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보낸 대부분의 시간은 인상적이지 않았다.
내가 유럽을 너무 자주 와봤기에 생경함을 무기로 내 시각을 매료시키는 건
이제는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닫고 있었다.
출발하기 전부터 이번이 홀로하는 마지막 장기 여행이라는 걸 각오했지만,
몸으로 실감하는 그 느낌은 환영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Stuttgart에서 지내는 동안 가끔의 내 일상을 찍는 것 외엔
난 그다지 사진을 찍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고,
그렇다고 사람들하고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든 것도 아니었다.
*
그러던 한낮에 비가 오다가 멈췄다.
창 밖의 구름 모양새를 보니 노을이 푸를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비가 왔기에 노을경의 도로가 촉촉할 것이라는 상상도 저절로 떠올랐다.
아마추어 사진을 하면서 내가 갖게 된 유난한 감각은 그게 전부일지 언정,
그것만큼 마음을 설레게 하는 징조도 없었다.
10년 전 정도엔 그런 날의 사진만 찍으려고 항상 날씨만 벼르고 있었었는데,
이제는 무뎌진 내가 애석하기만 했다.
그건 아닌 것 같았다.
*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숙소를 박차고 나온 나는 기차를 탔다.
Stuttgart는 와인으로 유명한 지역이라서, 교외에 가면 와인 투어 같은 것도 있다는 소문을 들었고,
포도나무가 보이는 언덕에서 노을을 보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와인 시음 같은 건 다 팽개쳤다. 내가 기차를 탔을 땐 이미 5시가 훨씬 넘은 시간이었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사진만 찍을 생각이었다.
*
기차에서 내려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와인투어와 관련된 푯말을 보긴 했지만 자리를 지키는 사람도 없었고,
평일이라 그런지 거리마저 한적했다.
난 어디가 서쪽이고, 어디에 구릉이 있는지만 계속 확인했다.
멀찌감치 보이는 구릉이 부드러워 보여 언덕바지로 무작정 올라도 되겠구나 싶었다.
마침 독일식 집 사이로 좁은 비탈길이 보였고, 아마도 거기가 입구인가 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
혼자 찍는 풍경사진이라는 게 항상 그렇지만, 구릉에서 보이는 노을은 조용했다.
상상 속의 풍경은 항상 빛이 난무하지만, 현실의 그것은 그 조용함 속에서 질문만 던진다.
왜 이 곳이 멋지다고 생각했냐고.
어지러이 널려진 재료 속에서 난 답을 하기 힘들었다.
하긴 그렇게 이미 요리가 된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라면 이 곳은 유명 관광 지였을 테다.
*
"부르릉!"
그 조용함을 깬 건 언덕을 올라오던 차 한 대였다.
언덕을 올라가겠다고 높아진 엔진 소리가 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길에 서 있던 나에게
마치 어서 답을 하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