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다란 하늘 멀리 저녁 노을 펼쳐 있고
건너 산봉우리에는 안개 자욱 걸려 있네
금란 보며 사랑 심고 풍월 없는 연회에 피곤한 줄 모르네
계수나무로 덮인 산을 여유롭게 내려보니 국화 가득한 연못 위로 물안개 선명하네
푸른 바다로 갈랐다고 말하지 말게
길이길이 장대한 마음 나눠 보세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한시집 <회풍조> 중에서
위 한시는 나라시대 말기에 편찬한、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한시집인 <회풍조>에 들어 있다。이 시는 신라에서 온 손님을 맞이하며 함께 나누는 정을 노래한 것으로、푸른 바다(동해)로 나뉘어 있어도 사모의 정은 오래도록 이어가자 함을 담고 있다。
700년대의 나라시대이니 지금으로부터 약 1,300년 전쯤으로、일본은 백제인들이 천황 등 권력을 잡고 있던 때였다。일본과 한국이 사이좋게 왕래했음을、그리고 그 정을 오래오래 나누자며 우호적인 미래에 대해서도 기약하고 있다。참으로 아름다운 이웃나라임을 엿볼 수 있다。1,300년 전엔 그랬다。아니다。1,3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린 아름다운 이웃이다。그릇된 국익으로 수차례 침략을 일삼은 일본 권력자들이 우리 사이에 끼어들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돗토리시 북쪽 가로라는 어촌의 게스트하우스에서 5박을 예약하고 그 뒤 일주일을 더 머물렀다。조용한 바닷가 마을이 마음에 들기도 했고、일본인들의 친절과 우호에 빠져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루는 주인이 큰 마트로 간다며 내게 같이 갈 거냐고 묻는다。그렇게 따라간 대형 할인마트。주인은 꽃을 고르고 있었다。게스트하우스에서 꽃을 본 적이 없어 왜? 하고 물으니 어머니 생신이란다。오늘 밤 게스트하우스를 지켜줄 수 있느냐고 내게 부탁을 한다。나는 어머니가 좋아한다는 초콜릿과 화과자를 샀고 생일을 기념한다며 선물했다。다음 날 일찍 돌아온 주인이 어머니가 내게 주는 선물이라며 내놓는데 옛날 과자들이다。고구마나 소라 과자 같은 것으로 한국처럼 옛 추억의 과자들이다。옛날 과자만이 아니다。다음 날 점심을 같이 하잔다。어머니가 외국에서 온 나에게 식사 대접 하겠다는 것。일본인들은 공짜로 받는 일이 없다는 것을 책으로 읽어 알고 있었지만 이런 대접을 받아보기는 처음이다。
이튿날、주인의 여동생이 엄마와 친구를 모시고 게스트하우스로 왔다。나의 작은 선물이라며 친구까지 온 가족이 함께 나를 반겼다。차로 1시간 반 넘게 찾아간 곳은 지은 지 100년도 훨씬 넘은 일본 전통가옥의 식당이었다。
주택가 한가운데 있어 현지인 외에는 찾아가기도 힘든 곳이다。정말 특별한 곳이 아닐 수 없었다。음식도 일본 가정식 만찬으로、외국인인 나를 배려한 것이 틀림없다。일본 식당에서는 먹기 힘든 음식들을 먹어 볼 수 있게 해 준 세심한 정성에 감동했다。
어머니는 72세로 지금도 피아노를 가르친다고 했다。
“다시 꼭 와서 대학 때 한 달 배우다가 만 피아노를 석 달 배우고 가겠습니다。”
나는 진심을 담아 약속했다。어머니는 언제라도 좋다며 반겼다。100년 전에 지은 가옥은 100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게도 했다。
“그 때 일본과 한국은 입장이 완전 달랐지요?”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이나 여동생、여동생의 친구는 모두 40대다。1945년 원자폭탄이 투하된 사실은 알아도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했다。당연히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침략자는 침략이라고 하지 않는다。미개한 나라를 개화시켜 줬다며 오히려 한국발전에 기여했다고 주장하는 일본인과 이에 동조하며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해대는 한국의 기득권 정치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일본인들 앞에서 그러한 한국 정치인들의 언행을 곱씹어 보려니 창피하다。수치스럽다。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과거는 잘못됐다는 말을 꺼낼 수 없이 부끄러웠다。눈치를 챈 것인지 아님、
“요즘 애들은 역사를 배우지 않아요。”
요즘 애들? 일본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일본인에게 일본 역사 특히 근대사를 가르치지 않는다고 하는 70대 일본 어머니는 덧붙인다。
“알아서 좋을 건 없으니까요。”
대화를 더 이어가지 못하고 어색한 침묵이 좀 지났고 식당에서 나와 차를 마시기 위해 도로 휴게소에 들렀다。나는 세 명의 여자에게 입고 있는 옷 색깔에 맞춰 같은 색의 꽃을 골라 각각 선물했다。극진한 식사 대접을 받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12일 째 떠나야 했다。약속을 재확인했다。
“석 달 어머니한테 피아노를 배워야 하는데 언제가 좋겠느냐? 다시 꼭 와서 어머니께 피아노를 배울 것이다”
반가워할 줄 알았는데 주인의 표정이 금세 굳어졌다。멈칫하다가 하는 말、
1년 동안 멕시코에 가 있을 예정이라며 고개를 젓는다。그럼 1년 후에 오면 되겠네요 라고、 답하자 또 머뭇거린다。12일 동안 본 그녀의 모습과는 다른 행동이었다。눈치 없는 나는 약속을 잘 지킨다는 일본인에게 결례하고 싶지 않아 내가 한 약속에 집착했다。하지만 또 돌아온 대답은、
“그 때도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있을지 모른다。”
100년 전 전통가옥에서의 대화가 우리 사이를 어색하게 만든 것 같았다。100년 전의 역사일 뿐인데 왜? 이건 나만의 생각에 불과했을 뿐이다。선물을 주고 받고 그렇게 반기고 반가워했던 일들이 무색해지고 말았다。일본인들의 배려에는 상대를 거슬리지 않게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그러자니 본심(혼네)을 드러내지 않고 감출 수도 있다。내가 이런 일본인들에게 배려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불편하지 않게 고작 피해주는 일이다。다른 일본인들에게서 이런 경험을 꼭 하게 된다。친절하고 예의 바르지만 가까워지기 힘든 일본인들。
한국인과 일본인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일본 여성들이 직장에서든 성추행을 당하고도 “내가 잘못했어요。” 라고 말하는 것을 많이 들어왔고 이를 지적하는 글이나 뉴스 기사들을 보아 왔던 나는 이 친절한 일본인들에게만은 내 착각에 의한 오해였으면 싶었다。한편 나의 이런 반응은 피해의식일수도 있는 것인가、자문하려니 속이 참으로 씁쓸하다。왜 한국인과 일본인이 이래야 하는가。이리 가까운 이웃끼리、어느 나라보다도 역사적 교류가 많고 전 일본 천황은 어머니가 백제계라며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대답을 피하는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에게 '다시 꼭 와서 어머니한테 피아노를 배우겠다。' 는 솔직한 말 대신、
“인연이 되면。。。”
이런 애매한 말로 게스트하우스 문을 나서야 했다。100년 전 역사 얘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이런 인사에 일본인 주인은、
'예。꼭 다시 만나요。'
했을 것이 분명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