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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백 자판기 Oct 12. 2022

자괴감에 빠지고 보니 18일째 되는 날이었다

100일 챌린지 18일째

Day 18's Topic : Life


모든 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들어 심신이 모두 건강하지 못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일상생활을 할 때는 그저 피곤해 보일 뿐 별다른 이상은 없어 보인다. 심지어 나의 인스타그램을 보는 사람들은 내가 무척이나 인생을 즐기며 잘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인스타에는 못 사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사실 나는 많이 지쳐 있다. 그리고 이 스트레스는 오랫동안 누적된 것이기 때문에,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굉장히 자명한 일이었다.



열심히 살았지만, 열심히 살지 않은

  처음엔 글을 이렇게 열심히 쓸 생각은 아니었다. 애초에 글보다는 공부가 우선이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다니는 회사는 야근이 잦은 곳이었고,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곳과는 거리가 멀었다. 집에 돌아오면 일단 뻗었고, 하루를 보상받기 위해 유튜브를 보다 잠들었다. 열심히 살았지만 열심히 살지 않은 것 같은, 그런 하루들이 쌓여갔다.

  물론, 내가 공무원처럼 회사를 다니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이렇게까지 일하지 않아도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성격은 뭐든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내야 하는 성격이었다. 그런데다 업무 하나하나 세부적으로 신경 쓰고 있는 게 많아서 혼자서 관리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야근은 많아진 반면 효율적인 성과물은 나오지 않았다. 작은 것 때문에 중요한 것들을 계속해서 놓쳤다. 그러다 문득 정신 차리고 중요한 것을 챙기려고 할 때마다 당장 이번 주까지 마감인 새로운 업무들이 매일같이 쏟아졌다. 보람도 없고 성과도 없었다. 하다못해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겠는 일들이 계속해서 쌓여갔다.



뭐라도 남기자

  휘발되어버린 시간들을 견딜 수 없어서 글을 쓰기로 했다. 처음엔 일주일에 한 번씩. 글을 써서 내가 보낸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듯 뭐라도 하나씩 남겨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한 게 맛집 리뷰와 찻집 리뷰였다. 찻집을 너무 좋아해서 이것저것 재밌는 공간들을 찾아다니는데. 기록으로라도 남겨야 내가 마냥 논 것은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3달쯤 지나자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시간이 없어 쪼개 살아가고 있는데, 내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일을 하기는커녕 놀러 다닌 글에 대한 리뷰를 긴 시간 동안 쓰고 있다 보니 자괴감이 왔다. 그리고 리뷰라는 것 자체가 그렇게 오랜 시간 공들여서 쓸만한 것도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요즘 세상은 다 스낵 컬처인데. 사진 올려서 간단하게 글만 써도 되는 걸 나는 왜 길게 붙잡고 있을까. 그렇다고 엄청나게 대단한 글을 쓰는 것도 아닌데. 현타가 왔다.


그러다 100일 챌린지를 보게 되었다.


  잘 되었다. 매일 조금씩 공부한 걸 남기자. 유튜브 건 뉴스 건 자료 조사건, 뭐든 하다 보면 새로 익힌 지식들이 매일같이 나오지 않던가. 그 지식들을 토대로 글을 매일같이 쓰면 공부 습관도 생길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엉켜버렸다

  매일 글을 쓴답시고 공부하던 분야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니, 점점 욕심이 생겼다. 기왕 쓰기 시작한 거, 내가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하고 어떤 분야로 나아가고 싶은지도 내 안에서 정리해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이 문제는 내 인생에 있어 항상 풀리지 않는 숙제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동안 지독하게 엉켜있던 실타래를 조금씩 풀고자 매일같이 글을 썼다.


그러다 엉켜버린 부분을 마주했다.


  자괴감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완전히 까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애초에 스스로가 쓴 글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리 정돈이 안된 지저분한 방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수많은 아이디어와 생각들이 돌아다니는데, 이걸 깔끔하게 정리할 통로를 찾지 못하고 두서없는 정보들만 나열하다 제대로 된 결말을 내지 못했다. 이쯤 되자 인생 자체를 제대로 살아가는 건 가능한 건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주제가 있는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건,

어떤 일을 하건 핵심을 잡지 못하고 헤매는 시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의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작 18개 썼더라

    이쯤 되면 자괴감이 내핵을 뚫기 시작한다. 미래와 현재, 그리고 과거의 탄생 시점까지. 시작부터 끝까지 전부 잘못되어버렸다는 우울감에 잠겨 들었을 때,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보았다.


100일 목표 달성 위젯


  18일. 100일 중 20%도 안 왔다. 심지어 하루 못 쓴 날은 오전 9시부터 새벽 4시까지 야근하느라 글을 못 올린 날이었다. 이날 글쓰지 못했다는 사실에 좌절할 뻔했지만, 그걸 또 꾹 참고 다시 10일 연속으로 글을 썼다. 그렇게 지금까지 18개의 글을 올렸다.


그리고 나에겐 아직 82번의 기회가 더 남아있었다.

  

  이 숫자를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안된다 생각하고 포기했던 수많은 일들이 어쩌면 지금 딱 이 순간. 20%도 채우지 않았을 때 그랬던 걸지도 모른다고. 절반은커녕 반도 오지 않았는데, 이미 좌절하고 나는 안될 사람이라 단정 지어서 그 다음 기회를 쟁취하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100일 글쓰기의 목표는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에 있었다.


  그리고 내가 고질적으로 가지고 있던 날 것의 문제점을 이렇게 마주하고, 좌절하는 경험을 스스로에게 주는 것이야말로. 그동안 풀지 못하고 숙제처럼 남아있던 인생의 응어리를 풀어낼 방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시 멘탈을 붙잡고 100일 글쓰기를 꾸준히 하려고 한다. 아직 포기하지 않았고, 포기한 적도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지금까지 해온 나에게 작은 칭찬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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