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이 전면에서 그리고 민원을 담당하는 팀이 지원되길
공모 교장선생님이 계신 우리 학교는 학부모 민원이 있으면 당신이 해결하겠다면서 전화를 받거나 만났다. 그리고 교감선생님과 업무지원팀과 함께 민원 응대를 몇 년간 해주셨다.
아파트에서 학교까지 터널을 뚫어달라는 등 여러 황당한 민원에서부터 학폭 관련 민원까지 감당해 주셔서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교육과정과 교실에 집중할 수 있었다.
교장선생님은 학부모들은 화나고 속상해서 그러니 몇 시간이고 이야기 들어주면 풀린다면서 속상한 민원이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하라고 자주 이야기 했다. 선생님 마음이 학생들에게 전달되니 다독여주면서 회복을 도와주셨다. 그 외에도 혹시 마음 힘든 교사가 있거든 교실에 찾아와 이야기 들어주고 위로해 주셨다.
교장 선생님이 방패가 되어 주시고, 민원을 온몸으로 막아주셔서 우리 교사들이 덜 아프고 덜 힘들었었다. 그리고 교육과정을 계획하거나 어려움이 생길 때면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어 사람을 연결시켜 주고 프로그램 지원을 해주셨다. 덕분에 학생들을 가르칠 맛이 났고 교육과정에 여러 행복한 순간들이 탄생될 수 있었다.
교육과정 결과물을 공유하던 자리에서 교장선생님은 결과물을 보면서 울컥해 눈물 흘려주시고 함께 기뻐했다. 때론 일상 속에서 교사들이 행복해하는 순간을 보며 또 울컥해했었다. 나는 그런 모습을 지켜보거나 사진으로 찍으며 당신이 기여한 것이고 덕분이다.. 란 생각을 하곤 했었다.
최근 교장선생님이 민원과 소통을 담당해 주셨으면 하는 여러 선생님들의 제안을 먼저 경험해 본 입장에서.. 감사했고 실제로 덕을 봤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교장 선생님이란 위치가 민원을 해결하는데 더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를 곧 떠나가는 교장선생님과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황당한 민원에 가슴이 벌렁거리고 고통스러워 일상을 살아가기 힘들었던 일들을 듣게 됐다. 그러다 교장 선생님이 아플 정도로 힘들어했던 과거 순간들도 몇 개 떠올랐다. 감사함의 일부가 죄송함으로 변하면서 이런 부분을 알면 착한 몇 선생님들은 교장선생님에게 도움 요청하지 못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학교는 공모 교장선생님이 있는 혁신학교라 이런 분위기가 가능했다고 본다. 그래서 교장선생님 개인이 민원을 담당하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교장선생님 중에서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분들이 나올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개인이 감당할 정도의 민원을 초월한 미성숙한 사회를 살고 있으니 말이다.
민원 문화가 학교에 서서히 자리 잡아 학부모들이 민원을 넣지 않으면 안 되는 듯한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처럼, 반대로 학부모들이 민원을 함부로 넣으면 안 되는 생각이 사회적으로 자리해야 한다. 민원을 넣을 때 절차를 밟아야 하고, 무고성 민원에 대해 처벌할 수 있어야 하며, 민원은 개인이 아닌 팀이 담당하도록 법과 제도가 필요하겠다.
연구년 과정을 밟는 중 미국 보러트 케네디 커뮤니티 스쿨에 방문한 적이 있다.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미국 최대 규모의 공립학교로 당시 교감선생님에게 학교 내 상담과 심리치료 시스템을 소개받았었다. 한 명의 신경정신과 의사 선생님, 두 명의 카운슬러(상담사) 한 명의 사회복지사가 상주하고 있었다. 학부모 상담과 처벌(?)까지 담당하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현재보다 더 책임을 갖고 학부모를 대하는 교장선생님과 그 옆에 위와 같은 팀이 상주하면 좋겠다는 판타지(?)를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