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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렬 Sep 03. 2018

이주민들의 '보는 스포츠'

<1화> 경기장 : 감각의 향연, 일상기술의 헌장



저는 인천아시안게임 배드민턴과 크리켓 경기장 관중석에서 고국을 응원하는 이주민들의 모습을 보고 아시안게임의 새로운 가능성을 봤습니다.

작년 9월 중순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일본 야구칼럼니스트인 오시마 히로시 선생님에게 들은 말이다(물론 한국어로 대화했음). 이 말을 듣고 아차 싶었다. 내겐 인천아시안게임은 오직 330억 외에는 다른 의미가 들어올 여지가 없었던 터라. 그러니까 연간 100억 씩 적립되어 2015년 이후 330억 원에 달하는 아시안 게임 경기장 적자만 들여다봤지 배트민턴과 크리켓 경기장 관중석에서 수많은 이주민들이 고국을 응원하는 장면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깜냥이라는 사실에 아차, 아뿔싸, 아이쿠 했다.


각성 후 보름이 지난 뒤인 10월 5일 동두천시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제 7회 네팔컵 축구대회>에 자원 활동을 나섰다. 경기를 뛰는 선수들 보다 경기를 보러 온 사람들을 관찰하기로 마음먹었다.  2011년 부터 매년 추석 명절 마지막 날 진행된 네팔컵 이주민 축구대회는 전국에 거주하는 네팔 이주민들이 한 날 한 시에 모여 경합을 벌이는 행사다. 개최지 동두천을 비롯하여 인접 지역인 포천, 수도권인 서울, 김포. 멀게는 최남단 거제도와 목포에서도 참여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7회 대회에는 22팀을 포함하여 총 500명가량이 동두천시 공설운동장을 찾았다. 전년 대비 절반 가까이 관중수가 줄었는데 그 이유는 이날 서울과 다른 지역에서도 네팔 이주민 행사가 열려서 참여자가 분산되어서 그렇다.


경기를 하는 250명의 선수가 아닌 250명의 관중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사람이 가장 모인 공간은 경기장이 아닌 간이형 네팔 음식 가판대였다. 경기장 후문 쪽 주차장과 도로 사이에 어중되는 곳에 위치했는데 네팔 만두인 ‘모모’와 ‘카레밥’ 흑갈색 돼지고기 요리를 먹으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고국의 음식을 함께 나누며 자신들의 언어로 대화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고향의 명칭으로 지어진 팀을 응원한다는 것. 이를테면 ‘히말라얀FC’, ‘마낭FC’의 경기를 보며 함성과 탄식, 기쁨과 안타까움 등 다채로운 감정이 폭죽처럼 터지는 시간.


경기장은 비단 감각의 축제뿐만 아니라 일상과도 밀접한 삶의 현장이기도 했다. 대회 주최와 진행을 총괄한 ‘주한 네팔축구협회’ 부회장 나마 브로카스 씨의 말을 빌려본다.  


"한국 거주 네팔 사람들이 한 달, 두 달에 한 명씩 자살을 하고 있대요.  네팔은 일자리가 없어서 돈을 벌려고 해외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일을 안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이국땅에 와서 12시간씩 와서 노동을 하니까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가 많아요.(스포츠니어스 2017년 10월 12일 기사 인용)”


“그나마 네팔 사람들이 많은 회사에 들어간 사람들은 좀 낫죠. 한국인만 있는 회사에 들어가면 대화도 안 통해 자살을 그렇게 많이 해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만나서 축구라도 하자. 축구를 통해서 친구들을 만나고 네팔 음식을 먹는 모임을 만들면 자살률을 낮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위 동일기사 인용)”


"단순히 경기를 보는 것을 넘어 한국 이민생활의 고충과 생활정보를 교환해요. 집 값이 싼 곳이나 네팔 사람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곳을 알려주고 취업 알선도 해줘요.(이건 이경렬의 기록)"  


네팔 축구대회에서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스포츠의 기능 혹은 낭만, 한편으로는 그간 '민족주의', '스포츠 정치 도구화'에 매몰되어 탐색하지 못했던 스포츠의 역할을 상기하게 됐다.

(2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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