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에서의 히치하이킹

멈춰선 차 주인의 비밀

by TCatkr
data_v5_daytrip_japan094_s.jpg Dec. 2007, E100VS, Furano

Furano에서 홋카이도 사진으로 유명한 고(故) 마에다 신조의 갤러리를 들른 다음 마에다 신조가 찍은 홋카이도의 풍경사진을 따라 찍는다고 눈으로 뒤덮인 Furano의 패치워크로드를 하루 종일 걸었다. 그러다 시간 계산을 해보니 2시간을 걸어야 비바우시 역에 돌아갈 수 있었다. 점심도 제대로 못 먹고 걷기만 한 일정이었고 곧 해가 질 시간이었기에 2시간 동안 홋카이도의 추위와 싸우다 지칠까 봐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리곤 오래전에 제주도에서 히치하이킹에 성공했던 기억 때문에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거의 차가 안 오는 곳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지나가는 차들은 모두 택시였다. 물론 내 일행은 일본 택시비를 감당할 처지도 아니어서 택시는 잡지 않기로 했다. 심지어 지나가는 관광버스를 히치하이킹하려 했지만 버스 기사 아저씨가 거부하기도 했었다. 아예 길바닥에 누워있자는 생각까지 해봤었다.



data_v5_daytrip_japan089.jpg Dec. 2007, E100VS, Furano


차도 드물게 오기 때문에 일단 다음 차가 올 때까지 걷기 시작했다. 그러던 우리를 보고 멈춰 선 차는 한 중형차였다. 멀리서 봤을 땐 전혀 멈추지 않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우리 앞에 바로 멈춰서는 거였다. 차 안을 다가가서 살펴보니 한 할아버지가 타고 계셨다. 일본 여행 1주일 동안 조금씩 살아 올라온 10년 전에 배운 일어의 감각 덕분에 어떻게든 우리가 처한 상황과 목적지를 설명했다. 다행스럽게도 그 할아버지가 허락해주셔서 차를 얻어 타고 비에이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차 안에서 조용히 있자니 무안했다. 모두가 우리는 남자인데다가 이방인이기도 했고, 차를 얻어 탄 주제이니 분위기를 띄울 수 있게 뭐라도 말을 해야 했다.


그 순간이 내가 지금까지 내 일생에서 일어를 제일 잘 한 순간이었다. 놀랍게도 난 할아버지가 하는 말을 모두 알아듣고 일어를 술술 말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봐도 10년 동안 다 잊어버린 일어를 어떻게 그렇게 잘 했을까 싶었다. 차를 같이 탄 내 일원도 내 일어에 놀라워했다. 사람은 역시 궁지에 몰리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듯 싶다.


data_v5_daytrip_japan090.jpg Dec. 2007, E100VS, Furano


할아버지는 비에이 역에 도착하고 나서 차 문을 열고 나오셨다. 난 처음엔 인사를 한다고 나오시는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는 트렁크를 여셨고, 트렁크엔 내가 오전에 갤러리에서 봤던 몇 만원 짜리 마에다 신조의 달력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그리곤 새해 인사를 하며 우리에게 달력을 하나씩 주셨다. 놀랍게도 할아버지는 그 갤러리의 주인장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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