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
세상은 평화로구나 차담하며 한담을 나누고자 화려한 에도를 뒤로하고 길을 떠난 사람이 둘 있었는데 야지로베라는 중년 남자와 그 집에 얹혀 사는 기타하치라는 젊은이였다。출발점인 일본교에서 시나가와와 가나가와를 한 바퀴 돌며 명소와 옛 유적지를 찾아 그 지역의 특산품을 맛보기도 했다。흥이 오르면 시를 읊기도 하는 근사한 여행이었다。그들이 펼치는 악의 없는 짓궂은 장난과 무지에서 비롯된 어리석은 행동、부끄러움을 모르는 색정 등이 담긴 글을 읽는이의 배꼽을 쥐게 했다。
---에도시대 후기 삽화를 곁들여 출간된 <도카이도추히자쿠리케> 중에서
<절대지식 일본고전>(마쓰무라 아키라 외 지음/윤철규 옮김/이다 미디어 발행)에서 이 이채로운 기행문을 맛보기로 읽었다。19세기 초에 나왔다는데 삽화를 담은 책이라니 솔깃하다。그 때 우리나라엔 이런 책이 있었나?
주인공을 무지하고 경박한 에도토박이로 설정했고 이들이 만난 시골 사람의 이상한 언어 풍습으로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고 소개한다。그 당시 조선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며 한국의 김삿갓(김병연)이 생각난다。거의 다 양반들의 글만 있었고 구전으로 이어진 소설들은 글쓴이를 알 수가 없다。무명씨로 배운 한국의 소설이나 시들。
한국과 일본、두 나라 민족이 권력자에 의해 속박、구속되긴 마찬가지지만 오로지 양반 위주의 조선과 서민들도 자주 등장하는 일본의 고전과 비교된다。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오로지 양반 뿐이었던 조선、앞서 썼듯이 정유재란(1597년) 전쟁 노예로 일본에 끌려갔던 조선의 도자공들의 이름은 지금도 일본에 현존하고 또 역사서에도 기록、이들을 우대하고 있다。전쟁의 노예였던 조선인이었다。도저히 조선 그리고 지금 한국인의 머리론 이야기 힘들다。
일본 전국을 20번 넘게 여행했던 나는 의외의 문화 차이를 많이 봤지만 그 중 하나를 여기에 소개할까 한다。
일본 큐슈의 후쿠오카 나카스는 서일본 최대의 환락가로 유명하다。나카스의 밤거리에선 기모노 입은 여인들만이 아니라 한복 입은 여인도 볼 수 있다。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이들이다。이런 환락가에 눈에 띈 건 버스킹을 하고 있는 젊은이들이다。20대의 남녀였고 따로 각자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기타 치며 노래 부르던 청년 옆에 60대 후반의 노인이 붙어 앉더니 노래를 신청하고 따라 불렀다。노래를 끝내고 그에게 팁을 주고 떠나는 이런 노인은 이 환락가에선 흔히 볼 수 있다。여자를 끼고 먹었는지 모르지만 술을 마시고 나와서 거리에 쭈그려앉아 노래 부르는 젊은이와 함께。。。 한국에서 상상으로라도 할 수 있을까? 만일 이런 술집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면 당장 동네 깡패들로 쫓겨나지 않을까。다른 골목엔 20대 후반에 여성이 반주 없이 생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데、적어도 성악과는 나왔을、또는 그 학생일 듯 잘 다듬어진 클래식한 음성이었다。그러니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환락가의 손님은 다 남자들인데도 2시간을 지켜보는 동안 그녀에게 팁을 주고 가는 남자는 한 명도 없었다。물어보니 매일 밤 나와서 부른단다。무대에 올라가면 너무 떨어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여기 나와 부르는 이유다。하필 왜 이런 곳? 또 물으니 그녀가 하는 말、
“여기가 무대 같지 않나요? 조명에 거리엔 관객도 있고。。。”
17세기 교토 길에서 매일 거리강의를 했다는 이시다 바이간이 생각났고 그의 '놀면 뭐 해!' 라는 근면철학을 심신수양에 보태 생활철학으로까지 끌어올리며 지금의 일본 국민성으로 발전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는 사실에 거리에서 성악 연습한다는 그녀가 참 일본인답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갇혀 숨어 지내는 오타쿠를 환락가거리에서 봤다고 할까。
일본 문화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오타쿠를 정신적으로는 질환으로 보기도 하지만 하나에 몰입하는 것으로、서양에서 말하는 딜레탕트、즉 전문가 수준을 뛰어넘는 애호가 그 이상이 오타쿠가 아닌가 사료된다。이 오타쿠의 힘이 여러 분야에서 지금의 일본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건 해외 사회문화전문가들도 인정하고 있다。한국에도 오타쿠의 변형으로 덕후(더쿠)라고 해서 신조어처럼 쓰고 있는 듯하다。
몇 년 전 일본 전 총리 아베가 거리 유세 중 시민이 쏜 총에 쓰러져 결국 죽었다。그 총은 개인이 고안해서 만든 사제총이었다。일본 도쿄의 유명한 전자상가를 오타쿠의 성지라고 말한다。30여 년 전 그 곳을 방문했을 때 거리에 별의별 것들을 펼쳐 내놓고 팔거나 소개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다 새롭고 신기했다。제품만 오타쿠가 유행하는 게 아니다。만화는 물론 예술 분야에서도 오타쿠의 활약은 대단하다。애니메이션과 문학 그리고 영화에서도 그렇다。
정유재란 때 끌려간 조선 도공들 역시 도자기의 전문가나 더욱이 예술가는 아니었다。일본으로 퇴각하며 길 앞잡이로 조선인들을 앞세웠고 그들 중 상당수가 전북 남원의 만복사에서 도공으로 일하던 단순한 일꾼들이었다。당시 만복사에는 굉장히 큰 도예소가 있었다。그 일꾼들에게 조선에 비해 후진국이었던 일본은 무엇을 할 수 있냐고 물었고 할 수 있는 일을 시켰고 그 일을 잘해낸 분들이 바로 일본 도자기의 시조 등으로 추앙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선 어느 하나에 미쳐있는 이런 오타쿠를 사회성 떨어지는 인간으로 무시하고 멸시하고 있지만 일본에선 그들의 능력과 가치를 인정하며 그 쓰임을 더 크게 했다。가치를 아는 것、가치평가에 있어 오로지 그것만으로 판단하는 객관성에는、'너、나이가 몇 살인데?' '너、어디 나왔어?' 한국에서 흔히 듣는 말을 전혀 엿볼 수가 없다。
한국인 개개인은 매우 뛰어나지만 잘못된 유교에서 유래됐을 이런 집단 소속의식이야말로 한국의 발전을 발목 잡는 가장 큰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현실에 드러나는 게 바로 정치이다。정치인의 학력이나 출신이 중요시되는 나라이다 보니 학력위조자들도 늘어나고 있다。조작해서라도 출세해야 하고 날조해서라도 범인으로 몰아야 하고。。。 한국에 만연한 뿌리 깊은 병폐로、모든 적폐의 원인은 다 이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일본을 이지메의 국가라고 말하지만 한국은 다른가? 기자였던 내가 보기엔 한국이 더 심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