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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Catkr Dec 21. 2016

좋은 사과

정말 괜찮은 사과라면...?


10년 전,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갈 때의 이야기다. 당시에 난 싱가포르 항공의 비행기를 타고 유럽으로 향하고 있었다. 워낙 장거리 비행이라 중간에 목이 탔고, 스튜어디스를 불러 음료를 주문하려 했다. 하루 전 같은 항공사의 비행기에서 메뉴를 본 기억엔 항공기에 사과 주스, 파인애플 주스 정도가 준비되어 있었고, 그때 마신 파인애플 주스가 괜찮아서 그걸 다시 시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스튜어디스가 내 호출을 받고 왔을 때 갑자기 파인애플이 P로 시작하는 단어인지 F로 시작하는 단어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사실 그때까지 진지하게 파인애플의 철자를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짧은 순간에 난 머리를 굴렸다. 파인애플이 사과보다 맛있으니까 "좋은 사과 (fine apple)"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승무원에게 "fine apple" 주스를 주세요 하고 말했더니, 승무원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겠다고 했다. 

몇 번을 말해도 못 알아듣길래 내가 발음이 안 좋은 가 싶어서 승무원 보고 가까이 오라고 한 다음 그의 귀에다 대고 천천히 발음을 굴려가며, "화-이-인-애-프-을"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승무원이 내 말을 알아들었다고 했고 잠시 후 뭔가 한 잔을 가지고 왔고, 그걸 마셔보니 와인이었다. 화-이-인을 와인으로 알아들은 것이었다. 그때 뭔가 잘못된 걸 깨닫고 메뉴를 다시 읽어보니 "pine apple"이라고 쓰여있었다. 

난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와인을 마셨다.


Aug. 2006, TMY,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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