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윤 샘
'본질을 벗어나면 문제가 시작된다. '
얼마 전 식사 중 나온 이야기는 오랜만에 날 생각에 빠지게 했다. 아니 생각의 무게를 가볍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가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차가 고장 나서 구매를 고려해야 했던 상황이었고 평소 차를 좋아하여 사고 싶은 모델이 있었지만 그것은 비싸서 부담이 되었기에 고민이 되었다. 근처 의원 원장님들과 식사를 하던 중 고민을 나눴는데 보통 내 의견을 지지해주시는 것과 달리 한 선생님(놀랍게도 이분은 정신과가 아닌 이비인후과샘이다)이 질문을 하셨다.
'차의 본질은 무엇인가? '
뜬금없지만 난 그의 삶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그래서 이 생각의 시작도 뭔가를 내게 줄 것 같은 생각에 진지하게 대답해 본다.
'내가 원하는 곳에 편안하게 데려다줄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상대적으로 간결하게 말했지만, 사실 이 대답 속에도 감춰진 말이 많았다. 그럼에도 그가 좀 더 간결한 대답을 원하자 '이동수단'이라고 대답을 했는데....
그 순간 ' 내게 왜 이동수단이라는 차의 본질은
더 편리한, 모양이 예쁜, 출력이 센, 남의 시선이 나쁘지 않은(' 좋아하던 차 중에 하나가 일본차였는데 한일 관계가 좋지 않았다.'), 갖고 싶은 브랜드의 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을까? 그건 언제부터이고, 어떤 의미를 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동수단이었을 때 내가 가지는 부담은 크지 않다. 하지만 수식어가 하나씩 붙은수록, 의미를 부여할수록 부담은 점차 늘어났고 본질을 벗어난 느낌을 받았다. 음. 이거 비슷한 게 뭔가 있었는데.....
' 내 인생에서 어떤 것들이 본질에서 벗어나 있나?'
이 질문을 시작으로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에 대한 생각이 시작되었다. 좀 더 어렵게 말하자면 '생각에 대한 생각'이라는 의미를 가진다는 초인지(metacognition)에 대한 알아챔은 날 생각의 힘에서 잠시 벗어나게 해 주었고, 제한된 시간, 범위에서 이전과 다른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제한되었다는 의미는 깨닮음의 순간마다 항상 알아채고 영향을 줄여야지 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다시 자동적으로 사는 날 발견해서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