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육'류는 덮밥으로, 물론 잡채도

by 꾀돌이

제육볶음이 사나이들만의 소울푸드는 아니다. 급식에도 빠질 수 없지. 급식에는 '제육'류가 등장한다. 오리불고기, 돈육김치볶음, 돈육불고기, 돈육고추장불고기, 콩나물불고기, 매콤제육볶음, 쭈삼불고기, 돈육짜장볶음, 오삼불고기, 돈육고추장볶음.


제육류가 나오면 밥을 제육으로 덮어서 담아 온다. 이불을 덮듯이 머리가 빼꼼 나오도록, 밥의 7할이나 8할까지 제육으로 덮어준다. 제육을 밥과 따로 먹어도 맛있지만, 덮밥으로 비벼 먹으면 와앙 크게 한입에 같이 먹는 맛이 있다. 밥에 제육의 양념이 고루 배어 반찬으로 먹을 때와는 다른 제육만의 깊은 맛이 느껴진다.

제육을 진정한 소울푸드로 만드는 건 먹는 방법이다. 국과 밥을 따로 먹어도 맛있지만, 국밥으로 말아먹을 때 주는 감동이 더 크거나 다른 것과 비슷하다. 같은 국이라도 국밥으로 먹을 때 영혼의 허기까지 채우는 느낌을 받는 것처럼, 제육은 밥에 비벼 먹어야 소울푸드라는 이름에 걸맞다. 잡채도 마찬가지다.




제육처럼 보이지만 아닌 메뉴도 있다. 직화석쇠불고기, 깡통시장돼지고기후라이드, 돼지갈비구이, 닭목살구이. 제육인 척하는 고기반찬은 덮밥으로 적절치 않다. 물론 단지 덮밥이 될 수 없을 뿐 그 자체로 훌륭하다. 하지만 덮밥이 되기에는 너무 물기 없이 건조하다.


덮밥용 반찬은 양념국물이 적당히 자박해야 좋다. 밥과 반찬이 잘 섞이도록 윤활유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너무 묽거나 맑아서 국처럼 흘러내리지는 않게, 아주 약간 끈적한 정도의 점성이 있거나 살짝 녹진해도 괜찮다.

덮밥은 정식보다 접근이 쉽다. 덮밥은 한 끼의 식사로 충분히 역할을 하면서도 누구나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메뉴다. 자취 초보도 그나마 쉽게 차려낸다. 덮밥은 너그럽게 유연하다. 편안하지만 결코 가볍지는 않게.




남의 허물을 덮어주는 사람이고 싶다. 그런 너른 품을 가진 어른이 되고 싶다.


아이들의 실수와 잘못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기회를 주고, 기다려주는 교사이고 싶다. 아이들이 좌충우돌하는 시기를 참고 인내하는 게 아니라 함께 묵묵히 견뎌주는, 두렵고 흔들리는 그 시기에 무섭지 않게 같이 버텨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 시기를 보내면서, 그렇게 시간들을 견디면서 아이들은 조금씩 크고 성장한다. 도른자의 눈깔이 옅어지고, 초점 없이 멍하던 눈동자에 힘이 생기고, 불안하게 흔들리던 눈빛이 갈 곳을 찾는다.


학교에는 자신이 떠내려간다는 것조차 모른 채 어디론가 떠내려가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또 그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고 붙잡아 주려는 어른들이 있다. 그 어른들에게도 삶과 생활이 있으니 일상을 모두 내던지고 아이들을 건질 수는 없지만, 끝까지 잊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 어른이 한 명만 있으면 그 아이는 건져진다. 술, 담배, 도박, 폭행, 가출...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하기도 하고, 일부러 눈을 감아주기도 한다. 안 된다고 무섭게 타이르기도 하고, 때로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를,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이 세상에 못 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나빠지고 싶은 사람도 없다. 안 되고 싶은 사람도 없다. 우리는 모두 잘하고 싶고, 잘 되고 싶고,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싶고, 남에게 인정받고 싶다. 그 아이가 그렇게 된 대는 그 아이를 그렇게 만든 시간이 존재한다. 그렇게 만든 조건과 환경이 있다. 그 시간을 뛰어넘어 갑자기 바뀌고 변화되지 않는다. 그렇게 될 때까지 시간이 걸렸듯이, 그 아이가 선한 본성으로 자신을 대하고 세상을 바라볼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을 어른들이 함께 견뎌내 줘야 한다.


물론 안다. 그 시간을 함께 이겨내기 전에, 교사가 먼저 다치고 어른이 빨리 지치는 세상이다. 아이들은 더 이상 아이들이 아니다. 그 악행과 나쁨의 정도가 본질을 의심케 할 만큼 살벌하게 무서운 세상이다. 믿는 자가 제일 먼저 뒤통수를 맞게 될 게다. 발등은 믿는 도끼에 찍히는 거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텐가. 포기하면 그 아이는 어디로 갈까. 그 아이의 세상은 어떻게 될까. 그런 아이들이 사는 사회는 어디로 갈까. 그 세상은 어떻게 될까.


어른들에게도 조금만 더 친절하고 너그러운 세상이기를 바란다. 나부터, 내 마음부터 여유 있고 유연하기를. 어쩌다 보니 벌써 어른이 되고, 살다 보니 어느새 이 나이가 된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다고 모든 것에 유능하고 능숙한 게 아니다. 되려 나이가 들수록 작은 실수도 치명적으로 느껴진다. 사소한 잘못도 나이와 함께 더 큰 무게의 책임이 된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 나이 든 어른들의 실수도 눈 감아주고 잘못은 덮어주는 큰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살고 싶다.




이미지 출처: Pixabay의 pjwpjw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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