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네(본심)

by 차쌤

13。혼네(본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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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서양인은 이렇게 말한다。

“일본 관료들의 편향되고 차별적이며 경직되고 인종차별적이고 권위적인 방식의 피해자는 외국인만이 아니다。외국인은 자주 그들이 상대하기 좋은 표적이 될지는 몰라도 실제 피해자는 일본인들 자신이다。”

--교토에서 35년간 살았던 영국인 알렉스 커의 <치명적인 일본(원제는 Dogs and Demons)> 중에서




시모이치로 떠나는 날、돗토리역에서 Y가 내게 도시락을 건낸다。1시간 넘게 기차 타고 가야 하니 가면서 먹으라는 작은 정성을 담은 선물이다。역마다 있는 도시락 가게、에키벤에서 사 온 벤또(도시락)다。그녀는 벤또란 말 대신 도시락이라며 내게 내밀었다。외국인인 내게 보인 배려이리라。어렸을 때 엄마가 자주 쓰던 말로、도시락이란 말보다 벤또로 먼저 알고 있었던 단어라 더 친숙해 불쑥 입밖으로 내뱉곤 하던 벤또를 일본인이 도시락으로 불러주니 낯 뜨거웠다。

“예、벤또 잘 먹겠습니다。”

차창 밖으로 동해가 보인다。일본은 일본해라고 부르는 같은 바다를 쳐다보며 도시락을 펼쳤다。무릎 위에 얹은 작은 밥상을 보며 모든 것을 작게 만들어 쓰는 일본인다운 면을 본다。

왜 벤또일까?

스마트폰의 사전으로 확인해 보니、사각통(면통)이 변한 것이라고 하고 편리한 것(변당)의 뜻에서 유래됐다고 한다。한자어 면통이나 변당、둘 다 발음은 같다。근데 쓰고 있는 벤또는 다른 한자다。일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국인 교수의 책 <롯본기 김 교수/그린하우스에서 냄>에서 읽은 기억이 되살아났다。

'편리한 것'이란 뜻의 중국어 '삐엔땅(변당)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며 벤또가 처음 등장한 때는 전쟁이 잦은 16세기라고 했다。오다 노부나가가 군인들에게 전쟁터에서도 간편하게 먹을 수 있게 고안해냈다는 이야기도 있다。주먹밥도 그럴 것이다。임진왜란이나 정유재란 때 도시락이나 주먹밥이 들어왔을진 모르지만 한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밥은 제대로 앉아서 먹어야 한다고 해서 일까。그릇을 손에 들고 젓가락으로 먹는 일본과 상 위에 올려진 음식들을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떠서 또는 집어 먹는 한국 음식문화와는 사뭇 달랐다。이러니 침략을 당한 조선이지만 받아들여질 수 없었을 것이다。

롯본기 김 교수는 진단하고 있다。벤또천국인 일본의 벤또에는 국민을 하나로 묶는 소위 '1억 총 활약사회'의 구호에 딱 맞는 쓰메루 문화가 함축돼 있다는 것이다。쓰메루란 '꽉 조여서 채우다'란 뜻의 일본어로 일본인이 자주 쓰는 말이다。인구 1억이 넘는 일본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한、전체의 틀 속에 개인을 우겨 넣는 전체주의적 발상이 먹는 것에도 나타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유년시절 때부터 35년 일본 교토에서 살았던 영국인 알렉스 커의 <치명적인 일본>과 유사한 글이 있다。

일본인은 자기 나라를 설명할 때 '협소하고 구겨지고 그래서 분비는' 이런 뜻을 함축한 '세마이'라는 단어를 쓴다고 한다。인구에 비해 일본 땅이 좁아서 그럴 것이다。그러나 '세마이' 는 지리적 특성만이 아니라 일본인 마음속에도 있다고 한다。일본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던 1980년대에 일본 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민 열풍이 일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세마이'로부터의 탈출 현상이었다는 것。일본은 30년 가까이 불경기가 계속되었다。독일에 사는 한 일본인 부부를 인터뷰했다。일본으로 돌아가야 할 부부였다。

“일본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우울해져요。”

영국인의 책에서 옮긴 것이다。그럼 한국인은 어떨까。최근에 일본에서 40년 살아 온 교포를 시모이치에서 만났다。고향인 경남 양산과 현재 살고 있는 시모이치를 연결해 상호 교류할 수 있게 했다는 데 자부심을 가진 그녀는 1년에 한 번은 고향을 방문한다。나이가 일흔이 된 그녀에게 한국으로 돌아가서 살 생각은 없냐고 물었다。

“한국 가서 살 생각은 없다。일본이 이제 익숙해서 더 좋다。”

부모도 없고 친구도 없다。처음 일본에서 많은 무시를 당해야 했고 그래서 싸움도 잦았다는 그녀가 덧붙인다。

“지금 사는 걸 보면 일본인보다 한국이 더 잘 사는 것 같다。근데 40년 전 떠날 때는 먹고 살기 힘들어서 도망치듯 잘 사는 일본에 왔었는데 40년이 지난 지금 한국 경제가 일본보다 낫다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이 없는 것、이건 그대로더라고요。잘 살게 됐으면 그런 것도 변할 것 같았는데。。。”

배운 게 없다는 그녀의 입에서 인간의 존엄이란 말을 듣는다。

“정치에만 관심을 끊고 살면 여기 일본이。。。”

말을 흐린다。그녀가 한국인을 비판한 자긍심 없는 민족을 그녀의 이 말에서도 확인한다。정치에 관심을 끊고? ‘역사를 외면하고’ 와 다를 바 없는 말이다。그럼 그녀가 인간의 존엄? '나 혼자 편하면 된다' 이것이 인간의 존엄인 것인가。어쨌든 일본으로 순화가 다 됐구나、내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말을 잇는다。

“한국인끼리니 하는 말인데요。일본인들이 말은 못 하지만 그 후쿠시마 있잖아요。무지 걱정하고 있거든요。우리 식당에 찾아온 일본인들이 꼭 묻습니다。이 동네 쌀 쓰는 거지요? 라고요。일본 신문이랑 방송에서 전혀 보도하진 않고 오히려 아무 문제 없다고 말하지만 일본인들은 다 알고 있는 거죠。”

이러면서 내게 묻는다。

“그런데 어떻게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를 찬성할 수 있는 거지요? 일본에 한국인들이 가장 여행을 많이 온다고 한다던데 식당에서 스시 등 일본인들도 믿지 못할 안 먹는 것을 한국인들은?”

이 말을 듣다가 돗토리역 에키벤에서 내게 벤또를 사 준 그녀가 떠올랐다。그녀도 알고 있을까? 설마 알고도。그녀의 친절과 배려에 나의 '설마'는 '그럴 리 없어' 편향이 될지 모르겠지만 확장한다。서양인들도 다 이렇게 속은 것일까。

미국에서 40년을 넘게 살고 있는 교포에게도 물어본 적이 있다。한국으로 돌아와 살 생각은 없냐고。

“그걸 알아보고 있어。다시 한국 국적을 취득하려고 해。”

이중국적 취득이 가능하단다。

“미국인이며 한국인으로 동시에 사는 거지。돈만 있으면 한국만큼 좋은 나라는 없어。”

이러며 덧붙이는 말、

“미국에서 왔다면 꺼뻑 죽더라。”

“누가?”

“누구긴? 앞에 있잖아!”

에도시대에 익살스러운 글을 남긴 사쿠텐의 <성수소>의 한 대목을 떠올렸다。

교토 거리를 돌아다니며、

“정력에 독이 되는 약을 삽니다。정력에 독이 되는 약을 파세요。”

외치는 남자가 있었다。그는 삐쩍 마르고 핏기 없는 얼굴색을 하고 있어 환자같이 보였다。교토의 한 상인이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남들은 다 정력에 좋다는 약만 찾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여 정력을 해칠 약을 구하는가? 꼭 큰 병을 앓고 있는 듯해 보이는데 혹시 정력을 해칠만큼?”

“네、맞습니다。당신이 보는 그대로입니다。실은 내가 아니라 아내가 너무 정력이 세서。。。”

상인이 바로 알아 듣고 되물었다。

“그럼 자네가 먹을 약이 아니고 아내에게 먹이려는 것인가?”


내가 재미교포 그녀를 어떻게 대했기에、그리고 한국 남자들이 그녀를 어떻게 대했기에。。。 미국물 먹은 여자에게 꺼뻑 죽는 한국 남자、지금 나도 하나?

불쑥 성호 이익이 <거울>에 쓴 글이 내 눈 앞에 비친다。

'거울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더러운 얼굴까지도 다 보여 주듯이、무언 중에 도와주고 마음에 헤아리는 바 없이 내 마음을 다 보여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차피 알게 될 것이니 '솔직해지라'는 뜻으로 헤아리는 대신 상처 받지 말고 주지도 헤아리지도 말지어다、라고 반어적 또는 조소 하듯 들리는 건 왜일까。본인이 먹을 약이 아니고 아내에게 먹이려고 정력에 독이 되는 약을 구하러 돌아다녔다는 어른들의 우화에 나오는 일본 남자를 곱씹어 본다。

일본고전을 읽으며 일본 정치인이나 일본인들의 언행을 더 씌우게 된다。

'그냥 나온 글이 아니다。'

'그저 읽을 글이 아니다。'

일본인의 진심은 혼네와 다르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혼네(본음)는 본심(속마음)을 의미한다。어찌 일본인뿐인가。한국인도 그 못지 않은 듯한데、겉과 속이 다름은 인간의 본성일 수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이 말은 한국말이나 일본말이나 발음이 거의 같다。일본인들에게서도 대화 중에 많이 듣는 이 말은 믿을 수 없고 믿지 않기에 '나는 아냐。 날 믿어 줘' 라며 '솔직히'를 강조하는 것인가。말로 가리고 가면으로 가리고、성형은 단지 얼굴、몸매만이 아니다。

일본의 벤또 하나 갖고 그저 든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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