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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렬 Jan 23. 2018

소설가 김중혁의 몸에세이『바디무빙』

오랫동안 기다린 책이다. 지난 4월 중순 예약판매 광고 메일을 보고는 쾌재를 지를 정도였다. 기다림의 시간은 11개월 정도가 된다. 그렇다면 11개월 속에 담긴 시간의 길이를 측정해보겠다. 『바디무빙』는 영화 매거진 『씨네21』에 2014년 1월부터 2015년 5월까지 격주(말미에는 한 달에 한 편 꼴) 목요일 마다 연재된 칼럼을 모으고 추려 만든 책이다(참고로 연재물 제목은 「바디무비」이었다). 연재 첫 회부터 마지막 편까지 글이 올라오는 족족 읽어치웠다.

이렇게 읽은 이유는 흔치않은 몸(스포츠 비중이 큰)에 대한 에세이였고, 나아가 김중혁 작가의 팬이기 때문이다. 부연하자면 2012년부터 김중혁 작가가 고정 패널로 참여하는 팟캐스트 [빨간책방] 애청자이고, 비록 소설은 아니어도 에세이집만큼은 꼬박꼬박 챙겨 봤다. 종합하면 꽤나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 그것도 몸이 주제인 글을 격주에 한 번씩 볼 수 있는 것이니, 10대 시절 주간 만화지『코믹챔프』에서 연재된「슬램덩크」를 기다릴 때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연재가 끝난 2015년 5월부터 책 출간을 기다렸다. 허나 2016년 설날이 지날 때 쯤 기대를 꺾었다. 쌓인 눈에 부러진 나뭇가지가 따로 없었다. 그러나 꺾인 나뭇가지에 제비가 날아온 것처럼 지난 5월, 드디어 책이 출간됐다. 광화문 대형 서점에 입고된 날 비로소 두 손으로 책을 껴안았다. 두 권을 샀기에 껴안았다는 표현이 허용되리라 믿는다(한 권은 선물용).




책은 기존 연재물 스물다섯 편 글과 새로 쓴 세 편의 글로 구성됐는데 이는 책의 특성과 한계를 잘 나타낸다. 기존 글과 새 글의 차이가 있다. 기존 글은 영화 매거진 지면이여서 그런지 글 속에 반드시 영화가 언급된다. 관련하여 연재 중일 때『씨네21』신간 도서 소개 코너 담당 기자는 “영화 속의 이야기와 지나온 삶의 맥락 속에서 몸의 사연을 듣고자 하는” 글이라 설명한 바 있다. (2014.12.11, 『씨네21』 [도서] 소소하고 은밀하게, 이다혜 기자)

이렇듯 거듭되는 영화 언급은 독서 방해요소가 되기도 했다. 이를테면 소개된 영화가 궁금하여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다가는 결국 실검에 노예가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아울러 본 영화와 안 본 영화에 따라 확연하게 독서 차이가 났다. 차이에 따른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반면 새 글에서는 영화 언급이 없다. 개인적으로 새 글의 형태를 더 선호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흐름 속에 머무는 안정감이 좋았다.

나온 김에 아쉬움 한 가지 더 추가. 영화 소재의 한계 때문일까. 기대했던 것보다 스포츠와 관련된 글이 많지 않다. 여기서 말하는 기대는 개인적 바람이 아니라 작가가 연재에 앞서 부치는 글에 기인한다. 그는 분명 다음과 같이 포부를 밝혔다.

"미장센이네 몽타주네, 거창하게 둘러대고 있지만 결국 몸과 스포츠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어째서 <노브레싱>은 실패한 수영영화인지 <리얼스틸>은 알리의 로프 어 도프(rope a dope) 전략을 얼마나 잘 활용하고 있는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미식축구와 징크스의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전혀 없지만 어쩐지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출처 : 2014.1.2『씨네21』,「김중혁의 바디무비」“아름답고도 격렬한, 몸·몸·몸” 중에서


그렇지만 정작 수록된 글에서는 수영 빼고는 다루지 않았다. 비록 위에 없는 야구와 체조가 있어서 좋기도 하지만 스물여덟 편에 글에서 스포츠를 중요하게 다룬 글은 네 편뿐이다. 종목은 수영, 야구, 족구, 리듬체조. 여기에 권투와 미식축구가 포함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만족도가 한 차원 상승했을 텐데, 마치 고속도로에서 6인 이상이 되면 버스 전용도로를 이용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자, 이제 다시 팬심을 발휘할 차례. 이 책은, 일단 가독성이 좋다. 이는 묵독이 아닌 낭독에서 더욱 감지하게 됐다. 5월 한 달간 매주 수요일 『바디무빙』을 강독하는 모임에 참여했었다. 40쪽 정도를 낭독해본 결과 읽기가 좋았다. 다른 사람의 읽는 소리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글 속의 재미있는 여러 정보 습득도 즐거움을 배가 시킨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문장이 많다. 내 취미 중 하나가 문학작품에서 스포츠와 관련된 글을 찾는 것이다. 개중 좋은 문장을 발견 할 때 남다른 즐거움을 느낀다.『바디무빙』을 읽을 때 이런 즐거움을 종종 받았었다. 한 예로 수영을 표현한 좋은 문장을 소개해 보겠다.

"수영을 배울 때 가장 힘든 점은 앞으로 나아가면서 동시에 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쉬운 일 같지만 막상 물속에 있다보면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땅을 딛고 하는 운동, 달리거나 딛고 뛰어오르는 운동과는 전혀 다르다. 숨을 쉬지 못하면 간단히 죽을 수 있는 게 인간이란 걸, 그토록 무기력한 존재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물속에선 모든 곳이 헤어나올 수 없는 허방다리이고 발 디딜 곳 없는 허공이다. 짚으려고 하는 순간 헛짚게 되고, 붙잡으려고 하는 순간 가라앉는다."
-출처 : 『바디무빙』16쪽


이런 문장은 스포츠의 언어를 한층 풍부하게 해준다. 비록 스포츠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가 ‘입보다 빠른 눈’, ‘눈보다 빠른 손(타짜도 그렇지만)’ 이지만 이 지점을 글로 풀어내는 작업도 스포츠의 매력을 격상시키는 중요한 일이라 본다. 문장을 읽는 순간은 상상 속에서나마 질감이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두 주 전(6월2일) 『바디무빙』작가와의 만남 행사가 있었다. 꼭 참여하고 싶어서 신청했으나 떨어졌다. 해당사이트에서 댓글로 신청하는 것이어서 첫 댓글을 다는 기염을 보였음에도 선정되지 못했다. 만약 행사에 참여했으면 질문 시간에 제일 먼저 손을 들어 책을 읽고 느낀 아쉬움을 토로하고 싶었다. 이를테면 연재를 시작할 때 공표한 것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고 다음에는 꼭 권투, 미식축구 나아가 유도, 양궁, 탁구, 마라톤 등등 종목들도 다루어 달라고 조르고 싶었다.

사회자가 질문을 끊지 않는다면 ‘끝으로’라고 운을 떼면서 올림픽이 다가오기도 하니 올림픽 중계 방송을 주제로 「김중혁의 올림피아」같은 고정물을 연재하라고 청탁하고 싶었다. 이런 일을 예방하려고 주최측에서 신청을 거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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