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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렬 Feb 20. 2018

점심시간에서 체육정책을 찾자


점심시간에서 체육정책을 찾자


2017년 9월 14일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국민체육진흥공단 스포츠개발원 주관으로 <국민과 함께 다시 만드는 체육청책> 포럼이 열렸다. 의도적으로 오타 의심을 노린 제목이다. 들을 ‘청’에 헤아릴 ‘책’으로 국민제안을 듣고 이를 국정 정책으로 반영시킨다는 게 행사의 취지다. 다시 말하자면 스포츠개발원에서 사전에 실시한 체육정책 공모를 토대로 한날한시 한 자리에 모여 문체부 제 1차관 앞에서 자신이 제안한 정책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개회사에서 노태강 차관은 “오늘은 입은 막고 귀만 열어 놓겠다. 좋은 제안을 많이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고 정말 시종일관 청취에 전념했다. 생활체육, 학교체육, 엘리트 체육, 체육산업, 장애인 체육 이렇게 크게 다섯 분야를 구분하여 스무 명 정도가 마이크를 잡고 제안을 피력했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시민단체를 대표(국내 체육 시민단체가 한 개 뿐이라)하여 이주민생활체육 지원을 제안했다. 발표 시간이 3분이어서 한 가지를 제안하기도 벅찼다.  내게 시간이 더 주어졌으면 ‘학교 운동부 폭력 근절 대책을 촉구하는 ‘가해자 엄벌을 넘어 해당기관 패널티 적용'과 현 정부에서 태권도문화콘텐츠화가 국정사업 채택된 이유를 묻는 ‘태권도 특혜라는 의문에 답을 바란다’도 말했으리라. 

근데 포럼에서 생활체육분야 정책제안 발표가 너무 부족했다. 대부분 학생선수 시스템 개선과 협치 기관 및 독립기관 신설 그리고 체육 전담 전문 공무원 배치를 비롯한 일자리 창출이 주를 이었다. 이랬으면 차라리 내가 근 3년 전부터 주창했던 “점심시간 90분으로 증가”를 추가 제안으로 넣을 걸, 못내 아쉬웠다. 이에 혀를 끌끌 차는 대신 이렇게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툭툭 차며 아쉬움을 달래본다.



“점심시간 90분 증가”야 말로 생활체육 참여율 증가에 즉각적인 효과를 가져 온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나라 생활체육의 가장 큰 문제점 낮은 참여율이다. 운동을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운동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2016 생활체육참여실태조사>에 따르면 주 3회 이상 생활체육을 참여하는 비율은 37%에 그친다. 생활체육 미참여 원인 부동의 1위는 ‘시간부족’이다. ‘시설부족’, ‘건강문제’, ‘관심부족’을 제치고 1986년 62%, 1997년 52%, 2006년 45%, 2016년 47%로 ‘시간부족’이 30년 째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OECD 가입국 중 멕시코 다음으로 노동시간이 많으니 이를 어찌하겠는가. 노동시간 단축 또는 야근 제한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시행되기가 녹록치 않다. 그보다 현실 가능한 방법이 있으니, 바로 점심시간 증대다. 이건 현장에 목소리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점심시간을 생활체육참여 방안으로 여긴다.  
 
2017년 9월 8일 취업포털 잡코리아는 직장인 68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점심시간 활용 실태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직장인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점심시간은 ‘1시간 30’분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62%라는 비율을 보인다. 21%는 ‘1시간’,15%는 ‘2시간’이라 답했다. 응답자의 대다수는 현재 1시간미만(70%)으로 점심을 보낸다. 열 명 중 아홉 명은 점심시간이 충분하면 산책(46%), 낮잠 및 휴식(27%) 그리고 요가, 헬스와 같은 운동(22.6%)을 하고 싶어 한다. 허나 현실은 응답자의 75%가 식사 외에 다른 활동이 어려운 상황이다. 


앞서 내가 2015년부터 체육정책을 제안으로 ‘점심시간 증대’를 던져 댔다고 했으니 이 설문조사 결과가 얼마나 반갑고 기뻤는지. 고교야구 팬들이 말하는 고교야구의 치명적인 매력 중 하나가 1학년 때부터 눈여겨봤던 선수가 프로야구에 지명 될 때라고 하던데, 그 기분이 새삼 이해됐다. 기실 이 영광을 A씨에게도 돌리고 싶다. 2년 전 A씨와 나눈 대화가 많은 영감을 주었으니.

바야흐로 2015년 8월 하순. 오전 10시 경 A씨 근무지에서, 그러니까 광화문 한복판에 위치한 어느 기관 1층 부대시설인 카페에 앉아 업무관련으로 만남을 가졌다. 커피를 홀짝거리며 업무용 얘기를 매듭짓고 서로의 근황을 묻다 “직장인 운동방법”으로 대화 주제가 똬리를 틀게 됐다. 둘 다 유리잔 맺힌 물방울 보다 많은 분량으로 침 튀기며 말을 주고받았다. 그 무렵 A씨는 운동에 큰 관심을 가졌고 요가와 헬스 그리고 홈트레이닝을 병행했었다. 여기서 방점을 찍은 건 운동시간 확보였다.
 
A씨가 제일 먼저 시작한 운동은 헬스였다. 직장에서 도보로 10분도 채 안 되는 피트니스센터에 6개월 치 등록을 했다. 초반에는 열심히 다니다가 점점 야근이 많아져 퇴근하고 센터에 갈 여력이 나지 않았다. 방편으로 귀가 후 저녁을 간단히 먹은 뒤 거실에 '마일리사이러스 운동법 (Miley Cyrus Workout)'을 틀어 놓고 두 세트 정도 홈트레이닝을 했다. 덧붙이기를 처음 틀은 영상이 하체 집중 운동이었는데 한 세트 마치자 요기지가 일었다고. 점차 적응이 됐고 나중엔 헬스장 가는 것보다 편하고 좋아지기 까지 했단다. 허나 피트니스 센터 끊은 게 아깝다(스튜핏!)는 생각이 일었고 소비효과를 궁리하다 센터 인기 프로그램인 점심시간 요가반을 발견했다(유레카!).

A씨는 점심시간 되자마자 부리나케 센터로 가서 40~50분가량 요가를 하고 다시 부랴부랴 근무지로 가서 싸온 자연친화적 도시락(바나나 고구마, 닭가슴살 삶은 계란, 두유 요플레 따위)으로 점심을 후딱 해결하고 업무로 복귀하는 일상을 꾸렸다(그뤠잇!). A씨에게는 퇴근시간 보다 점심시간이 훨씬 안정적인 운동시간을 제공했다. 저녁시간은 야근, 회식, 모임, 일상생활 등 여러 변수가 엉킨 반면 점심은 식사 외에 다른 변수가 작용될 여지는 희박했다. 그리고 근무시간에 홀로 1시간을 독차지하는 이점도 큰 장점이었다. 

A씨는 요가하기 전 까지 점심이 되면 으레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메뉴 선정의 피곤함, 컴퓨터 대신 음식만 놓였을 뿐 업무나 다름없던 시간이었는데, 요가를 하면서 오롯이 자신의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고 온몸의 동작을 탐구하는 순간을 누렸다. 특히 수업 막바지에 5분 정도 누워서 명상을 하노라면 찰나의 영원을 맛봤다고. 허나 업무가 많을 땐 이 영원의 순간을 놓치기 일쑤였다. 그러면서 점심시간이 30분 정도만 길어지면 좋겠다고 했다.
 

사진 출처 :(1) https://blog.naver.com/02sesang/220960160582 (2)https://blog.naver.com/olmyt/221063707113


나도 이에 신명나게 맞장구를 치자 대화가 절정에 이르렀다. 당시 두 달 전까지 나는 대학로 한 가운데 놓인 모 대학 치과대학 체력단련실에서 트레이너로 오전타임 알바를 했었다. 여기서 특이했던 게 점심시간에 운동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 그래서 3개월 간 회원 출입 통계를 내보니 19시~20시가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7시~8시, 12시가 근소한 차로 뒤를 이었다는 사실. 나아가 점심때 병원 바로 앞 창경궁에 들어가면 직원증을 맨 사람들이 콩국수에 뿌린 깨만큼 있었으며, 혼자 온 사람부터 삼삼오오 모여 생글생글한 얼굴로 산책을 했다는 사실을 일거했다. 

대화가 결말에 다다를 때 “저녁이 있는 삶보다 점심을 누리는 삶을 먼저”라는 구호를 만들기도 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나도 석사 논문 쓸 때 점심시간에 도서관 근처 헬스장에서 운동을 했었다. 덕분에 체력저하, 요통 예방이 가능했다. 작년에도 점심시간에 근무지 인근 헬스장에서 종종 운동을 했었다. 그런데 올해 새로 들어간 단체는 주 2회만 출근을 해서 점심운동 맥이 끊긴 상태다.

점심시간 30분 증가는 건강증진 정책이나 다름없다. 생활체육뿐만 아니라 모든 여가활동이 증대될 것이다. 휴식시간도 마찬가지. 가뜩이나 요즘 점심시간을 공략한 예술문화 프로그램과 휴식 사업이 점점 늘어나고 않은가. 현장에서 정책의 길이 보이지만 당국에서 촉각을 세우는 생활체육 정책은 대부분 선진국 모델을 표방한 경우가 많다. 특히 십여 년부터 집중한 스포츠클럽 시스템 구축이 그렇다. 이를 통해 2016년 체육 양대 단체였던 대한체육회와 생활체육회 통합을 이끌었다. 그런데 스포츠클럽정책도 아무리 시설과 프로그램 지원을 한들 시간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정책을 위한 정책이 되면 안 된다. 얼마 전 만난, 일본에서 스포츠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한국 야구의 원류』 등 한국 스포츠 관련 책을 몇 편 낸 오시마 히로시(大島裕史) 선생이 내게 해준 말이 떠오른다.

 “한국은 고교야구 발전을 논할 때 항상 고시엔을 말한다. 고시엔의 인기, 대회규모와 같이 대회자체만 언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진짜 고시엔의 저력을 알고 싶다면 지방에 소규모 학교 야구부를 봐야한다. 그 작은 학교의 야구부가 일본 야구를 더 잘 보여준다.”
 
이처럼 체육정책은 거대담론, 선진 시스템 정착만큼 현장 즉 개개인의 생활에서 착상을 얻는 작업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앞으로는 ‘체육청책’을 넘어 현상을 살피는 ‘체육상(像,모양 상)책’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그나저나 정녕 “점심시간 90분”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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