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왕이로소이다

by 차쌤

12 。나는 왕이로소이다



나는 고양이라 한다。아직 이름은 없다。어디서 태어났는지 도무지 짐작이 안 간다。어쨌든 어두컴컴하고 축축한 곳에서 야옹야옹하고 울고 있었던 것만은 기억하고 있다。여기서 난 처음 인간이라는 걸 보았다。인간 중에서도 악독한 서생이란 인간은 우리들을 잡아서 삶아 먹는다는 얘기가 있다。(중략)

나는 인간과 같이 살면서 그들을 관찰하면 할수록 그들이 제멋대로 구는 자들이라고 단언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근대소설의 아버지라는 나쓰메 소세키의 첫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앞부분



인간의 위선을 해학적 풍자로 담아냈다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다 보니 떠오른다。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대목이다。노자를 찾아온 공자에게 노자가 해 준 말이라는데、

“내가 듣건데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깊숙이 숨겨 두어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군자는 그 아름다운 덕을 지니고 있지만 모양새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고 나는 들었어。그대는 교만과 지나친 욕망、그리고 위선적인 표정과 끝없는 야심을 버려야 하오。”

이 말을 듣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자로 바뀌었는지는 모르나 그때 노자의 눈엔 공자가 야욕에 찬 위선자로 보였나 보다。최고의 군자로 추앙되는 공자도 우리와 별 다를 바 없는 인간이었음을 이 짧은 글로 알 수 있다。

나쓰메 소세키는 아사히신문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인물 1위로 손꼽히고 있다。20년간 1,000원짜리 일본지폐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인데 어느 날 지폐의 사진이 바뀌었다。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독일 소설가 호프만이 쓴 <숫고양이 무르의 인생관>과 표현 기법이나 구성이 거의 같다고 알려지면서 였다。표절했다는 것이다。1800년대 말、독일로 유학 가 있던 이케다 키쿠나에(과학자、후에 최초로 인공조미료를 발명했다。)가 소세키에게 선물한 책이 바로 <숫고양이 무르의 인생관>이었다。일본에 대해 아주 잘 아는 소설가 박경리는 한마디로 소세키를 일축한다。

'표절작가일 뿐!'

매우 중요한 문제지만 나는 여기서 표절 따위를 말하고 싶진 않다。이 글이 문학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 이 글을 쓰는 내 뜻하는 바와 다르기도 하기 때문이다。<나는 고양이로소이다>으로 나는 중국의 역사서 <사기>를 연상했고 또 고려말、조선 초기의 학자인 익제 이제현 짧은 글、'이미 눈과 귀를 갖추었고 또한 발톱과 어금니도 있거늘、천장을 뚫고 벽을 넘나들며 온갖 짓을 해대는 쥐들이 방자하게 구는 데도 어째서 너、고양이는 잠만 자고 움직이지 않는가。(묘잠)도 연상했다。그리고 일제식민지 나라였던 한국의 한 시인의 시도 연상했다。

소세키의 고양이는 고양이의 눈으로 본 위선적이고 악질적인 인간이라면、이제현의 고양이는 아무 일도 못 하는 무능하고 무기력한 임금을 빗대어 비판한다。소세키가 풍자한 위선이 인간을 대상으로 삼았다면、노자는 공자라는 한 유학자의、그리고 군자라고 일컬어지는 자들에게 위선을 벗으라고 일침했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나라를 잃은 시인은 식민지시대의 비애비감을 시로 대신했을 터지만、100년이 지난 지금、한국이나 일본의 젊은이들이 꿈을 잃어가고 현실편의에 안주하거나 개탄스러운 현실을 외면하는 이지음에 있어 두 나라 젊은이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 한 편의 소설 같은、시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이유는、뭐니 뭐니 해도 그래도 우리가 왕이라는 것、그 왕은 권력이나 재력의 그것이 아닌 존엄한 존재의 인간을 의미하기에 이 시를 읊조리며 비록 지금은 울고 있더라도、울 일밖에 없더라도 왕의 땅 주인은 나、바로 나라고。。 。

어떻게 태어난 우리인가。

세상이 세계가 탐욕자들로 인해 쓰레기통이 되어 간다 해도 나는 나를 지키며 살아야 하는、우리 각자에겐 태어난 의미가 있다。

나를 중심에 두면 주변에 흔들리지 않는다。

내 중심은 결코 이기주의가 아니다。

흔들리지 않는 나에겐 사욕탐욕 따위는 그저 하찮을 뿐이다。

이런 나를 가슴에 품고 체념포기하지 말라는 뜻에서 이 긴 시를 그대로 옮겨 본다。


<왕이로소이다>

---홍사용

어머님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가장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 그러나 시왕전에서도 쫓겨난 눈물의 왕이로소이다。

맨 처음으로 내가 너에게 준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면은、

맨 처음으로 어머니께서 받은 것은 사랑이었지요마는。。。

그것은 눈물이더이다、하겠나이다。

다른 것도 많치요마는。。。

맨 처음으로 네가 나에게 한 말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면은、

맨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드린 말씀은 “젖 주셔요。” 그 소리였지요마는。。。

그것은 “으아~~~” 하는 울음이었다 하겠나이다。

다른 말씀도 많지요마는。。。

이것은 노상 왕에게 들려주신 어머니의 말씀인데요。

왕이 처음으로이 세상에 올 때에는

어머니의 흘리신 피를 몸에다 휘감고 왔더랍니다。

그날에 동네의 늙은이와 젊은이들은 모두 '무엇이냐'고 쓸데없는 물음질로 바쁘게 오고 갈 때도 어머니께서는 기꺼움보다도 아무 대답도 없이 속 아픈 눈물만 흘리셨답니다。

벌거숭이 어린 왕 나도 어머니의 눈물을 따라서 발버둥치며 “으앙” 소리쳐 울더랍니다。

그날 밤도 이렇게 달 있는 밤인데요。

으스름달이 무리 서고 뒷동산에 부엉이 울음 울던 밤인데요。

어머님께서는 구슬픈 옛 이야기를 하시다가요、

일 없이 한숨을 길게 쉬시며 웃으시는 듯한 얼굴을 얼른 숙이시더이다。

왕은 노상 버릇인 눈물이 나와서 그만 끝까지 섧게 울어 버렸소이다。

울음의 뜻은 도무지 모르면서도요。

어머님께서 좋으실 때는 왕만 혼자 울었소이다。

어머니의 지우시는 눈물이 젖 먹는 왕의 뺨에 떨어질 때면 왕도 따라서 시름 없이 울었습니다。

열한 살 먹던 해 정월 열나흘 날 밤、

맨재너미로 그림자를 보러 갔을 때인데요、

명이나 긴가 짧은가 보라고

왕의 동무 장난꾼 아이들이 심술스럽게 놀리더이다。

모가지가 없는 그림자라고요。

왕은 소리쳐 울었소이다。

어머니께서 들으시도록 죽을까 겁이 나서요。

나무꾼의 산타령을 따라가다가

건너 산비탈로 지나가는 상두꾼의 구슬픈 노래를 처음 들었소이다。

그 길로 옹달우물로 가자면 지름길로 들어서 찔레나무 가시덤불에서 처량히 우는 한 마리 파랑새를 보았소이다。

철없는 어린 왕 나는 동무라 하고 쫓아가다가 돌부리에 걸리어 넘어져서 무릎을 비비며 울었소이다。

할머니 산소 앞에 꽃 심으러 가던 한식날 아침에 어머니께서는 왕에게 하얀 옷을 입히시더이다。

그리고 귀밑머리를 단단히 땋아주시며

'오늘부터는 아무쪼록 울지 말아라。'

아아、

그 때부터 눈물의 왕은 어머님 몰래 난 모르게 속 깊이 소리 없이 혼자 우는 그것이 버릇이 되었소이다。

누유런 떡갈나무 우거진 산길로 허물어진 봉화뚝 앞으로 쫓긴 이의 노래를 부르며 어슬렁거릴 때에 바위 밑에 돌부처는 모른 체하며 감죽년하고 앉았더이다。

아아、

뒷동산 장군바위에서 날마다 지고 가는 뜬구름은 얼마나 많이 왕의 눈물을 싣고 갔는지요。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그러나 눈물의 왕!

이 세상 어느 곳에서든지 설움이 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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