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 고비들을 하나씩 넘겼다고 해서
내 인생이 영화처럼 찬란해진 건 아니었다.
극적인 반전도 없었고,
나를 괴롭히던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지지도 않았다.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언덕이 있었고,
겨우 숨을 돌리면 다시 겨울바람이 불어왔다.
생각해 보면
나는 꿈이 많은, 평범한 아이였다.
그 꿈의 목록 어딘가에는
‘작가’도 있었다.
아, 물론 그때 내가 쓰고 싶었던 건
이런 생존 기록이 아니라
달콤하고 몽글몽글한 로맨스 소설이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로맨스 대신 생존을 선택했다.
‘전문직 직장인’이라는 안전한 옷을 입은 채
작가라는 꿈은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었다.
지금 그 비밀을 다시 꺼내게 된 건
아이들을 키우는 주변 언니들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요즘 학교 이야기들은
세상이 빠르게 변하듯 많이 다르겠거니 생각했지만
아직도 내가 겪었던 십 대의 그늘과 닮아 있었다.
아니, 어쩌면 빠른 정보 통신망으로 인해 더 은밀하고 집요해졌는지도 모른다.
주변 언니들의 말들을 듣는 내내
나는 문득
내가 애써 묻어두었던 그 시절을 떠올렸다.
혹시 지금 이 순간에도
그때의 나처럼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혼자 버티고 있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어떤 마음으로
오늘을 지나고 있을까.
나는 한동안 메모장을 켜지 못했었다.
굳이 꺼내 보이고 싶지 않았던 약점,
혼자 짊어지고 가야 할 흉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럼에도
결국 메모장을 열었다.
내 기록이 누군가의 삶을 바꿀 거라고
거창하게 믿는 건 아니다.
다만
그 차가운 교실 안에서의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던 나에게
누군가가 조용히 말해주었더라면 좋았을 한 문장을
지금은 내가 건네보고 싶어졌다.
세상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고.
한 번의 용기로 그 문을 열고 나오면
분명 다른 계절도 기다리고 있다고.
그래서
이제 나의 비밀을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바늘구멍만 한 빛이라도 되기를 바라며,
나의 가장 춥고 어두웠던 계절 이야기와
세상은 그 계절에서 멈추지 않고
결국 돌아오는 ‘나만의 찬란한 계절’을
맞이하는 이야기를 이제 시작해보려 한다.
이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