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상당히 헌신적으로 일하던 의지의 끈이 툭 떨어져 버린 건 상사의 분노가 나에게 떨어졌을 때 일이었다. 당시에 그 일은 내가 한 게 아니었다. 친한 사람 위주로 일하는 걸 좋아하는 상사가 나에게서 그 일을 다른 사람으로 넘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사는 그 업무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 분노를 어쩐지 담당자였던 것 같은 나에게 쏟아냈다. 그때 느꼈다.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새벽까지 일해봤자구나. 맥이 탁 풀렸다.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도 더 이상 들지 않았다. 5년 넘게 열심히 했으면, 그만하면 신입의 열정을 다 쏟아낸 게 아닐까 싶었다.
어쨌거나 너는 알 바 아니다
이렇게 글을 쓰는 지금도 사실 주말 업무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끝없이 현타를 느끼고 있다. 이렇게 해도 소용없을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회의 준비 자료를 다 준비해 간다고 해도 상사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관심사가 아니면 10%도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그렇다고 어떤 부분을 보일지 알 수도 없으니 매번 자료는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서 저녁 6시 회의가 끝나면 밤늦게까지 야근을 한다. 보통 6시에 회의에 나왔던 안건을 위한 자료를 다음 날까지 마감해서 보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이래봤자다. 회사는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 내 업무가 얼마나 많고, 어떤 시간들을 쪼개 쓰고 있는지, 내가 어떤 이슈들을 신경 쓰고 있고 이걸 대처하기 위해 얼마나 바쁘게 뛰고 있는지, 아무 소용도 없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회사는 거대 담론을 고민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회사의 높으신 분들은 세상을 구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분들이다. 경제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회사는 언제나 위기고, 이 위기를 이겨나가기 위해선 세상을 구할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 정작 그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높으신 분들보단 실무자들인 것 같지만, 어쨌거나 사사로운 일에 신경 쓰면 거대한 임무를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실무자들의 의중과 인생은 무시한다. 중요한 건 높으신 분들이 생각한 드높은 생각이다.
그러니 나도 알 바 아니다
회사 생활로 피폐해지는 날 보며 주변에서는 내가 너무 회사에 매몰되어 있다 말한다. 네가 회사에 좋은 일 해주려고 해봤자 회사는 어차피 널 신경 쓰지 않는다고. 결국 널 지킬 수 있는 건 너 스스로밖에 없으니 야근할 시간에 부동산이나 주식 공부를 하는 게 어떠냐고 조언한다.
반면 회사에서는 내 개인 여가 시간을 쪼개어 실무에 도움이 될 법 한 공부들을 스스로 해주길 원한다. 회사는 업무만 해도 바쁘니, 필요한 공부는 개인 시간에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현타가 올 수밖에 없다. 나를 위한 나의 시간은 언제일까. 지독히 요령 없는 나에겐 참 인생 사는 게 쉬운 게 하나도 없다.
이런 갑갑한 일들이 나에게만 벌어지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조용한 사직"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게 아닐까. 회사는 어차피 날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니 나도 회사를 신경 쓰지 않겠다. 존중받은 적이 없으니 존중하지 않겠다는 그 말이 조금은 통쾌하게 느껴지는 건, 부모님 세대에서부터 이어온 배신감으로부터 온 것도 적지 않게 있을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열심히 살았다. 1년은커녕 한 달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달려왔다. 하지만 그 결과는 조용하게 피 말라가는 하루하루다. 매일 같이 위장병을 안고 살고, 앞으로 뭐 하며 먹고 살 수 있을지 지독한 불안감에 시달린다. 이렇게 조용히 죽느니 차라리 조용한 사직을 하는 게 훨씬 더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망가져가는 걸 그나마 신경 쓸 수 있는 건, 오직 나 자신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