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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백 자판기 Jun 23. 2022

[영화 리뷰] <버즈라이트이어> 스포 있는 리뷰(2)

영화가 고양이를 다루는 방법 : Save the Cat!

리뷰(1)는 스포일 없이 진행됩니다.

https://brunch.co.kr/@teabagbox/64

리뷰(2)는 스포일러 있는 리뷰입니다.


오늘의 스포일러 있는 리뷰 영화 : <버즈라이트이어>(2022)


감독 : 앤거스 맥클레인

출연 : 크리스 에반스, 타이카 와이티티, 피터 손

개봉 : 2022.06.15


스포일러 있는 영화 리뷰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뒤바꾼 운명


  솔직하게 말한다. 필자는 이 영화를 보고 울었다. 일행은 내가 눈이 아파서 눈물을 줄줄 흘린 줄 알았지만 사실 난 정말 울고 있었다. 물론 이 영화가 그렇게 펑펑 울만큼 슬픈 영화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아마 평범한 상태의 나였다면 이 영화를 보고 울었을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최근에 나에게는 조금 버거운 일들이 있었고, 하필 그 버거운 일들을 관통하는 주제가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와 맞닿아 있었다.


내가 맞다고 생각했던, 반드시 내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모든 일들이 사실 틀린 게 아닐까


  영화에서 버즈는 최선을 다 했지만 미세한 차이로 잘못 떨어진 행성에서 벗어나는 것에 실패한다. 그 결과 자신이 데려온 모든 인간들을 낯선 외계 행성에 떨궈놓고야 말았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갈 준비를 시작했지만 이 행성엔 거대한 벌레와 사람을 수시로 잡아가는 덩굴들이 가득했다. 누가 보아도 살기 좋은 행성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버즈는 영화 내내 자신의 실수(실수보다는 실패에 가깝다)를 만회하기 위해 인생을 바친다. 버즈가 하는 생각은 명확하다.


"내가 한 실수다. 내가 만회해야만 한다. 내가 이 모든 "불행"을 만들었다."


  우주선 연료로 써야 하는 <하이퍼 크리스탈>은 불완전한 연료였다. 그렇기 때문에 버즈는 이 연료를 완성시키기 위해 시험용 우주 비행선을 타고 우주로 나선다. 몇 번이고 시행착오를 겪어서라도 <하이퍼 크리스탈>을 완성시킬 완벽한 배합식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버즈는 단순히 목숨을 건 비행만 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목숨뿐만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할 시간"도 같이 잃어버렸다. 그가 비행을 하고 오면 하고 올수록 4년,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들이 흘렀기 때문이다.


"내 친구 버즈를 지켜줘"


  버즈의 상관 앨리샤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영원히 젊은, 앞으로 영원히 자신과 같은 시간대에 있을 수 없는 버즈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그녀의 삶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는 것만 나온다. 하지만 억측일지 몰라도 그녀는 버즈에게 "부디 임무에 성공해서 우주 비행사가 예전과 같은 위상을 얻었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을 미루어 보았을 때 아마도 그녀는 그를 지원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고충을 겪고 있었을 거라 생각된다. 어쩌면 주변에서 버즈를 그만 보내라고 돈 낭비라는 압박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자신이 생을 다하는 그 순간까지 최선을 다 해 그를 우주로 보낸다.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그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앨리샤는 믿었던 것 같다. 버즈는 "답"을 찾아낼 거라고. 그리고 자신의 생이 다해도 버즈가 그 답을 찾아낼 수 있도록, 자신이 세상에 사라져도 버즈가 홀로 남지 않도록 버즈에게 소중한 친구를 남긴다.


앨리샤의 분신이자 버즈의 곁을 지켜줄 고양이 삭스

  로봇 반려묘. 이 영화의 핵심 키를 쥐고 있는 또 다른 주인공, 바로 "삭스"이다. 필자는 앞서도 말했지만 고양이를 보기 위해서라도 이 영화를 보는 것을 추천하기도 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이유였다. 삭스는 보통 고양이가 아니다. 삭스에게 담긴 역할은 그리 가볍지 않다. 그는 버즈의 영원한 상관이자 친구이자 절대적 조력자인 앨리샤의 분신이며, 시간 여행으로 잃어버린 모든 과거를 뛰어넘어서도, 그리고 앞으로도 버즈의 마음만 변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함께 있어줄 동료이다. 이 고양이에게 세상을 구할 미션이 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고구마 해결사 고양이


  그런데다 영화의 주요 사건마다 고양이 삭스는 해결자로 등장한다. 그는 하이퍼 크리스탈을 완성할 수 있는 공식도 해결해두고, 우주 비행사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한 버즈를 곁에서 끝까지 도와주기도 하고, 차후에 만나는 이지와 동료들이 저지른 사고들도 해결해준다. 이 영화의 답답한 고구마를 끊는 역할 역시 삭스다. 어떻게 보면 사기 캐릭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게 "그럴 수 있지"가 되는 건 삭스는 정말 귀여운 고양이기 때문이다. 귀여움은 세상을 구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귀여움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은 세상을 파멸로 이끌 인물이라는 것이다.


가자! 귀여움으로 세상을 구하러!
Save the Cat!


   영화 시나리오 작법론 중 <Save the Cat>이라는 책이 있다. 블레이크 스나이더라는 유명 영화 시나리오 라이터가 쓴 책으로 흥행하는 영화 시나리오는 어떤 구성으로 되어있는지 설명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주인공은 고양이를 구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그렇다. 책은 이렇게 노골적으로 적혀있진 않다. 책이 강조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관객들이 주인공의 착한 마음씨를 엿보고 공감하고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주인공이 누군가에게 연민을 느끼거나 공감하는 장면을 넣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알라딘에서 도둑질을 하던 주인공이 굶고 있는 고아를 만나자 자신의 훔친 빵을 건네는 장면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아무리 다면적인 인물이라도 그의 인간다운 모습을 보면 관객들은 그를 응원하고 싶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저렇게 직관적으로 고양이를 다룰 줄은 몰랐지


  필자가 나름 영화를 재밌게 보다 짜게 식은 눈으로 영화를 보게 된 건 악당 "저그"가 악당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했을 때였다. 영화를 보았던 사람은 알겠지만 "저그"는 결코 악당으로 불릴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가 고양이를 함부로 다루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영화 속 가장 큰 반전이자 영화의 핵심 메세지를 전달하는 인물은 바로 저그의 정체다. 저그는 사실 평행 세계의 버즈라이트이어이기 때문이다. 그는 주인공 "버즈"와 동일하게 본인의 과오로 행성에 불시착해버리는 일은 겪었지만, 하이퍼 크리스탈 테스트 비행을 성공한 후 자신을 쫓는 번사이드 사령관으로부터 도망쳐 행성 밖으로 벗어나버린다. 이 일이 분기점이 되어 행성에 남은 주인공 "버즈"는 이지, 모, 다비 등과 같은 친구들을 만들지만 "저그"는 고양이 삭스만 데리고 먼 우주를 떠돌며 단 한 가지의 목표를 향해 살아가기 시작한다.


잘못된 신념은 악인을 만든다
내 실수를 없던 일로만 만들 수 있다면.


  그래서 그는 시간을 돌리고자 한다. 모든 일을 없었던 일로 돌리기 위해. 그 신념 하나로 수 십 년을 고양이만 데리고 먼 우주를 헤맸다. 그리고 마침내 완벽한 하이퍼 크리스탈을 가진 주인공 버즈를 발견했을 때, 다 늙어버린 그는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모든 일을 돌이킬 수 있는 그 순간만을 생각하며 가득 설레어한다. 당연한 일이다. 수 십 년간 기다린 일이다. 그때 했던 과오를 돌이키기 위해 지금껏 버텨왔다. 그런 그가 과연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을까? 저그를 과연 악당이라 부를 수 있을까?


블레이크 스나이더의 저서 <Save the Cat>
하지만 저그는 고양이를 죽였다


  그렇다. 그 순간 저그는 천하의 악당이 되었다. 그에게 가졌던 모든 연민과 동정, 저그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며 응원했던 모든 감정들이 이것으로 끝났다. 우주에서 함께 수십년간 여정을 함께하던 고양이 "삭스"를 배신했다는 이유만으로 단칼에 처단했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구하라는 소리가...
그 소리가 저 소리가 아니었을 텐데....


  픽사에서 <Save the Cat> 작법론을 몰랐을 거라 생각되지 않는다. 어쩌면 이 영화를 만들면서 성서처럼 그 책을 들고 다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제자들은 항상 스승을 뛰어넘는다. 고양이를 구함으로써 주인공이 점지된다면, 반대로 고양이를 죽이면 악당이 되겠다는 발상을 대체 어떻게 한 걸까. 어쨌거나 효과는 확실했다. 관객들은 그가 고양이를 죽였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누가 확실한 악당인지 인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가히 우주적 속도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관객들에게 주입시킨다.


실수는 돌이킬 필요 없다.
삶의 모든 순간은 의미 있다.
그러니, 혼자서 독고다이 하지 말고 동료들과 힘을 모아 살아가라!
그리고 필자는 나머지 동료들의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필자는 이 영화를 보고 울었다. 적어도 저그 황제를 마주했을 때까지만 해도 위태로운 인생으로 인해 감수성이 예민했던 필자는 진심으로 이 영화에 과한 몰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양이가 세상의 운명을 점지한 시점부터 필자는 모든 일에 부질없음을 깨닫고 팝콘 먹는 심정으로 영화와 나를 분리시키고 액션을 즐겼다. 그래. 주인공 버프란 저런 것이지. 픽사의 동심이란 저런 것이지...!

  과거를 돌이키고 싶어 하는 게 뭐가 그리 고민할 일이겠는가. 실패해도 인생은 흘러가고 그 모든 인생이 또 지금의 나를 만들고 지금의 내가 또 구르고 굴러서 미래의 나를 만들 텐데. 후회는 본인의 마음에 상처만 입힐 뿐 더 이상 돌이켜 생각하지 않는 게 좋다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남은 러닝 타임 내내 곱씹으며 영화관을 나왔다. 그랬다. 이 영화의 메세지는 확실했다.


고양이를 구해라


  그래. 세상은 고양이가 구원해주거나 멸망시키거나 둘 중 하나겠지. 역시 이 영화는 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영화가 맞았다. 실수가 뭐가 중요하고 후회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고양이를 아끼면 내가 수십 년간 고민했던 문제도 풀어주고 친구도 만들어주고 "후회는 좋지 않은 거야!"라고 다그치며 미래의 새로운 삶도 살 수 있게 해 주는데. 내 인생이 힘든 건 역시 고양이가 없어서겠지.


내가 맞다고 생각했던, 반드시 내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모든 일들이 사실 틀린 게 아닐까


  영화 보는 내내 고민했던 이 문제 역시 "관점의 전환"과 같은 몇몇 추가 과제들만 남긴 채 끝났다. 어쩌겠는가. 이 문제를 단박에 해결할 수 있다면 인생이 그리 힘들지도 않았겠지. 결국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되지 않는다.


심란한 마음을 달랠 수 있을 만큼 귀여운 무언가를 찾을 것.
그리고 그 귀여움으로 세상을 구하기 위해 다시 세상으로 나갈 것.
고양이가 있는 한 인생은 우당탕탕 계속된다


영화 총 평

★★★☆☆

주변 인물 캐릭터는 평이하지만, 주인공과 고양이 간의 관계와 주인공의 내적 갈등은 잘 표현한 영화

크리스 에반스가 캡틴 아메리카에 이어 버즈라이트이어 역할을 맡았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다


스포일러 없는 리뷰(1) 링크

https://brunch.co.kr/@teabagbox/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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