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의 끝자락, 하코다테의 새벽

하코다테에서 보는 새해의 모습이란

by TCatkr
data_v5_daytrip_japan093.jpg Dec. 2007, TMY, Hakodate

서울과 다르게 삿포로의 연말 길거리는 정말 조용했다. 비에이에서 삿포로로 돌아온 일행은 일본의 연말 분위기에 실망한 채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고, 창 밖으로는 눈이 잔뜩 왔다. 노곤한 우리는 곧 눈이 만든 고요 속에서 잠이 들었다. 한참이 지나 여전히 밖이 깜깜했던 어느 순간, 난 눈을 떴고 정신을 차려보니 막 새해가 시작됐었다. 그렇게 차창에 비친 내 기념사진을 하나 찍었다.


data_v5_daytrip_japan100.jpg Jan. 2008, TMY, Hakodate

하코다테발 비행기로 한국에 돌아올 예정이었기에 온 하코다테였지만, 정말 꼭두새벽에 도착해버린 하코다테역에서 나도 뭘 해야 할지 몰랐다. 그날 출발하는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기 때문에 숙소를 잡은 것도 아니었다. 그날이 새해 첫날이었기에 하코다테에서 새해 첫 일출을 보면 좋겠다는 그런 작은 소망만 갖고 혈혈단신으로 온 일행이었다.


data_v5_daytrip_japan099.jpg Jan. 2008, TMY, Hakodate

하코다테역에는 많은 일본인들이 저렇게 자고 있었다. 그들은 아침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고, 추운 홋카이도의 겨울을 피해 이렇게 노숙을 했다. 겨울에 노숙하는 일본인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data_v5_daytrip_japan108.jpg Jan. 2008, TMY, Hakodate


그렇게 역에서 버티고 있기엔 청춘이 아까웠다. 아니 비행기 값 역시 아까웠다. 잠깐 역에서 나와서 본 거리는 왠지 보사노바를 들으며 탱고라도 춰야할 것 같은 그런 곳이었다. 산 너머론 터오는 동이 보였고, 눈이 슬금슬금 내리기 시작했다.


data_v5_daytrip_japan095.jpg Jan. 2008, TMY, Hakodate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아무도 없는 창고 사이의 길을 통과해 하코다테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을 올랐다. 이 언덕이 내가 비행기까지 타며 이 곳에 오게 했으며, 날 분명히 또다시 오게 할 그런 장소라는 걸 난 한 눈에 난 알아챌 수 있었다. 이렇게 근대 아시아의 정취가 나는 도시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해가 뜨기 전까지 몇 시간이 남았을 무렵, 새해의 일출 사진을 찍기 전에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편의점에 들어가 도시락을 골라보기로 했다. 사실 이 여행에서 일본 편의점의 도시락을 질리도록 먹어봤기에,
우리에겐 굉장히 익숙한 일이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게 새해 첫 끼였다. 평소에 고르던 값싼 튀김류를 대신 새해 기념으로 좀 비싼 걸 먹어 본다고 초밥 도시락을 골랐다. 하지만 일본의 편의점은 한국의 편의점과 달리 딱히 먹을 공간을 갖추지 않고 있었고 너무 추워서 길가에 앉아서 밥을 먹을 순 없었기에
도시락이 든 비닐봉지를 손에 든 채 정처 없이 주변을 떠돌았다.


data_v5_daytrip_japan098.jpg Jan. 2008, TMY, Hakodate


그러다 은행 ATM을 발견했고, 그 안에서 바람을 피하며 밥을 먹었다. 그래도 도시락인 만큼 정말 밖에서 즐겁게 먹었으니 도시락의 사명을 충분히 다한 셈이다. 그게 나의 새해 첫 끼였다.



japan057.jpg Jan. 2008, E100VS, Hakodate

그렇게 험난하게 길을 헤쳐왔지만 일행은 하코다테 시내가 보이는 산에 있는 타워는 출입할 수 없었다. 1월 1일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는 문구를 입구에서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허탈함이 몰아쳤다. 그러고 나서 뒤를 돌아보니 내가 예상하지 못한 풍경을 보였다. 마치 내가 한 일이 헛수고는 아니었다고 하코다테가 조용히 타일러주는 듯한, 타워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박제되지 않은 조용한 풍경이 내 시선을 뺏어갔다.


난 그렇게 조용히 새해의 첫 해가 떠오르는 걸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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