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나그네
꿈은 겨울 들녘을
헤매는구나
---17세기 일본 전국을 떠돌던 방랑 시인、마쓰오 바쇼의 마지막 하이쿠
일본에 관심이 늘면 늘수록 모르던 한국을 더 알게 된다。일본의 고전에 감탄하면 할수록 잊고 살아온 한국의 고전을 다시 들춰보며 더 감응한다。이 반대의 경우도 생기고 있다。한국과 일본을 더 이해하고 좀 더 알아가는 것은 '우리 것이 더 낫다'라는 배타를 줄여가는 것이기도 하다。서로 좋은 점을 보게 되는데、바로 사랑이다。중국도 같다。
오랜 같은 문화권의 세 나라는 공통점이 더 많다。그런 중에도 다른 것은 오히려 서로 배울 점이다。같은 뿌리에서 출발해 각자 발전시킨 문화와 문명을 국경을 허물고 서로 나눈다면? 이런 소망을 더욱 갖게 된다。지금 세 나라의 국민들은 이런 나눔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다。문화 분야에서다。하지만 자발적 교류를 방해하는 집단은 자국민을 강압적으로 구속해서 순전히 자신들만의 정치탐욕으로 나라를 이끌고자 하는 정치다。
일본에선 17세기、한국에선 18세기、약 100년 사이로 방랑 시인이 있었다。
마쓰오 바쇼는 모시던 영주가 죽자 고향을 떠나 제자와 함께 일본 전국을 떠돌았다。
김병연은 할아버지를 비판하는 시로 지방 과거시험에 장원급제 했지만 이를 뒤늦게 알고 하늘 보기가 부끄럽다며 삿갓을 쓰고 집을 나서 혼자 평생 전국을 떠돌았다。
이 두 사람은 시를 썼다。한 곳에 정착지 않고 떠돌았으니 그 시들도 다 흩어져서 사라질 수도 있었다。그러나 20세기가 되자 제국주의 일본은 국가가 나서서 마쓰오 바쇼의 시들을 세계에 알려 홍보했고 서양인들은 그의 짧은 시를 좋아하게 됐다。그 시가 세계에서 가장 짧다는 하이쿠이다。역시 20세기에 일본의 식민지가 된 한국에서 국가가 아닌 몇몇 지식인들에 의해 구전으로 흩어져 내려온 김병연(김삿갓)의 시를 한데 모아 일제강점기 암울한 한국 국민들의 마음을 달랬다。
바쇼나 김삿갓이나 세속의 명예와 이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그러다 보니 자연을 노래한 시가 많았다。바쇼가 여행길에서 마주친 자연에 대한 소회를 자연시로 썼다면、김병연은 세태와 자신의 처지를 자연에 빗대어 풍자하는 해학 시를 많이 썼다。
고향으로 돌아온 바쇼는 그의 나이 50세에 병으로 죽으며 시를 남겼다。그의 마지막 시다。
병든 나그네
꿈은 겨울 들녘을
헤매는구나
575조의 하이쿠다。하이쿠가 일본의 전통시로 세계는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일본에 한자를 전한 백제 왕인의 시、<난파진가>는 57577조이며、백제 시대의 <정읍사>는 757조이다。여기서 볼 수 있듯이 이미 1,500년 전의 한국인의 시에서 이미 엿볼 수 있다。
촌스럽고 유치하게 원조 따위를 따지고자 하는 함은 절대 없다。
하이쿠의 575조를 흉내내어 나도 하이쿠를 지어 봤다。일본 초등학생들이 떼지어 다니는 하굣길이 이채롭게 보였다。21세기에도 아직? 제국주의 잔재인가? 안전을 중요시하는 일본인들의 국민성인가?
하굣길 학생
안전을 위함인가
모여서 걷네
그림을 그려 그 위에 하이쿠를 올려 보았다。일본시인 하이쿠를 흉내내며 든 생각、
'일본인들은 복잡한 것을 간결하게 바꾸어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데 시에서도 그렇구나!'
복잡하고 규칙 또한 엄한 시에서 벗어나 짧고도 간결하게 시심을 함축했다。또 왕족이나 귀족들이 쓰던 한자 중심의 가타카나를 백성들도 쓰기 쉽게 바꾼 히라가나가 나오자 권력과는 거리가 먼 여성들이 이 문자로 사랑에 대해、자식에 대해 주변의 일상을 쓴 수필들이 많이 전해져 오고 있다。이미 천 년 전이다。
한국고전에 여성의 글은? 묻게 된다。고작 3~400년 전 조선 때이고 주로 시만 전해져 올 뿐 수필은 거의 없다。백제의 시를 일본인이 변형해 지어 쓴 하이쿠로 한국인인 내가 흉내내 지어 봤듯이。。。 이런 자연스러운 교류에 뿌리가 어디이고 누가 원조인가를 따져 묻는다는 것은 참으로 유치할 뿐이다。요즘 K-Pop이나 한류드라마가 유명하지만 이미 30년 전에는 J-Pop과 일본 영화、만화에 세계가 심취했었다。이런 것이다。이런 것으로 우쭐해한다면 참으로 졸렬해 보이기까지 하다。
바쇼나 김병연은 만난 적도 없고 만날 일도 없었다。그러나 그들은 시로써 나누고 그 매개에 자연이 있었고 여행이 있었다。
김병연은 고향 충청땅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떠돌다 끝내 전라도땅에서 숨을 거뒀다。그의 마지막 시다。
팔도강산을 떠돌며 빌어먹던 소리는
천집문간엔 넘쳐나도 풍월을 즐긴
행장에는 빈 주머니만 가볍구나。
문득 4~500년 전 중국 명나라 말기의 여행자、서하객이 떠오른다。33년간 중국을 여행했다는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나의 이야기로 생각하라
나의 이야기로 행동하라
나의 이야기를 써라
오래전 중국인의이 짧은 체험담은 500년이 지난 지금 중국이 아닌 한국의 한 사내가 여행을 할 때나 글을 쓸 때、그리고 꿈을 꿀 때도 명심하는 글귀이며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