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불호와 편식은 아무도 못 말려

ft. 곱창 못 먹어

by 꾀돌이

나는 곱창을 못 먹는다. 물컹하고 질겅거리는 식감이 극복이 안 된다. 씹고 또 씹어도 끝내 씹히지 않는다. 곱창순대볶음이 나오면 순대만 먹고, 곱도리탕은 닭만 먹는다.


사람들에게 내가 곱창을 못 먹는다고 말하면, 두 가지 유형의 반응을 보인다.

첫째는, ‘그 맛있는 걸 왜 못 먹어.’

둘째는, ‘꼬챙이에 끼워 먹게 생겨서 왜 못 먹냐.’

전자에서는 안타까움이 묻어나고, 후자에는 이상함과 의아스러움이 스친다.




타인의 편식에 대한 나의 반응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짠하거나 안쓰럽기도 하고 더러는 유별스레 느껴지기도 한다.


우유를 먹으면 배가 아파서 못 먹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일체의 유제품을 먹지 못한다. 그뿐이랴. 투움바파스타, 로제찜닭, 크림치즈퐁포크도 맛보지 못한다. 유제품이 들어간 진미는 평생 느끼지 못할 게 아닌가. 애잔하다.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어서 새우를 못 먹는 사람에게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샐러드나 무침 야채는 먹는데, 물에 빠진 채소는 안 먹는 사람이 있다. 콩나물무침은 먹는데, 황태콩나물국은 안 먹는다. 이건 뭔가 싶다. 야채라면 전부 싫던가 물에 빠진 야채만 안 먹는 건 뭐지 하는 생각이 불쑥 튀어나온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뜨거운 물속에서 너무 익어버린 채소의 흐물거리는 느낌이 싫단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진다. 물에 빠진 고기는 안 좋아하는 것과 같은 거겠지.




백 명의 사람이 식사를 한다. 여기에는 백 개의 편식이 있고, 백 개의 사정이 있고, 백 개의 사연이 있다. 내게 편식과 호불호의 이유가 있듯이 모두 저마다의 상황과 취향이 있다. 가끔 비슷하다 느껴지기도 하지만 절대 같지 않다. 나와 너는 같고 동시에 다르다. 완벽하게 케바케다. 러브스토리 같다.


어린 시절에는 호와 불호가 강해서 불호의 상황을 불편해하거나 분노가 일었다. 어른이라며 착각하고 나대던 시절에는 불호를 견디지 못하는 나 자신이 힘겨웠다. 불호의 조건을 내 앞에 들이민 누군가를 미워하고 화가 나 요동치고 흔들리는 내 마음이 지옥 같았다. 제법 나이를 먹고는 호와 불호 자체를 판단하기는커녕 아예 인식조차 하지 않게 되었고, 또 그러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려니, 이런 사람이려니, 저런 상황이려니.


백만 개의 사연을 가진 백만 명의 사람이 모여 남으로 또 우리가 되어 함께 살아간다. 나와 같은 것은 나밖에 없는 이 세상은 나와 똑같고 또 나와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우리가 사랑하고 싸우며 사는 그 모든 과정과 역사가 경이롭다. 아름답고, 슬프고, 즐겁고, 무섭다. 모든 명사와 대명사가 존재하고, 온갖 형용사와 동사가 일어난다. 세상 참 신비롭다. 인생 꽤 '재미지다'.




이미치 출처: Yuri hwang님의 Pixabay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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