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꼭 뉴욕에 놀러 오라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이름이 Twelve, 말 그대로 숫자 12인 그 친구는 음악을 하는 친구였고,
내가 미국에 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순간부터 다짜고짜 뉴욕에 오면 호스팅을 해주겠다는 사람이었다.
일반적으로 내가 여행을 갈 때마다 어렵사리 호스팅 부탁을 하는 것과는 달리
그는 날 잘 알지도 못 하면서 호스팅을 하겠다고 했었고, 나로선 다소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번 뉴욕 방문 때 덜컥 그에게 호스팅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뭔가 신기한 동네에 살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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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저녁 비행기로 도착하여 Bronx로 이동하며 택시에서 본 밖은 브루클린을 닮아있었다.
언젠가 한번은 이런 미국식 아파트촌에 사는 것도 흥미진진하지 않을까 했는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시내에 있었지만 예상외로 그의 집은 굉장히 조용했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가득한 시끄러운 뉴욕의 밤거리를 생각했지만,
비슷비슷하게 생긴 네모진 건물의 어두운 조명 사이로 녹지 않은 하얀 눈만이 시야에 들어왔다.
미국에서 산지 2년이 넘다 보니 그의 아파트가 미국 기준에서도 꽤 낡은 모델이라는 사실도 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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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 그와 아침을 먹으러 나와보니, 주말이라고 브런치 식당이 터질 듯이 바빴다.
여행객이 들를 것 같지 않은 그 동네 식당엔 가족 손님들이 가득 찼고,
살짝만 둘러봐도 대다수가 이민자로보이는 히스패닉 혹은 흑인이었다.
식당을 나와보니 그 식당의 손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동네에 걸어다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보아왔던 맨해튼 위주의 뉴욕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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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진 아침 식사 때문이었을까. 계속된 여행의 피로 때문이었을까.
그때쯤 알 수 없는 두통이 들기 시작했다.
잘 안 마시는 커피에라도 의존해야겠다고 생각해 커피와 단 것들을 잔뜩 사고
그의 집에 와서 그와 음악 이야기를 하며 아침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는 내가 들려주는 음악에 맞춰 기타를 튕기다 곧 예상하지 못했던 파마를 시작했다.
나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였지만 집에 무려 파마 기계가 있을 정도로,
매일매일의 파마 관리가 절실히 필요한 모양이었다.
뉴욕의 겨울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그의 방은 햇살이 들어 따뜻했고,
뉴욕 사람들과의 대화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사는 이야기에 웃고 떠들다
금세 오후가 다가왔다.
*
해가 중천에 이르자마자 난 예약한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그의 집을 나왔다.
여행을 꽤 많이 했지만 그렇게 남의 집에서 짧게 지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짧은 시간에 익숙한 곳에서 낯선 것을 많이 본 적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