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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소소한 생각
불효자,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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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 않게
Jan 9. 2025
아버지는 기능직 공무원,
어머니는 급식실 조리원이셨다.
비록 살림살이가 넉넉하진 않았지만,
아껴 살면 4식구가 살기에 모자람은 없었다.
어렸을 때 나는 생각보다 공부를 잘했다.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고교 평준화가 진행되었지만,
내가 살던 지역은 여전히 비평준화 지역이었고,
운 좋게 나는 지역 최상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운 좋게도
고3 때 내 모의고사 성적은 서울의 상위권 대학을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그 해 수능은 역대급 불수능이었다.
1교시 언어 영역 시험 후 화장실에서 우는 친구도 있었고,
2교시 수리 영역 시험 후 다 포기하고 집에 가겠다는 친구도 있었다.
절망스럽긴 마찬가지였지만 재수할 자신은 더더욱 없었기에
흘러나오는 눈물을 꾹 참고 끝까지 시험을 봤다.
집에서 가채점을 하고, 한참을 멍하니 있어야 했다.
평소 모의고사 점수보다 30점 가까이 떨어졌다.
언론에선 불수능이라고 하지만,
내 점수가 어느 정도 위치일지 정확히 가늠되지 않았다.
그날 밤,
다들 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안도하는 꿈과
나만 망해버린 결과에 좌절하는 꿈을 번갈아 가며 꿨다.
밤새 온 몸에 식은 땀이 계속 흘렀다.
정말 다행이었다.
모의고사에 비해 점수는 30점 가까이 떨어졌지만,
백분위는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대학에 갈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에 안도감이 밀려 왔다.
정시 원서 접수를 앞둔 주말이었다.
부모님께서 집 인근에 국립대학교에 지원해보면 어떻겠냐고 이야기하셨다.
영문을 몰라 멀뚱멀뚱 있는 내게,
부모님은 조심스럽게 너를 서울에 있는 사립 대학에 보낼 형편이 안된다고 이야기 하셨다.
"이럴 거, 왜 진작 말씀 안하셨어요.
너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소용없다고,
너는 결국 그 대학 가야 한다고 왜 미리 말씀 안하셨냐고요.
왜 공부했어요 저.
겨우 그딴 대학 가려고 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거예요
지금까지 뭐 하셨어요.
자식 서울에 있는 대학 보낼 돈도 마련 못하시고 지금까지 뭐하셨나고요"
너무 속상한 마음에 절대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내뱉고 말았다.
울부짖으며 부모님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곤 그대로 집을 뛰쳐 나갔다.
온통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속상함 뿐이었다.
부모님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두 분이 출근하실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고,
두 분이 잠드신 후에야 집에 들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 날도 자리에 누워 두 분이 출근하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현듯 방문이 열리고, 아버지께서 들어 오셨다.
모른 척 누워 있는 내게,
아버지는 듣는 이 없는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우리 아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결과 얻었는데,
아빠, 엄마가 지원 못해줘서 미안해.
아빠도, 엄마도 최선을 다해서 살았는데
아빠, 엄마가 부족한 게 많아서
우리 아들 마음에 상처 줬어.
아빠, 엄마 할아버지한테 하나도 물려 받은 거 없이,
너희 잘 키우고 싶어서 너희 어릴 때 엄마는 밤밤늦게까지 베 짜는 일 하고,
아빠도 교통비라도 조금 아끼려고 걷기도 하고 겨울에도 시내까지 오토바이 타고 왕복하고 했었어.
......"
아버지는 나가셨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너무 울어 가슴이 미어지고, 먹먹해지면 가슴이 답답하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내가 누린 많은 것들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희생 위에 있음을,
세상엔 당연한 게 없음을 바보처럼 그제야 깨달았다.
철없이 부모님께 드린 상처,
평생을 두고 노력하겠습니다.
부족한 자식,
사랑으로 키워주셔서 정말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S-IiArGm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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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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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교육, 입시에 진심인 고등학교 국어 교사. 정반대 성향의 아내와 알콩달콩 살고 있는 9년 차 남편. 일상에서 의미를 찾고 더 성숙하기 위해 노력하는 철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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