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은 답이 아니었다 (1)

'몰래카메라'의 주인공

by 박태초


30대가 된 지금도
눈을 감고 어둠 속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십오 년이 훌쩍 지난 그때의 기억이
유독 선명하게 떠오른다.


초등학교 시절은 흐릿하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의 이름조차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당장이라도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던 기억의 시작은
중학교 시절이다.


그중에서도 중학교 2학년 여름의 공기는
마치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열네 살.


처음 교복을 맞춰 입고
두발 규정에 맞춘 스트레이트펌을 하며
설렘 속에 시작했던 중학교 생활.


하지만 그 설렘은 오래가지 못했다.


1학년이 끝나갈 무렵 시작된 친구들과의 문제는
나를 학교라는 공간으로부터 밀어냈다.


학교에 가는 것이 두려워졌던 나는
집 사정이 여의치 않았음에도
사춘기의 떼와 악을 써가며
‘해결’ 대신 ‘전학’이라는 선택을 했다.


나를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으로 떠나기만 하면
영화 속 주인공처럼 새로운 삶이 시작될 거라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때 묻지 않은 순수함 속의

꽤 달콤한 착각이었다.


열다섯.


흔히 말하는 질풍노도의 시기. 중이병.


중학교 2학년의 시작은
잠깐 스쳐 가는 봄바람 같았다.


봄 냄새 가득한 바람이 부드럽게 불고
교실 창문 사이로 봄볕이 들어오던 그런 날들처럼.


그 봄바람에

나는 내 도망이
오답 하나 없이 딱 떨어진 정답처럼 느껴졌다.

이 선택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거라 믿었다.


따사롭던 아주 잠깐의 봄이 지나고


초여름의 끈적한 공기가 찾아올 무렵,
우리는 수련회를 가게 되었다.


장소조차 또렷이 기억나지 않는 그 수련회는
지금까지도 내 인생에서

가장 긴 텁텁한 바람이 부는 여름의 시작이었다.


텁텁한 여름의 시작점은
수련회장으로 향하던 버스 안이었다.


당시 아이들 사이에는
묘한 장난이 유행처럼 돌고 있었다.


근거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
한 사람을 몰아붙이고,
상대가 당황하거나 무너지면


“야, 이거 몰래카메라야.”


하며 웃어버리는 장난.
이유는 없었다.


수련회는 2박 3일이었고
열다섯 아이들에게 버스 안은 지루했다.


도파민에 감겨있는 그들은 그저
타격감이 좋을 것 같은 아이를 골랐을 뿐이다.


버스 안의 소란스러운 공기 속에서
나는 맨 뒷자리 오인용 시트 한 칸 앞
창가 구석에 몸을 구겨 넣고 앉아 있었다.


그 좁은 틈에서
나는 직감했다.


오늘 그들이 정해놓은 도파민이자
‘몰래카메라 주인공’은
나라는 사실을.




이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월, 금 연재
이전 03화비밀을 꺼내기로 했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