라는 자부심에 경쟁적으로 그 고추를 깨물었다.
사실 그 고추는 굉장히 매웠다. 우유로 혀라도 헹구고 싶었다. 파프리카 계열의 야채는 많이 먹어봤지만 이 정도의 매운 종류는 처음이었다. Agi의 친구도 처음에는 괜찮다 하더니 표정이 확 바뀌었고, 이내 곧 연신 맵다고 투덜댔다. 하지만 난 동양인의 장기인 무뚝뚝한 표정관리로 끝까지 매운 척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난 조용히 Agi에게 한 가지를 청했다.
"Agi, 혹시 아까 그 고기 남았어?"
Sep. 2007, T700, Budap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