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 쓰시네요."
"네. 어떻게 아셨나요?"
"카메라 보니 딱 알겠더라고요. 필름도 쓰세요?"
"네."
"렌즈도 좋아 보여요, 몇 백만 원은 나가지요?"
"네, 조금 비싸긴 해요."
나는 삿포로에서 가장 싼 것 같은 한 유스호스텔에서 묵고 있었다. 유스호스텔의 직원은 나를 복도 가장 끝의 어두컴컴한 방에 배정했고, 구멍가게보다 작은 그 방엔 8명이 몰아넣어져 있었다. 그중 누군가 한국어를 말하며 내 장비를 알아봤고 이내 곧 그 방에 몰아진 사람들이 거의 한국인이라는 걸 깨달았다.
사진을 찍고 싶다고 홋카이도에 다시 여행을 왔다. 게을러져 버린 셔터에 질리고 질린 난, 뭐라도 크게 벌이지 않으면 이 겨울 동안 기억에 남을만한 사진적 장면 따위는 없을 거라는 불안감에 휘둘렸다. 모든 건 사진에 초점을 맞췄다. 600만 원이 넘는 카메라들을 들고 57만 원짜리 비행기를 탄 다음, 24만 원짜리 기차표를 끊고, 하루 3만 원짜리 침대에서 편의점에서 산 3000원짜리 도시락을 먹으며, 2500원짜리 흑백 필름으로 사진을 찍는 나는 분명 어딘가 이상한 사람이다. 그렇게 난 도망치듯 북해도로 떠났다.
삿포로의 길을 걷다가 우연히 빛이 화려한 곳에 다다르니 1년 전에도 와본 오도리 공원이었다. 1년 전엔 그저 택시를 타다 확 지나간 곳이었다. 이 공원에 다다르자 화려한 장식 때문에 그 여행 중 처음으로 내가 연말에 여행 왔다는 사실을 느꼈다. 도망치듯 삿포로로 떠난 건 아니지만, 삿포로에서 돌아오니 그 전보다 마음이 훨씬 여율워졌다.
그냥 이래서 사람들이 도망치듯 여행을 가는 게 아닌가 싶었기도 했다.
엔화를 뽑는다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편의점과 은행을 한 15 군데 넘게 들렀다. 난 미국의 경험을 토대로 나는 당연히 일본에서도 국제 현금 카드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너무 많이 '안 된다는' 메시지를 ATM마다 계속 봐서 처음 본 일어 단어였지만 그 글자를 보기만 해도 뭔가 잘 안되고 있다는 걸 금세 인지 했다. 새벽 비행기로 온 아오모리였는데, ATM만 돌아다니다가 해가 다 졌다. 내 높지 않은 일어 수준은 문제 해결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 했다. 심지어는 길가의 영어학원에 한 흑인이 앉아 있는 걸 보고, 바로 그 학원에 뛰어 들어가 그 흑인한테 왜 내 카드가 안 되냐고 물을 정도였다. 그 흑인분이 고맙게도 한 ATM을 알려줬지만, 그 ATM마저 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계속 묻고 묻다 보니 영어를 할 줄 아는 이 우체국 직원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제야 우체국 ATM만이 국제 현금 카드를 지원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둘이 없었다면, 난 어떻게 됐을까? 아오모리 역에서 한국에 돌아가기 위한 하코다테행 길거리 구걸을 하고 있었지 않을까. 아니면 편의점 앞에서 1000원짜리 김밥을 일주일 간 먹고 있지 않았을까. 이 둘을 만나서 나는 간신히 아오모리인지 아오지인지 계속 이름이 헷갈렸던 아오모리를 탈출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