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상의 남자중학교와 남자고등학교를 나오는 바람에
청소년기에 알고 지낸 여자들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또래의 여자들을 볼 기회는 방과 후에 간 학원이 전부였다.
거기서도 그들과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그냥 이름을 알고 지내는 게 전부였다.
지금이야 성격 탓인지 여자인 친구들이 훨씬 더 많지만,
대학교에 갓 입학했을 땐 여자들에게 말 붙이는 게 쉽지 않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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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4학년 때 캠퍼스에서 고등학교 3년 간 학원을 같이 다닌 한 친구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여고를 다녔던 그는 내 기억에 자그마한 체구에 조용한 성격을 가졌었고,
예전 모습과 비슷한 덕에 그를 쉽게 알아보고 다가가서 인사를 했었다.
그도 나도 같은 대학을 다니고 있는지 그때서야 처음 알았고,
서로 대화를 길게 해 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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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나는 학교 중앙전산원에서 컴퓨터 관련 문의 전화를 받고
관련된 담당자에게 전화를 돌려주던 근로장학생으로 일했다.
내가 담당 사무직 선생님과 함께 일하던 사무실은 투명한 유리 벽으로 둘러져 있었고,
그 벽을 통해 밖에서 학생들이 컴퓨터를 하는 게 보이던 곳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담당 사무직 선생님이 날 보더니 갑자기 물으셨다.
"혹시 친구야?"
"네?"
선생님은 손가락으로 벽을 가리키며 신기하다 싶은 표정을 지으셨다.
내 시선을 돌려보니 거기엔 그 친구가 내 관심을 끌려고 그 작은 체구로 거미처럼 팔을 벌리고
유리 벽에 붙어서 말없이 계속 점프를 해대며 나한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사람이 흐뭇함을 느끼다 가슴이 쩌릿해질 수 있다 걸 그때 처음 느꼈다.
그러고 나서 선생님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네, 정말 좋은 친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